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즈넉한 연남동에 위치한 야키토리 전문점, 야키토리 묵은 미쉐린 가이드 서울 2021의 새로운 빕 구르망 레스토랑으로 선정되었습니다. 길게 펼쳐진 카운터 테이블과 오픈형 주방,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화로는 마치 무대처럼 외부와 단절된 듯한 편안한 공간을 연출합니다. 이 앞에서 토종닭의 다양한 부위를 굽는 김병묵 셰프를 만나, 그의 요리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어떻게 야키토리 셰프의 길을 걷게 되셨나요?
저는 대학에서 통계학을 전공하고 기업에서 고객서비스 업무(VOC)를 하던 회사원이었습니다. 장남으로써 제 몫은 하는 것 같았지만 ‘나를 위한 일을 하고 싶다’는 갈증에 늘 시달렸어요. 서른이 되기 전의 마지막 도전이라 생각하고 홍대에 있던 한 프렌치 펍의 오픈 멤버로 합류해 요리를 처음 시작했습니다. 저는 금세 요리에 빠져들었어요.
그 첫 레스토랑에서 6년간 수많은 도전과 연습을 통해 저만의 길을 개척해 나갔습니다. 프랑스 요리를 오래 하면서 맛과 향을 다층적으로 쌓아올리는 요리를 많이 했죠. 맛이 부족하면 무언가를 더 넣으려 했고, 여러 기교를 연구했습니다. 와인을 공부한 아내의 역할도 한몫 했습니다.
이제 제 가게를 차려야 할 시점이 되었다는 판단이 되었고, 당시 일본요리에 관심이 생겼습니다. 정식으로 일본요리를 배우며 기초를 다졌죠. 그간 프렌치를 하면서 익숙했던 가금류 손질에 일식을 접목해 야키토리 레스토랑을 준비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일본요리를 배우며 점점 덜어내는 연습을 해야 했다는 점이에요. 여러 기교를 알되, 가장 정확한 방법으로 최선의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이 야키토리의 정수죠.
야키토리는 사람들이 편하게 즐길 수 있고, 트렌드에 휩쓸리지 않는다고 판단해 이 요리를 좀 더 집중해서 연구하게 되었습니다. 제 레스토랑을 만들며, 아들이 이곳을 물려받아 운영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그런 오래 가는 곳을 만들고 싶었거든요.
어떻게 요리에 대한 열정을 가지게 되셨나요?
요리는 거짓말을 못합니다. 음식이 맛있으면 그 순간 손님들 표정에서 반응이 나와요. 그 반대의 경우도 너무나 솔직하게 피드백이 오죠. 음식으로 경쟁하는 것은 다른 경쟁보다 공평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손님들의 기대치에 지고 싶지 않았어요. 물론 제 욕심 때문에 함께 일하는 팀원들이 고생하기도 합니다. (웃음)
셰프님의 가장 큰 스승이 궁금합니다.
제 음식의 스승은 바로 어머니입니다. 하지만 정작 어머니는 제가 주방에서 요리하는 모습을 아직도 못마땅해 하시죠. 농촌에서 자라시고 지내신 어머님은 재료에 대한 생생한 이해를 바탕으로 휼륭한 맛을 만들어내십니다. 사소한 양념부터 본인이 처음부터 끝까지 만들어야 직성에 풀리시는 그런 분이에요. 제가 가장 배우고 싶은 것은 어머니께서 직접 기르시고 만드시는 장입니다. 콩을 경작하셔서 직접 메주를 만드는데, 이렇게 만든 된장과 고추장은 다른 조미료가 필요 없을 정도로 놀라운 풍미를 자랑합니다.
제가 어머니에게 요리에 대해 여쭈면 아주 간단하게 대답하세요. “좋은걸 쓰면다 맛있어!” 제가 쓰는 재료와 조리법에 이 기본적인 철학이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야키토리 묵이 선보이는 요리는…
한국 토종닭의 참맛을 보여주고 싶어요. 토종닭을 일본의 지도리와 비교하기도 하는데, 그만큼 한국의 것도 개성있는 풍미와 육질이 훌륭합니다. 이 좋은 토종닭을 맛있게 드리는 방법을 계속 연구해 고객분들에게 알리고 싶습니다. ‘흰 도화지 같다’고 흔히 표현되는 일반 육계에 비해 토종닭은 기름과 살의 맛이 훨씬 응축되어 있어요. 숯불을 이용해 단백질과 지방질을 다루면 멋진 풍미를 만들어낼 수 있죠.
물론 일반 육계에 비해 국내 생산자도 많지 않고 유통량도 부족합니다. 사람들이 많이 먹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가격도 비싸고 작업도 훨씬 힘들지만 그래도 토종닭을 고집하는 이유는 차원이 다른 감칠맛과 육즙 때문입니다.
야키토리는 닭의 부위를 세분화해서 이에 맞는 굽기를 선택합니다. 바삭한 식감과 고소한 기름맛이 좋은 껍질은 약불에 오랜시간 익히구요. 부드러운 식감과 감칠맛을 풍부하게 지닌 가슴살은 레어에 가까운 굽기로 내어 드립니다. 일본이나 지방에서는 가슴살을 사시미로 즐길 정도로 부드러움 안에 감칠맛이 일품이죠. 퍽퍽하게 구어진 가슴살은 죄악이라고 생각해요. (웃음) 이처럼 닭 한 마리의 매력을 부위별로 온전히 즐기는 야키토리는 토종닭과 멋진 궁합을 이룹니다.
야키토리 묵은 어떤 공간인가요?
‘불’을 매개로 한 따스한 공간을 만들어 드리고자 합니다. 오래 전 인간이 사냥을 해서 불을 피우고 둘러 앉아 낮의 피로를 풀고 소통하는 중심에는 불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곳을 디자인할 때 불의 위치를 가장 중요하게 고민했어요. 불을 보고 멍하게 바라보면서 마음의 잡념을 내려놓고, 맛있는 음식과 술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 야키토리 묵입니다.
그리고 요리 과정을 눈 앞에서 보고 즐기며 손님과 함께 소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곳에서 백숙이나 닭도리탕으로 흔히 즐기는 토종닭의 진정한 맛을 선보여 드리는 것이 셰프로써 제 욕심이죠.
야키토리에서 닭만큼이나 불도 중요할 것 같습니다.
팬에 직접 재료를 굽거나 오븐을 이용하는 것과 달리 숯불은 대기열과 전도열로 표면을 바삭하게 구우면서 고기 내부까지 동시에 익히는 방식입니다. 이는 수분손실을 줄이면서도 바삭한 표면을 주기에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오랫동안 선조들이 터득한 경험의 산물이기도 하죠.
그 중에서도 저는 비장탄을 사용하는데요, 이는 다른 숯보다 오래 구워 가격이 비싸고 다루기 힘든 숯입니다. 숯에 불을 붙이는 시간도 훨씬 더 깁니다. 대신 화력이 길고 균일하게 유지되기 때문에 식재료에 일정한 화력을 가할 수 있죠. 다른 숯에 비해 불완전 연소도 적게 일어나 그을림이나 탄 향도 적어 건강하기도 하고, 섬세한 닭 풍미를 잘 살리기에도 좋습니다. 단순히 탄 향이 아니라, 은은한 숯 향이 재료와 훨씬 더 잘 어우러지죠.
<야키토리 묵의 시그니처 요리들>
토종닭 다리살 대파 꼬치구이
닭다리살과 대파를 교차로 꽂아 숯불에 구운 꼬치 요리는 야키토리 메뉴 중 베스트 셀러입니다. 야키토리집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가장 기본 메뉴이기도 합니다. 저는 다리살을 꼭 껍질로 감싸서 꼬치에 꽂습니다. 숯불에 구우면 껍질은 바삭해지고 안쪽에 육즙이 가득 모여 바삭함 안에 풍부하게 터지는 촉촉함을 즐길 수 있습니다.
닭 간 파테와 블루베리 콤포트
구운 바게트에 닭 간 파테를 발라 달콤한 블루베리 콤포트와 같이 먹는 요리입니다. 제가 프렌치 요리를 할 때 푸아그라 파테를 자주 만들었는데, 여기에서 힌트를 얻어 닭 간과 블루베리 콤포트를 곁들여 드립니다. 국내에서는 닭 간을 생소한 식재료로 생각하지만, 한 번 드셔 보시면 쉽게 빠져들죠. 와인과 즐기기에도 궁합이 훌륭합니다. 중요한 것은 정말 신선한 닭 간만 사용해야 비리지 않은 좋은 풍미가 나죠.
츠쿠네 산도
빵 사이에 닭다리살과 연골을 다져서 만든 반죽을 숯불에 구워넣은 샌드위치는 고객분의 큰 사랑을 받는 메뉴입니다. 츠쿠네는 닭 다릿살과 연골을 갈아넣고 수비드로 오랜 시간 조리하는데, 전체적으로 부드러운 식감 사이에 연골이 오독오독 씹혀 재미있죠. 처음 이 메뉴를 개발할 때에는 이런 요리를 하는 야키토리집이 없었습니다. 손님들이 정말 좋아해주시고, 꼭 먹어야 하는 메뉴로 꼽아 주신 덕분에 대표 메뉴가 되었네요.
셰프의 삶에서 좋은 점과 어려운 점은…
레스토랑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다 보니, 가정에서 좋은 아빠이자 남편이 되기 어렵습니다. 이제 돌이 되는 아들 얼굴도 자주 못 보네요. 미안할 따름입니다.
하지만 노력의 결과가 공정하게 주어진다는 것이 셰프의 삶의 원동력이 됩니다. 철저히 맛으로 승부하는 이 세계에서는 환경이나 외력의 개입이 그나마 적은 편이라고 생각해요. 열심히 한다면 그래도 해볼만 합니다. 자신의 길을 스스로 개척할 수 있는 직업 중 하나죠.
김병묵 셰프에게 미쉐린 가이드란…
빕 구르망이 발표되기 전날 밤, 아내와 쉽게 잠들지 못했습니다. 아내는 새벽까지 핸드폰을 손에서 놓칠 못했어요. 빕 구르망에 선정된 알았을 땐 말없이 둘이 부둥켜안고 울었습니다. 저는 사실 미쉐린 가이드에 등재되는 것을 꿈에서도 생각해보지 못했습니다. 남들보다 요리를 늦게 시작했고, 아직 부족함이 많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아직도 꿈만 같습니다. 다른 무엇보다 셰프의 삶을 반대하시는 어머님께서 그래도 조금은 알아주실 수 있는 결과이지 않을까요? 가까운 가족에게 인정받기가 오히려 이렇게 어렵네요.
셰프를 꿈꾸는 젊은 학생들, 초보 요리사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셰프는 많은 능력을 필요로 합니다. 재료와 조리법을 연구하고, 생산자와 소비자와의 소통하는 것도 중요하죠. 육체적, 정신적인 노동과 센스, 위트, 리더쉽까지 끝없이 나열할 수 있어요. 이 모든 능력이 다 중요합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모든 것을 갖출 수는 없으니, 한발씩 내딛으며 멈추지 않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투자하세요! 많이 먹어보고 도전해봐야 합니다. 요리는 머리속에서만 나오지 않습니다. 결국 손을 통해 나오고 손님의 입에서 완성됩니다. 공급자 입장에서만 생각하지 말고 손님이 어떻게 느낄 지 알아채려면, 직접 손님이 되어 먹어보세요.
셰프로 성공하고자 한다면 소통능력이 매우 중요합니다. 주방 안에서 요리만 한다면 아집에 빠지기 쉽습니다. 레스토랑을 함께 만들어가는 모든 팀원들과 손님, 생산자, 관계자들 모두 원활하게 의사소통을 하며 긍정적인 방향으로 과정을 이끌어 가야 합니다. 레스토랑에서 손님에게 식사를 대접하는 매 순간이 작은 ‘결과’이지만, 이 결과들이 모여 커다란 과정을 이루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