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 2 minutes 2025년 8월 11일

냉정과 열정 사이: 배우 허성태의 부산 여름 나기

부산 출신 배우가 허성태가 전하는 이열치열 음식과 시원한 바닷가 명소

삼십대 중반, 대기업에 다니던 회사원이던 허성태 배우는 SBS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올드보이> 속 최민식 배우의 연기를 선보이며 늦깎이 신인 배우로 데뷔했습니다. 그리고 11년 후, 디즈니+ 시리즈 <카지노>에서 실제로 최민식 배우와 연기 호흡을 맞추게 되었습니다.

<밀정>(2016), <범죄도시>(2017) 등 흥행작에서 거친 역할로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한 허 배우는, 2021년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 시즌 1을 통해 전 세계적으로 ‘악역 전문 배우’로 얼굴을 알리게 됐습니다.

지난 7월, 미국 뉴욕아시안영화제에서 첫 주연작 <정보원>이 개막작으로 선정되며 레드카펫을 밟고 온 그는 “꿈만 같았다”고 회상합니다.

“평범한 직장을 다니며 배우를 꿈꾸던 사람이, 수년 후 뉴욕 한복판 링컨센터라는 큰 극장에서 주연 배우로 개막식에 초청되어, 첫 주연작을 관객과 함께 감상하게 되었다는 것. 그 자체로 저는 이미 엄청난 꿈을 이룬 순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많은 <오징어 게임> 팬들이 레드카펫 주변에서 따뜻하게 맞아 주었다고도 전했습니다.

<정보원>을 연출한 김석 감독과는 “눈물을 훔쳤고, 긴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가 어떤 감정과 생각이었는지 알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SBS <기적의 오디션>은 제 인생을 180도 바꿔 놓은 터닝 포인트였고, 영화 <밀정>은 ‘배우’라는 타이틀이 부끄럽지 않게 만들어 준 감사한 작품입니다. <오징어 게임>은 제 이름을 세계에 알릴 수 있게 해 준, 정말 꿈만 같은, 마치 로또에 당첨된 것 같은 비현실적인 작품이죠. 어떻게 보면 이번 뉴욕아시안영화제에 초청될 수 있었던 것도 <오징어 게임>의 지분이 50% 정도는 될 것 같습니다.”

거친 악역 이미지 뒤에는, 부산 출신 허 배우의 ‘경상도 사나이’다운 면모도 반영돼 있습니다. 그는 <신의 한 수: 귀수편>(2019)에서 ‘부산 잡초’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조직원 캐릭터를 맡아 강렬한 인상을 남겼고, 2021년에는 부산MBC 특집 다큐멘터리 <항구의 랩소디> 내레이션을 맡는 등 고향에 대한 애정을 꾸준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다음은 허성태 배우가 여름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도시, 부산에서 즐길 수 있는 여름철 음식과 명소들입니다.


<오징어 게임> 시즌 1
<오징어 게임> 시즌 1

극과 극의 맛: 차가운 밀면과 이열치열 메뉴들


느와르 악당 연기를 주로 해왔던 허 배우는 <정보원>을 비롯해 최근 드라마<크래시>, <굿보이> 등의 코미디 장르에서 인간미 있는 형사 역할을 연달아 맡고 있습니다.

“어머니께서 자주 하시는 말씀이 ‘너는 참 극과 극을 달린다’입니다. 전교 1등을 한 적도 있는데, 한때는 일주일간 가출해 학교에서 정학을 맞은 적도 있었죠. 대학교에 가지 않고 일하겠다고 버티다가 수능 한 달 전에 준비해 부산의 대학교 세 곳에 모두 합격하기도 했습니다.”

“연기 패턴이나 맡게 되는 배역도 이와 닮은 면이 많은 것 같습니다. 늘 범죄자, 조폭, 악역만 하다가 갑자기 <크래시>, <굿보이>, <정보원> 등에서 그 악역들을 잡는 ‘정의의 상징’ 같은 경찰을 맡게 되었으니 말 다 했죠.”

극과 극을 오가는 허 배우의 연기 스펙트럼처럼, 그의 여름철 메뉴 취향 역시 냉정과 열정 두 가지로 나뉩니다.


밀면과 합천국밥집 돼지국밥
밀면과 합천국밥집 돼지국밥

밀면

한여름 무더위 속 부산의 대표음식 중 하나인 밀면 한 그릇은, 단순한 별미를 넘어 이 도시의 생존 전략이었습니다.

1950년대, 전쟁 통에 피란 내려온 이들이 냉면을 그리워하며 밀가루로 대신 만든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쫄깃한 면발과 진한 육수, 새콤한 양념장이 어우러진 이 지역만의 국수는 지금도 부산 식탁 위에서 여전히 진화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면 음식 중에서도 밀면이 1등입니다.” 허 배우는 “부산에서 밀면 맛집이 따로 없다”고 단언합니다. “웬만한 곳은 다 맛있고, 맛이 비슷합니다. 밀면 맛집이 있다고 하면 저는 잘 믿지 않는 편입니다.”


돼지국밥

부산 하면 빠질 수 없는 또 다른 음식이 바로 돼지국밥입니다.

“돼지국밥과 밀면을 정말 좋아합니다.” 허 배우는 “지금은 술을 끊었지만, 한창 젊은 시절에는 그 음식들로 해장하는 게 일상이었습니다”라고 전합니다.

그는 자갈치역 인근 ‘장터국밥’을 추천합니다.

“개인적으로 하얀색 국물은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차가워지면 기름 덩어리처럼 굳거든요. 저는 깔끔한 투명하고 맑은 스타일의 돼지국밥을 선호하는데, ‘장터국밥’이 정말 맑고 깔끔합니다.”

미쉐린 가이드 부산 셀렉션에서도 돼지국밥집들이 여럿 소개되어 있으며, 이 중 나막집, 안목, 정짓간, 합천국밥집 네 곳을 추천드립니다.


이열치열 ‘핫’한 여름 메뉴들

“하필이면 제가 좋아하는 음식들이 다 더운 음식이네요.” 허 배우는 그중에서도 따끈한 아귀찜을 여름철 별미로 꼽습니다.

보통 아귀찜 하면 매콤한 양념에 버무려진 요리를 떠올리기 쉽지만, 부산의 내공 있는 아귀찜 전문점에서는 본격적인 매운맛에 앞서 수육 한 점을 권하곤 합니다.

미리 삶아낸 아귀 살을 큼직하게 썰어 낸 수육은 탄탄한 식감 속에 바다 향과 은은한 단맛이 배어 있어, 별다른 양념 없이도 담백하게 즐기실 수 있습니다.
입맛을 돋우는 전채로도, 술안주로도 손색없는 이 한 접시는 부산식 아귀찜 코스의 숨은 하이라이트라 할 만합니다. 일부 아귀찜 전문점에서는 아귀 수육을 부위별로 나눠 제공하기도 해, 미식가에게는 놓칠 수 없는 디테일입니다.

‘함지골 아구찜’의 아귀 수육은 “정말 살살 녹고 대박입니다”라는 허 배우의 한마디가 잘 설명해 줍니다. “식어도 맛있는 음식이라, 여름철 안주로 딱이라고 생각합니다.”

아귀찜과 더불어, 전통 찜 요리인 대구 뽈살도 추천합니다. (경상도 사투리로 볼살을 ‘뽈살’이라고 부릅니다.)

“굳이 여름에 이열치열 메뉴를 고른다면, ‘김유순 대구뽈찜’에서 매운 맛으로 드셔 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다대포 해변
다대포 해변

열기를 식혀 줄 고요한 풍경 속 명소들


극과 극을 오가는 허 배우의 여름철 입맛과 배우로서의 역할들과는 달리, 실제 일상에서는 차분한 고요함 속에서 안정을 추구합니다.

“화끈하고 의리있고 남자다운 부산의 이미지와 반대로 저는 참 약하고 겁도 많고 소심한 사람입니다. 부산의 이미지가 성격이 이러한 저로서는 그리고 배우로서는, 더욱 장점으로 작용하는 것 같아서 행운이라 생각합니다. 그 덕분에 <카지노>에서의 서태석 역할이 대표적이겠지만, 강인한 부산출신 악역을 연기할 때 도움을 많이 받은 것 같습니다.”

“너무 극과 극을 달리다 보니 힘들 때도 있지만, 그만큼 극과 극을 표현할 수 있다는 건 배우로서 큰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스펙트럼이 넓다는 증거이기도 하죠. 다만 보완해야 할 점도 분명히 있습니다. 제 성격도 그런 성향이 있어서, 흔히 말하는 ‘중간이 없습니다.’ 연기에서도 중간적인 균형을 잡을 줄 아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숙제가 남아 있죠.”


이기대
이기대

이기대와 다대포 해변

해운대나 광안리처럼 북적이는 해변도 좋지만, 허 배우는 보다 한적한 바다에서 진짜 부산의 매력을 느끼실 수 있다고 말합니다.

“부산은 역시 바다죠. 저는 군대도 삼척 해안 경비부대에서 복무했는데, 아침에 눈을 뜨면 바다가 보이던 풍경이 그 힘든 시절을 견디게 해준 것 같다”는 허 배우.

“부산은 바다와 가까운 지역들이 인프라와 젊은이들의 핫 플레이스로 밀집돼 있다 보니 복잡한 곳들이 더 많이 알려져 있지만, 저는 오히려 한적한 풍경과 여유를 느낄 수 있는 바다를 더 찾게 됩니다. 그런 곳에서야 말로 부산의 바다를 더 온전히, 자유롭고 깊이 있게 즐기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기대, 다대포, 몰운대 같은 곳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부산 바다의 고요함을 만끽할 수 있는 포인트들이 숨어 있습니다.”

이기대 해안 산책로는 특히 고요함 속에 걷기 좋은 명소입니다.

“이기대는 부산의 해안을 따라 산책하기에 정말 좋은 곳이고, 많이 알려진 다른 명소들보다 조용합니다. 저는 원래도 사람이 많이 북적이는 장소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서요. 동백섬이나 태종대 못지않은 아름다운 뷰를 자랑하는 곳입니다.”


영도 둘레길
영도 둘레길

영도 해돋이 마을과 둘레길

영도 봉래산 자락에 자리한 해돋이 마을은 부산항대교와 북항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옥상 전망대로 유명합니다. 좁은 골목마다 바다 내음과 함께 벽화들이 스며 있어, 이 마을은 그 자체로 한 폭의 풍경화 같은 매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마을 아래로 내려가면 절영해안산책로가 펼쳐집니다. 이 해안길은 해녀촌과 벽화 터널, 출렁다리, 붉은 등대가 있는 중리해변을 지나며 부산의 다채로운 바다 풍경을 담아냅니다. 절벽 위로 이어지는 절영해랑길은 75광장과 유리 바닥 전망대, 그리고 바다와 도시의 스카이라인을 동시에 조망할 수 있는 포인트들을 거쳐 걷는 이에게 긴 여운을 남깁니다.

해돋이 마을의 옥상 전망대에서 산책을 마무리하면, 부산의 하루를 특별하게 시작하거나 마감하기에 더없이 좋은 경험이 됩니다.

허성태 배우의 출연작 <굿보이>의 촬영지이기도 한 이곳은, 드라마 속에서 중요한 감정선과 서정적인 장면의 배경으로 쓰였습니다. 특히 마을 옥상 전망대는 극 중 ‘청학마루 전망대’라는 이름으로 등장해, 박보검 배우가 맡은 주인공의 내면과 정서를 드러내는 공간으로 묘사됩니다.

하지만 이 마을은 단순히 아름답기만 한 장소는 아닙니다.

1950년대 한국전쟁 당시, 수많은 피란민들이 부산으로 몰려들면서 영도 절벽과 봉래산 자락에 천막과 판잣집을 짓고 살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의 해돋이 마을과 흰여울문화마을 일대는 당시 임시 주거지로 형성된 것이 시초였습니다.
이 지역은 오랫동안 빈곤층 거주지로 남아 있었고, 마을 일부는 2010년대 들어 벽화와 갤러리, 카페 등이 들어서며 재정비되었지만, 낡은 골목과 계단, 담장 벽화 곳곳에는 당시의 흔적이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주거 취약 지역이고 고령 인구가 밀집해 있는, 역사적으로도 조금 가슴 아픈 곳이기는 합니다만… 아기자기하게 잘 꾸며져 있고, 부산 지역을 바라볼 수 있는 전망도 좋습니다. 부산 야경을 즐기기에 참 좋은 곳입니다.”


윤제균 감독의 부산: 영화제와 함께 즐기는 멋과 맛


금정산성
금정산성

금정산성과 대학 시절의 추억

금정산성은 동아시아 최대 규모의 산성 중 하나로, 둘레 길이 17.3km에 이르는 한국 최대 석성입니다. 1703년에 축성된 이 산성은 조선 시대 군사 방어선으로 건립되었으며, 현재는 울창한 숲과 성곽 너머로 펼쳐지는 바다 풍경 속에서 도심과 분리된 고요한 여행지를 제공합니다.

네 개의 문을 따라 이어지는 둘레길은 부산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듯한 긴 호흡의 산책 코스입니다. 금정산 정상(고당봉, 해발 801m)을 포함한 다양한 등산 코스가 마련되어 있으며, 맑은 날에는 동해, 낙동강, 심지어 대마도까지 시야에 들어옵니다.

허성태 배우에게 금정산성은 단순한 명소를 넘어, 대학 시절의 추억이 깃든 공간입니다.

“수업을 땡땡이치고 싶을 때 가서 널브러져 있던 곳이었죠.” 정확히 말하면, 금정산성 숲 속에 자리한 야외 주막형 식당 ‘솔밭집’입니다. “막걸리 한 잔 하기에 딱 좋은 분위기의 맛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끔은 ‘수업을 빼먹고 이곳에 간다’라기보다는, ‘이곳이 생각나서 수업을 빼먹는다’는 말이 더 맞는 것 같아요.”

그는 부산대 사범대 건물 정면에서 왼쪽 뒤쪽으로 돌아가다 보면 전 굽는 냄새가 난다고 회상합니다. “여기저기 불규칙하게 놓인 야외 테이블 사이로 보이는 자연 풍경도 참 좋아요. ‘너무 좋다~’ 하면서 막걸리 한 잔 기울이기 딱 좋은 곳입니다.”

메뉴는 막걸리와 김치전부터 백숙, 오리고기까지 다양합니다. 허 배우는 특히 오리고기를 맛있게 즐겼다고 전하며, “대학 시절 친구들, 연인과의 추억과 낭만이 깃든 곳”이라며 추천했습니다.

현재 서울에서 거주하며 작품활동을 이어가고 있지만, 허 배우는 언젠가는 부산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합니다.

“정말 살기 좋고, 바다도 산도 있고, 없는 게 없고, 인심도 좋은 곳이 부산입니다. 젊은 시절이 지나고 안정을 찾아야 할 시기가 오면 저는 꼭 부산으로 돌아가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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