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ures 1 minute 2023년 11월 19일

한식의 저변을 넓히는 이북 음식

슴슴하고 소박하며 자연에 순응하는 맛이 이북 음식의 특징입니다. 평양과 개성, 평안도와 함경도 등 다양하게 발전한 이북 음식에는 현재 한국의 미식 문화를 발전시키는 뿌리 깊은 힘이 남아 있습니다. 미쉐린가이드에서 선정한 이북 음식 전문점에서 내림 음식으로 이어지는 맛있고 건강한 요리를 소개합니다.

슴슴하고 소박하여 자연에 순응하는 맛
한국 문학사에 천재 시인으로 꼽히는 백석은 <국수>라는 시로 유명합니다. 평안도 출신인 그는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 어느 겨울 밤에 마을 사람들이 모여 먹는 국수를 아름답게 표현했습니다. ”이 반가운 것은 무엇인가, 이 히스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며 슴슴한 것은 무엇인가. 겨울밤 찡하니 익은 동치미국을 좋아하고 얼얼한 고춧가루를 좋아하고 싱싱한 산꿩의 고기를 좋아하고 수육을 삶는 육수국 내음을 좋아하고, 이 조용한 마을과 의젓한 사람들과 살뜰하니 친한 것, 이 그지없이 고담하고 소담한 것”으로 국수를 표현합니다. 이 시의 정경은 이북 요리의 특징을 생생하게 표현합니다. 김치나 동치미, 꿩과 돼지 수육을 삶아내어 얻는 육수, 자극적이지 않고 슴슴하며 소박한 조리법. 지역 재료에 천착하며 자연에 순응하는 지혜가 바로 이북 음식의 특징입니다.

미식의 도시 평양, 개성 그리고 함흥
평양은 고구려 시대부터 수도의 역할을 해왔던 지역이며 지리적으로 한반도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어 예로부터 식재료가 풍부하고 음식 문화가 발달한 지역입니다. 온반과 냉면, 녹두지짐, 어복쟁반, 돼지내포탕, 간식으로는 쌀과즐 등이 있습니다. 개성은 고려시대 500여 년의 수도였던 도시로 궁중음식과 반가음식이 발달했습니다. 맛이 조화로우며 담음새가 고아한 것이 특징입니다. 특히 새우젓이 맛의 근간이 되는데 개성만두, 보쌈김치, 개성주악, 인삼정과, 우메기 등이 유명합니다. 함흥은 비교적 간이 센 음식들이 유행했습니다. 감자 전분으로 국수를 말고 회와 매운 양념장을 넣고 비빈 회국수가 대표적입니다. 흥남 철수로 인해 함흥 출신의 피난민이 서울이나 부산, 속초로 많이 정착했는데 함흥냉면, 아바이순대 등이 이렇게 생겨난 음식이며 부산에서는 밀가루를 구하기 쉬워 녹말 국수가 밀면으로 변형되어 발전해 왔습니다.

평양냉면, 개성주악, 함흥냉면 © michelinguide
평양냉면, 개성주악, 함흥냉면 © michelinguide

서해안의 평안도와 황해도, 동해안의 함경도
서해안이 인접하고 중국 대륙과 맞닿아 있는 평안도와 그 아래 황해도는 중국과의 교류가 잦았습니다. 평야 지대인 만큼 쌀로 만든 음식이 발달했는데 김치밥, 찰떡, 송기떡 등을 해 먹었고 서해안에서 공수해 오는 굴, 게, 조기 등으로 굴 무침, 조기국 등이 유명했습니다. 중국의 돼지찜 요리가 전해지면서 족발로 발전했는데 이곳 출신이 서울 장충동에 정착하면서 평안도식 족발집을 열어 지금까지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함경도는 동해안 인접하고는 있지만 함경산맥, 마천령산맥 이 자리하여 음식에 험난한 자연 환경이 묻어 있습니다. 쌀 대신 감자, 조, 귀리가 주식이었으며 동해의 해산물이 단백질 공급원이었습니다. 가자미로 만든 식해에도 흰쌀밥을 쓰지 않고 조밥을 쓴 것이 오랜 관습이며 명태국, 가리빗국, 가재미식해, 명태순대, 명란젓 등이 유명합니다.

평안도와 황해도의 족발, 함경도의 가재미식해와 명태순대 © michelinguide
평안도와 황해도의 족발, 함경도의 가재미식해와 명태순대 © michelinguide

미쉐린가이드 선정 서울의 이북 요리 전문점

이북 음식을 제대로 맛보고 싶다면 여기 3곳을 추천합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할머니에서 어머니, 자손으로 이어지는 내림 음식이라는 점입니다.

피양콩할마니
강남구에서 30여년의 명맥을 잇는 이 곳은 평양에서 나고 자라신 강산애 할머님과 그의 자손들이 운영하는 콩비지 전문점입니다. 콩을 갈아 두부를 빼지 않고 만든 것을 되비지라 하는데 이를 화학조미료 없이 슴슴하게 끓여내어 건강식으로 인기가 높습니다. 한해 쓸 콩을 대량 매수하고 최상의 상태로 보관하며 매장에서는 그날 그날 맷돌에 갈아내어 콩이 지닌 최상의 고소함과 영양적 가치를 보존합니다. 콩비지 요리는 오리지널, 김치, 버섯, 무 등 4가지를 취향에 따라 선택할 수 있으며 피양만두, 녹두지짐과 감자지짐도 별미입니다. 콩비지에 돼지갈비를 넣고 끓이는 평양식 비지 전골은 가족이 둘러앉아 먹는 메뉴로 으뜸입니다. 이 곳을 더욱 빛나게 하는 것은 정성껏 마련한 반찬인데요 도라지, 김치, 두부 조림 등 매일 바뀌는 4~5가지의 반찬은 집밥 같이 편안하면서도 푸짐한 한상을 구성합니다. 여름에는 콩국수가 비지를 누를 만큼 인기가 높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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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식 비지전골은 되비지와 돼지갈비를 구수하게 끓인다 © michelinguide
평양식 비지전골은 되비지와 돼지갈비를 구수하게 끓인다 © michelinguide

봉산옥
윤영숙 대표는 황해도 사리원 출신 시어미님께 전수받은 내림 음식을 주로 합니다. 황해도식 만두와 만두국, 삯국수가 주요 메뉴입니다. 황해도식 만두는 숙주와 돼지고기, 소고기에 소금에 절여 발효한 배추를 소로 넣는 것이 특징입니다. 만두국에는 자연스럽게 담백하고 시원한 맛이 우러나옵니다. 삯국수는 따뜻하게 끓여 먹는 국수로 예전 시어머님이 일한 삯을 주고 방앗간이나 공장에서 잘라오는 국수의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그 당시에는 손으로 만든 면보다 기계로 뽑아낸 면이 귀했던 시절이라 황해도에서는 일한 삯을 주고 국수를 먹는 일이 호사를 누리는 일이었습니다. 봉산옥에서는 이 밖에도 야채와 당면이 푸짐하게 들어간 황해도식 오징어 순대가 별미인데 명태회와 곁들여 먹으면 참 맛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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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도식 만두는 절인 배추가 들어가 담백하면서도 시원한 맛이 특징이다 © Bongsanok
황해도식 만두는 절인 배추가 들어가 담백하면서도 시원한 맛이 특징이다 © Bongsanok

리북방
서민 음식 순대를 다이닝의 오마카세로 편성하며 고급 요리로 끌어올린 최지형 셰프는 할머니의 고향인 함경도 음식을 선보입니다. 이 곳의 메뉴는 <점심 상차림>, <저녁 상차림> 코스 메뉴로 메인 디쉬는 순대입니다. 직접 속을 채워 만드는 야채피순대, 아바이순대, 오리순대, 백순대 등 4~5가지 순대를 맛볼 수 있으며 함경도 전통방식으로 조리한 명태식해, 수육 등이 멋스럽게 펼쳐집니다. 이북식 닭곰탕이 온몸을 따뜻하게 하고 고추장에 비벼 먹는 이북식 육회는 진달래맥주 등 북한의 술과 페어링하여 이북식 코스의 완성도를 높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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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도 음식의 전통과 순대의 진가를 선보인다 © Lee buk bang
함경도 음식의 전통과 순대의 진가를 선보인다 © Lee buk bang

이처럼 한식의 계보를 이해하는데 이북 음식을 빼고는 논할 수 없습니다. 한식의 근간이 되는 고구려 700년의 역사와 한식 문화가 본격적으로 꽃핀 고려 500년의 역사가 바로 이북 음식 안에 어려 있기 때문입니다. 지역 식재료에 천착하며 슴슴하고 건강한 조리법으로 만들어진 이북 음식은 한식의 저변을 넓힐 뿐만 아니라 건강식으로서 지속 가능한 미식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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