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ures 1 minute 2023년 3월 14일

김치명가 권숙수가 소개하는 6가지 김치

권숙수에서 만나볼 수 있는 한국의 김치

김치는 한국인인 우리에게 너무 당연한 존재였습니다. 이렇듯 한국 음식을 이야기하면서 김치를 빼놓을 수 없다고 모두가 생각하고 이야기하지만 정작 우리는 김치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최초의 김치는 소금에 절인 산나물에 가까웠다고 합니다. 이후 조선시대에 들어서 다양한 채소와 향신료를 사용하기 시작했고, 조선 후기에 고추와 배추가 유입되면서 지금의 김치가 되었죠. 1995년에 조사된 김치의 종류만 해도 336종이나 됩니다. 배추김치, 깍두기 등 일상적인 김치뿐만 아니라 배추속대물김치, 장김치, 호박김치, 파래김치 등 처음 보는 이름의 김치들도 많습니다.

이런 김치들을 이제는 어디에 가야 만나볼 수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보아도 쉽게 떠오르는 곳이 없습니다. 미쉐린 가이드 서울 2023에서 2스타를 받은 권숙수의 권우중 셰프도 같은 고민을 했습니다. “프랑스에 치즈가 있고, 독일에 소세지가 있듯, 우리에겐 김치가 있잖아요. 김치가 단순한 반찬의 역할을 넘어서서 하나의 요리로 인정받을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권숙수가 선보이고 있는 김치 카트가 바로 그의 결론이었습니다. 외국인 뿐만 아니라 한국인들도 만족시킬 수 있으려면 완전히 새로운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매일 저녁 나무 카트에 담긴 6가지의 김치는 레스토랑을 찾은 손님들 앞에서 빛을 발합니다. 일상적인 김치부터 생소한 이름의 김치까지, 권숙수가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6가지 김치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갈치김치

해안가 지방에서는 해산물을 넣은 김치가 자연스럽게 발달해왔습니다. 갈치뿐만 아니라 명태, 대구 등 흰살생선을 이용한 김치가 있죠. 생선으로 김치를 담그면 젓갈을 담그는 것과는 다르게 생선 살이 빨리 물러지지 않기 때문에 별미라고 불리는데, 그중에서도 갈치김치는 전라도 지역에서 많이 담급니다. 

지느러미와 내장을 제거한 후, 토막을 내서 소금에 재워둔 신선한 갈치를 배추 사이사이에 넣어가며 김치를 담급니다. 갈치 김치는 3개월 정도 숙성을 해야 제 맛이 나는데, 이 맛을 최대한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바로 냉장 숙성하지 않고 3일 정도 실온에서 익힌 후 장기숙성을 합니다. 김치와 같이 썰어 내어주는 갈치살에는 양념게장의 살같은 탄력이 있고, 뼈는 입안에서 부드럽게 으깨집니다. 곱고 부드러운 양념과 숙성이 잘 된 단백질의 특유의 감칠맛이 입맛을 돌게 합니다. 

고들빼기김치

고들빼기는 손이 아주 많이 가는 식재료입니다. 잔뿌리 사이에 끼어든 흙을 하나하나 털어내고 씻어내는 일이 힘들어서 농촌에서도 더이상 팔려는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입맛을 돋우는 특유의 쌉싸름함도 사실은 여러 노력 끝에 얻어집니다. 손질한 고들빼기를 소금물에 3일간 담가 쓴맛을 한 번 걷어내야 둥근 쓴맛이 됩니다.

이외에도 신경 쓸 것이 여러가지 있지만 권숙수의 비법은 수분을 줄이는 것입니다. "쓴맛이 나는 김치는 수분을 적게 잡아야 제맛이 나요." 김치가 익어가면서 나오는 수분을 걷어내기 위해 마른 무말랭이를 넣어서 함께 숙성하는데, 덕문에 쌉싸름함 사이사이에 시원한 맛이 배어듭니다. 이렇게 3~4개월간 숙성을 거쳐 카트에 자리잡는 고들빼기김치가 단골손님에게 가장 인기가 많은 김치입니다.

해물보쌈김치

요즘은 보쌈김치라고 하면 양념을 강하게 해 돼지고기 보쌈에 곁들이는 김치를 생각하지만 사실 보쌈김치는 ‘쌈김치’라고 불리며 개성지역을 대표하는 김치입니다. 식재료가 풍부했던 지역인 만큼 김치에도 다양한 재료가 들어가 고급 음식으로 여겨지기도 했죠. 절인 통배추에 낙지, 굴, 전복, 밤, 대추, 미나리, 생강,사과 등 다양한 재료를 넣어 고춧가루와 함께 골고루 버무린 뒤에 배추를 보자기처럼 싸서 숙성시키는데, 많은 재료가 들어가지만 맑고 깔끔한 맛을 자랑합니다.

권숙수의 해물보쌈김치에서도 그만큼이나 귀한 맛이 납니다. 단단한 식감의 고흥 뻘낙지에 단새우회, 전복, 밤, 대추, 석이버섯, 잣, 실고추 등을 넣어 주먹만한 사이즈로 하나씩 말아내 숙성을 시키는데, 배추의 시원한 맛과 해산물의 다채로운 식감이 한데 어우러지는 화려한 맛이 납니다. 해산물이 들어간다는 점에서는 갈치김치와 비슷하지만 숙성기간이 짧아서 해산물의 신선함이 강하게 느껴지는 김치입니다.

순무 물김치

순무는 강화도 지역의 특산물입니다. 그래서 강화도에서는 예전부터 순무김치를 담가왔습니다. 유럽 지중해 연안이 원산지인 순무는 삼국시대에 한국에 전래되었는데, 1893년 조선 고종 때 영국의 해군 교관 콜웰이 본국에서 가져온 순무 종자와 섞이며 지금의 순무가 되었다고 합니다. 예전에는 신기하게도 강화도가 아닌 다른 지역에서 재배하면 길이가 길어지면서 특유의 매운맛이 사라져 강화도만의 특산물로 남았다고 하죠.

권숙수에서는 강화 순무 대신 지인의 농장에서 재배하는 순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순무로 김치를 담그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어요. 요리의 재료로 사용하고 싶었는데, 순무 자체가 워낙 단단하지 않아서 쉽지 않았어요.” 사실 그 특유의 무른 식감 때문에 물김치로 적합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독특한 쌉싸름한 맛과 알싸한 향이 은은한 신맛, 단맛과 균형감 있게 어우러져 꾸준하게 선보이는 김치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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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덕 소박이

강원도 중에서도 동해안이 있는 영동 지방은 생선을 활용한 김치가 많고, 내륙에 가까운 영서 지방은 젓갈을 적게 넣어 매콤하고 시원한 맛을 내는 김치가 많습니다. 더덕김치는 바로 강원도 영서 지방의 대표적인 김치지만 이외의 지역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특별한 김치이기도 합니다.

권숙수에서도 향이 좋은 강원도 더덕으로 김치를 담그는데, 김치 중에서도 소박이를 담급니다. 특유의 향을 살리기 위해 굵은 더덕만 골라 씻은 후 칼집을 낸 상태로 소금물에 절입니다. 껍질을 까는 순간부터 향이 달아나기 때문. 절여진 더덕의 껍질을 벗기고 무와 당근, 부추 등을 사이사이에 채워 넣어 다시 발효를 하면 더덕 소박이가 완성됩니다.

양념의 색은 진하지만, 그렇게 강하지 않아서 더덕의 향과 아주 잘 어우러집니다. 더덕 소박이는 향 뿐만 아니라 식감도 특별합니다. 질긴 조직감은 온데간데 없고, 오이의 아삭함과는 또 다른, ‘바삭’함에 가까운 청량한 식감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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꿩김치

원래 평안도 지방의 김치로 알려진 꿩김치는 조선시대에 서울과 경기도의 양반집에서 담가 먹던 귀한 김치입니다.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야생 꿩이 흔했기 때문에 선조들은 다양한 꿩요리를 즐겨왔는데요, 사냥이 사라지고 꿩은 귀해지면서 거의 사라졌죠. 꿩김치는 꿩의 뼈와 살을 넣어 오랫동안 달인 꿩 육수를 물 대신 사용하는 것이 가장 큰 특징입니다. 

물김치와 배추김치의 중간의 형태를 띠고 있는데요, 권숙수에서는 맑은 국물을 유지하기 위해 양념을 베보자기에 넣어 우려내고, 배나 무도 토막을 크게 썰어 넣습니다. 이렇게 두 달 동안 숙성시키고 나면 권숙수의 꿩김치가 완성됩니다.

권숙수에서는 꿩김치를 낼 때 국물을 함께 즐길 수 있도록 부드럽게 쪄낸 꿩 가슴살을 찢어서 함께 담아냅니다. 권우중 셰프가 권숙수에서 선보이는 김치 중 가장 좋아하는 김치라는 이 꿩김치의 맛은 독특합니다. 마치 김치찌개의 에센스만 뽑아내 차게 식힌 듯한 맛이랄까요? 깊은 감칠맛과 은은한 김치의 산미가 긴 여운과 이야기를 남깁니다.

이 외에도 권숙수에서는 매일 10종 이상의 김치가 숙성되고 있습니다. 도루묵 식해같이 전통적인 김치도 있지만 바나나 백김치처럼 현대적으로 재해석된 김치도 있습니다. 김치들의 숙성기간이 모두 제각각이다 보니 10가지 정도가 있어야 안정적으로 서비스할 수 있었다고.

권숙수에서 소개하는 김치의 맛은 하나같이 익숙하면서도 새로웠습니다. 권우중 셰프가 김치를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는 하나입니다. “진짜 김치가 여기, 한국에 있습니다.” 권숙수의 주방에서 지난 7~8년간 만들어진 김치의 종류는 셀 수 없을 만큼 많습니다. 김치는 손맛이라고 할 정도로 경험이 중요한데, 권우중 셰프는 누구라도 같은 맛을 낼 수 있도록 긴 시간에 걸쳐 데이터를 쌓고, 김치의 레시피를 정리했습니다. 김치가 요리가 되는 곳 권숙수는 '김치명가'라고 불리워도 손색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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