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는 것과 사라져 가는 것을 더하고 빼면, 레벨제로
미래를 섣불리 장담하지는 못하지만 다가올 계절은 준비할 수 있습니다. 자연이 키운 식재료를 구하여 오늘 누리는 것들에 고마움을 표하고 쓰고 남아서 버려지는 자원들을 재활용하여 미래의 부족함을 채우는 레스토랑 레벨제로. 이곳에 들어오면 눈, 코, 입, 귀, 그리고 촉각마저 환하게 열립니다. 온몸으로 미식을 체험할 수 있도록요.
레스토랑의 문을 열면 아늑한 갤러리에 들어선 듯한 환상마저 듭니다. 한 걸음 한 걸음 비밀의 숲을 지나 잠시 쉬어 가는 테이블, 술 한 잔에 시름을 추억으로 만드는 바 등등 셰프는 행복하면서도 의미 있는 보물을 곳곳에 숨겨 두었습니다. 자 이제 보물 찾기를 시작해 볼까요. 낯설까 걱정하지는 마세요, 친절한 가이드 데니 한 (Denny Han) 셰프는 고객의 마음까지 보살핍니다.
“음식이란 자연과 사람이 만나는 접점이며 셰프는 메시지의 전달자라 생각해요. 메뉴를 구성할 때는 조그마한 스토리라도 담으려 노력합니다. 소재는 식재료의 가치가 될 수도 있고 개인적으로 빛나는 경험이 될 수도 있습니다.” 데니 한 셰프는 고객의 입장을 재정의 합니다. 단지 완성된 요리를 바라보고 즐기는 사람이 아니라 셰프와 더불어 요리의 세상을 만들어가는 창조자로 말이죠. 음식이 담긴 식기와 공간은 자연을 상징합니다. 주방에서 버려지는 달걀 껍질로 접시를 만들고 재생지를 활용하여 조명을 연출합니다. 무심코 앉아있는 테이블도 친환경 소재를 이용하여 제작했습니다. 이곳에서는 추상적으로 인식하던 “친환경”과 “리사이클” 철학이 현실로 다가와도 ‘참 자연스럽고 안락하구나’라는 느낌이 듭니다.
셰프와 고객이 함께 참여하는 경험
한셰프는 올해 봄 시즌에 13가지 코스로 구성된 “Vernal Sensory: a hint of spring” 메뉴를 선보입니다.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5인의 아티스트와 함께하는 작업입니다. 특히 “채집”이라는 메뉴는 특별한데요, 식물 설치 전문인 “스튜디오누에”가 정원 공간을 꾸몄고 한셰프는 자연을 모티브로 한 3종의 바이트를 숨겨두었습니다. 고객들은 정원에서 식물의 향기를 맡고 손끝의 촉감으로 느끼며 보물찾기 하듯 3가지 바이트를 채집할 수 있습니다. 셰프는 고객들이 자연에 다가가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자신만의 미니 정원을 완성하도록 서포트합니다.
자연과 음식, 사람의 삶에 대해서 건강한 메시지
한셰프는 앞으로 새로운 시도를 해 볼 계획입니다. “고객들은 레스토랑에 오기까지는 힘들어하세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레스토랑과 다른 컨셉이니까요. 그런데 일단 이곳의 문을 열고 참여하신 분들은 신선하고 감동적인 경험이었다고 말씀해 주십니다.” 고객이 기뻐하는 모습에서 힘을 얻는 그는 자신이 만들어 가는 파인 다이닝의 의미를 이야기합니다. “파인 다이닝은 고객과 더불어 새로운 경험을 만들어 가는 시공간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이러한 방향성은 호불호가 있습니다. 어쩌면 저는 호불호가 뚜렷해지는 것을 바라는 지도요. 모두를 만족시키는 음식이 존재할까요. 저는 단 한 분이라도 진심으로 공감해 주신다면 자연과 음식, 삶에 대해서 건강한 메시지를 공유하고 그 가치를 축적해 가고 싶습니다.”
한국의 토종 품종, 토착 식재료에 대한 애정
한셰프는 앞으로 한국의 토종 품종을 연구하려 합니다. 토종 곡물이나 산나물 등의 소중한 가치를 담아 고객들과 공유하고 싶은 소망입니다. 고객에게는 다소 낯선 식재료이지만 한셰프는 친절한 가이드를 자처하며 근사한 코스로 선보일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온 산과 들녘이, 또한 바다와 갯벌이 훌륭한 미식의 보고임을 과장 없이 보여주는 곳이 <레벨제로>니까요. 지속가능성, 친환경의 움직임이 서울 미식의 트렌드를 바꿔 가는 요즘, 데니 한 셰프의 메시지와 성숙한 태도는 충분히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