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인다이닝 레스토랑에서는 몇 개의 시그니처 메뉴를 제외하고는 계절에 따라 코스메뉴의 구성이 바뀌기 때문에 한 번 지나간 메뉴는 한동안 맛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따금 어떤 레스토랑에서는, 오랜 단골고객들의 요청으로 비밀스레 남아있는 메뉴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메뉴들은 쉽게 구하기 힘든 구하기 힘든 재료를 사용하거나 만드는데 오랜 시간과 노력이 드는 경우가 많아 미리 예약을 한 소수의 손님들만 만나볼 수 있습니다. 미쉐린 가이드 서울 2022에서 새롭게 1스타 레스토랑으로 선정된 코자차에도 숨겨진 메뉴가 있습니다.
연관기사: 미쉐린 가이드 서울 2022 뉴 셰프: 떼땅져 샴페인 마리아주
코자차는 중식과 일식의 경계를 자유롭게 오가는 특별한 메뉴를 선보여왔습니다. 아주 새로운 음식 보다는 이미 존재하는 요리를 최상의 경지로 끌어올리는 것이 코자차만의 스타일이자 강점입니다. 최유강 셰프와 황준성 셰프가 '코자차'라는 이름으로 요리를 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그들의 요리를 먹어온 오랜 단골손님들은 매월 바뀌는 메뉴를 즐기는 동시에 조심스럽게 이 세 가지 메뉴를 요청합니다.
단순함에서 오는 완벽함, 볶음밥
중식에서 볶음밥은 가장 평범하고 단순한 메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메인 메뉴에 곁들이는 곁들임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할 정도입니다. 하지만 최유강 셰프는 볶음밥이야말로 그 식당과 셰프의 진수를 볼 수 있는 상징적인 메뉴라고 말합니다.
남다른 볶음밥을 만드는 과정은 쌀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국내에서 구할 수 있는 가장 맛있는 쌀을 깨끗하게 씻어 밥을 지은 후, 파기름과 무항생제 유정란을 더해 센 불에서 단숨에 볶아냅니다. 볶음밥의 매력은 어떤 것이든 더할 수 있다는 점이기에 팽이버섯, 랍스터 등 그날그날의 가장 좋은 재료를 곁들여냅니다. 이렇듯 좋은 재료에 충실한 기본기가 더해지면 코자차의 숨겨진 보석 같은 메뉴, 볶음밥이 완성됩니다.
“코자차의 볶음밥은 중식의 진수, 불을 다루는 기술과 식재료를 다루는 감각을 한 접시에 담아낸 메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리에 시간을 투자하고, 지름길로 가지 않겠다는 그 다짐 덕분인지, 최유강 셰프의 손에서 만들어지는 볶음밥을 좋아하는 단골손님의 층이 꽤 두터운 편입니다.
추억을 넘어서는 디테일, 탕수육
코자차의 모토인 ‘한국인의 소울 푸드를 극상으로 표현하자’를 가장 정확하게 보여주는 메뉴입니다. 요즘은 찹쌀 탕수육인 꿔바로우가 탕수육보다도 더 인기를 끌고 있지만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짜장면과 짬뽕에 탕수육을 곁들여먹는 추억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죠. 코자차의 탕수육은 바로 그 일상적인 메뉴를 최상급 메뉴로 만들어내는데 집중합니다.
“추억의 맛을 넘어서는 궁극의 디테일을 위해 각각의 요리를 깊게 연구합니다. 최적의 온도, 최적의 시간, 그리고 최적의 기술을 입혀 요리가 가지고 있는 본질의 맛을 섬세하게 표현해내는 것을 코자차에서는 ‘명품화’라고 합니다.” 코자차의 탕수육도 같은 과정을 거쳐 남다른 완성도를 자랑합니다.
겉 부분은 바삭하면서도 폭신한 식감을 가진 튀김옷을 만들기 위해 샥스핀을 쪄낸 물을 사용합니다. “이 물에는 약간의 점성이 있는데다가 반죽을 충분히 숙성하기 때문에 고기를 아주 잘 붙잡아줍니다. 이 반죽 덕분에 아직까지도 탕수육을 최고의 메뉴로 꼽는 분들도 있습니다.”
또한 옛 품종을 복원해 만들어낸 재래돼지를 이용하는데 웬만한 한우보다도 비싼 가격으로 육즙이 풍부하고 적당 씹는 맛이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함께 서비스되는 새콤달콤한 탕수 소스는 입맛을 한껏 돋우고, 고기를 씹는 동안 입 안에 은은하게 퍼지는 감칠맛 넘치는 육즙은 코자차의 탕수육을 더욱 특별하게 만듭니다.
보양식의 정수, 불도장
코자차가 선보이는 모든 요리의 가장 깊은 뿌리에는 ‘보양’이 있습니다. 먹는 것으로 몸을 이롭게 하는 약식동원에 초점을 맞춰서 한식과 일식, 중식을 한 상에 담아내기 때문입니다. 그런 코자차의 단골손님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 있는 메뉴가 불도장이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중국의 대표적인 보양 요리인 불도장은 말린 해삼, 말린 전복, 새우, 오징어, 소흥주, 굴 등 수많은 재료를 한데 넣고 약한 불에서 오랫동안 끓여 만드는데 ‘승려 조차도 이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 담을 넘는다’고 해서 불도장(佛跳牆)이라고 이름 지어졌습니다.
코자차의 불도장은 정석의 조리법 그대로를 따릅니다. 해삼, 도가니, 돼지등심, 송이버섯, 오골계, 건관자 등을 넣어 쪄낸 후 하루동안 천천히 식혀 한지로 기름기를 걷어냅니다. 이틀의 노력이 있어야 맑고 깊은 맛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방점을 찍는 것은 바로 해남에서 올라오는 배추입니다. “저희는 배추를 과하다 싶을 정도로 넣습니다. 배추가 내는 시원한 맛에 집중하기 때문이죠.” 배추가 더해진 코자차의 불도장은 그 어떤 불도장보다도 밀도 높은 맛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