빠르게 돌아가는 서울의 일상을 잠시 잊을 수 있는 작지만 여유있는 공간, 텐지몽. 미쉐린 1 스타 레스토랑 ‘세븐스도어’와 플레이트 레스토랑 '톡톡'의 김대천 셰프와 도쿄의 2 스타 레스토랑 ‘덴’의 자이유 하세가 셰프가 협업해 탄생한 텐지몽에서는 현대적인 일본식 가이세키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한자로 ‘천지문’을 뜻하는 텐지몽은 ‘하늘과 땅의 재료로 미식 세계의 문을 연다’고 표방하며, 가이세키의 문법에 따라 한국의 계절감을 위트있게 담아낸 요리를 선보입니다. 이번 미쉐린 가이드 서울 2021에 플레이트 레스토랑으로 새롭게 등재된 텐지몽의 김대천 셰프를 만났습니다.
텐지몽은 어떤 요리를 선보이고 있나요?
가이세키의 구성을 따라, 현대적으로 해석한 위트 있는 일본 요리를 선보입니다. 한국의 계절감을 담아낸 식재료를 다양하게 사용해 가이세키의 핵심인 ‘계절’을 보여드리고자 합니다.
일본 최고의 가이세키 레스토랑에서는 온전히 ‘재료 중심의 요리’에 집중합니다. 많은 서구적인 조리법이 레시피를 우선으로 두고 식재료를 활용하는 것과 달리, 그날 그날의 식재료에 따라 조리방식이 크게 달라지는 것이 가이세키 요리의 매력이죠. 그리고 손님과의 합을 정말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손님의 요청, 손님이 드시고 싶은 식재료를 미리 확인하고 대화를 나눈 뒤 음식을 준비합니다.
저희 텐지몽에서도 이런 가이세키의 정신을 최대한 따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희 레스토랑에 최근 몇 달째 매 주 방문해 주시는 한국인, 일본인 부부가 계신데 매 번 비슷한 요리에 질리실까 메뉴를 자주 바꾸어 드리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매 주 저희를 찾아 주시는 손님이 만족감을 느끼실지 챌린지가 생기며 셰프와 주방 팀원들에게 좀 더 메뉴와 식재료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게 되는 자극제가 되기도 하고요. 물론 새롭게 시도하는 메뉴들이 늘 성공적인 것은 아니기에 재료와 조리된 음식에 대한 한계를 느끼기도 하지만 그만큼 발전된 요리가 탄생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손님과 계절, 주방이 함께 변화하고 흘러 가는 것이 가이세키 요리의 묘미인 것 같습니다.
현대적인 가이세키는 정통 가이세키와 어떻게 다른가요?
최근에는 엄밀히 정통 가이세키와 현대적인 가이세키 자체에 대한 구분이 큰 의미는 없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현대적인 가이세키에서 다양한 국가의 조리법과 식재료를 조금 더 열린 마음으로 사용합니다. 예컨대 저희 메뉴 중 ‘토마토 국수’ 메뉴에는 이탈리아 요리를 접목했죠. 토마토와 잘 어울리는 바질, 부팔라 모차렐라 치즈를 함께 사용해 이탈리아 음식의 맛의 배합을 차용하되 일본식 조리법과 가쓰오 향이 나는 식초 젤리를 더해 저희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해 선보입니다. 저희가 협업한 도쿄의 레스토랑 ‘덴’에서 선구적으로 이런 요리를 개발해 왔고, 그 흐름이 서울 텐지몽에서도 함께 이어지고 있어요.
도쿄의 레스토랑 덴과 어떤 방식으로 협업하나요?
텐지몽은 일본 도쿄 덴과 함께 만든 레스토랑이에요. 그래서 같은 방법으로 운영됩니다. 조리장이 그날의 재료에 따라 많은 것을 결정하며 메뉴를 풀어 나갑니다. 코로나가 유행하기 이전에는 덴의 자이유 하세가와 셰프가 분기에 한 번 이상 이곳을 끊임없이 방문하며 조리법을 공유하고, 메뉴에 대한 토론을 했는데 지금은 원격으로 서로 소통하고 있어요. 새로운 메뉴는 동영상으로 요리하는 장면을 찍어 메신저로 보내주기도 하고요. 직접 얼굴을 맞대고 메뉴를 같이 만들어 나가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서로 화상회의를 하고 동영상을 공유하며 협업을 하는 것도 나름의 장점이 있습니다. 현장에서 더 디테일한 부분에 집중할 시간이 많아지니까요.
한국적인 재료와 일본 재료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유지하나요?
텐지몽에서는 계절을 반영하는 식재료를 최대한 다양하게 사용하려고 합니다. 가이세키의 핵심이 계절, ‘슌’이기도 하고요. 대부분 한국의 식재료를 사용하려고 하지만 기본적인 맛의 프레임을 잡는 가쓰오부시나 와사비는 일본에서 식재료를 직접 공수해 사용합니다. 그래야 일본 요리다운 느낌을 확실하게 낼 수 있어요. 여기에 제철 재료를 통해 한국의 색채를 더하는 방식이죠.
텐지몽의 시그니처 디쉬: 텐지몽의 샐러드
14가지 이상의 채소를 모두 다른 방식으로 조리한 텐지몽 샐러드를 소개합니다. 6년 전, 제가 처음 도쿄의 미쉐린 2 스타 레스토랑 덴을 방문했을 때, 이곳의 시그니처 요리인 샐러드를 맛보며 큰 놀라움을 느꼈습니다. 한국에도 이 요리를 소개하고 싶다는 꿈을 가지게 되었고, 지금 텐지몽을 통해 그 꿈이 현실로 이루어졌어요. 손님들도 가장 좋아해주시는 메뉴로 샐러드를 많이 손꼽습니다.
이 샐러드는 각각 다른 방식으로 조리됩니다. 어떤 것은 아삭하고 새콤달콤하게 피클을 만들기도 하고, 가볍게 오일에 무치기도 하고, 저온에 부드럽게 익히기도 하고, 바삭한 튀김옷을 입혀 튀겨내기도 합니다.
각기 다른 14가지 이상의 채소가 다양한 온도와 식감으로 입을 즐겁게 하는 메뉴에요. 제가 오랜 시간 운영한 레스토랑 톡톡에서 채소 식재료에 대한 집착을 가지고 있었고, 유기농 채소를 직접 재배해 온 과정 또한 이 요리에 고스란히 녹아 있습니다. 사계절의 흐름은 물론 자연을 가득 담을 수 있는 요리라 더욱 매력적입니다. 단순하지만 한국의 계절과 순수한 채소의 미(맛과 아름다움)를 가득 담은 요리죠.
다양한 식재료들 중, 가장 좋아하는 식재료와 그 이유는?
물입니다. 물은 너무 익숙해서 그 중요성을 간과하기 쉽지만, 물이 없으면 어떤 요리도 할 수 없어요. 그리고 어떤 물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맛이 미세하게 달라지기도 합니다.
육수는 물이 대부분입니다. 차가운 멸치국수와 동치미 국수를 떠올리면, 흔히 멸치와 무에 더 집중하게 되지만 성분의 대부분은 ‘물’이에요. 그래서 미네랄 함량이 높거나 낮음에 따라 육수의 맛이 생각보다 크게 달라지고, 전체적인 음식의 인상을 좌우하게 됩니다. 위 요리를 만들 때에는 프랑스 오베르뉴 지방의 화산지대에서 생산한 생수를 사용합니다. 한편 가쓰오부시와 다시마를 넣고 끓이는 기본 육수, 이찌방 다시를 뽑을 때에는 정수물을 사용합니다. 이처럼 요리의 특성에 따라 사용하는 각기 다른 물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김대천 셰프에게 요리란 무엇인가요?
제게 요리란 일이면서 삶 그 자체에요. 제 추억을 재해석해 표현하는 매개체이기도 하고요. 접시 위에 담긴 요리에 제가 그간 느낀 추억과 현재의 삶을 보여드리고, 손님들과 함께 공감하는 과정입니다. 요리를 하며 제가 살아 있다는 것을 느끼는 것은 셰프로써 정말 좋은 점이지만, 긴 노동시간 때문에 가족과 보낼 시간이 부족하다는 점은 항상 마음에 걸리기도 해요.
저는 이 공간을 통해 손님들께 익숙하지만 감동을 줄 수 있는 요리를 만들고 싶습니다. 예컨대 솥밥이 그렇죠. 밥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수백년 전부터 매일 먹어 온 익숙한 음식이지만 시대나 가정마다 조금씩 다른 식감으로 경험되는 음식이잖아요? 이렇게 익숙하고 소박한 요리를 매개로, 편안하면서도 기억에 남는 맛의 반전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한국의 식재료로 만드는 현대적인 가이세키, 특히 가정식에 가까운 마음 따뜻한 요리를 지향합니다.
셰프의 삶이 늘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지만, 손님들이 요리에 만족하실 때 입가에 미소가 피어오르는 모습을 볼 때 정말 기분이 좋습니다. 잘 먹었다고 말하지 않아도, 이 느낌이 제게 전해지기 때문이에요. 그런 미소가 제 일을 의미있게 만드는 매일의 원동력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