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ning Out 2 minutes 2019년 6월 14일

이탤리언 다이닝 앤 비스트로 ‘서촌김씨’의 봄

경복궁 서쪽에 있는 동네를 일컫는 별칭인 서촌은 인왕산 동쪽과 경복궁 서쪽 사이에 위치한 청운동, 효자동, 그리고 사직동 일대를 일컫는다.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에서 나와 효자로를 따라 거미줄처럼 연결된 골목길을 걷다 보면 어릴 적 살던 낯익은 동네의 추억이 떠오르는 그런 곳이다.

한국의 근현대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서촌의 고즈넉한 골목에 정통 이탈리안 다이닝 앤 비스트로 서촌김씨가 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왠지 모르게 정겨운 서촌과 레스토랑 서촌김씨는 여러모로 많이 닮았다.

셰프 지망생이라면 너도나도 해외에서 요리공부하고 돌아오는 게 지금의 현실이지만, 김도형 셰프는 철저한 국내파다. “이탤리언을 하는 셰프로서 그 부분이 늘 마음 한편에 콤플렉스로 남아있긴 해요”라고 덤덤하게 말하는 그는 ‘서촌김씨’의 오너 셰프다. 그가 셰프로서 밟아온 길은 결코 전형적이 않았다.

김도형 셰프는 요리를 늦게 시작했다. 서촌김씨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위치한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다른 친구들처럼 취직하는 대신 대학에 진학했다. 어렸을 때부터 요리에 관심이 많아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해 밥해주는 게 취미였던 그가 대학 시절, 사회학을 전공하면서 조리사 자격증을 딴 게 시작이라면 시작이었다. 90년대 중반 대학가에 거세게 데모 바람이 불던 그 시절, 책가방에 칼을 넣고 다니다가 경찰 검문에 걸리기 일쑤였다.

대학 졸업 후 대기업에 공채로 입사하여 한동안 마케팅 업무에 매진하기도 했었지만, 그가 정말 하고 싶었던 일은 요리였다. “어느 날 사표를 내고 나왔어요. 나오자마자 부모님께 빌린 돈과 퇴직금을 포함한 전 재산을 털어 150평짜리 요리 주점을 차렸어요. 5년을 버티다가 쫄딱 망했죠.”

김도형 셰프가 본격적으로 이탤리언 요리를 공부했던 것은 첫 가게를 운영하면서였다. 이탈리아 파르마에 위치한 요리 전문학교 알마(Alma)의 서울 분교인 일꾸오꼬-알마(Il Cuoco-Alma)에서 10개월 동안 마스터 과정을 수강하면서 정통 이탤리언 요리에 푹 빠지게 되었다.

점심에는 코스 요리, 저녁에는 단품 요리를 제공해온 김도형 셰프는 현재 서촌김씨 2호점 오픈을 준비하고 있다. 1호점은 코스 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다이닝을, 2호점은 조금 더 캐주얼한 분위기에서 단품 요리를 즐길 수 있는 트라토리아로 콘셉트를 분리시킬 예정이라고. 봄맞이 준비에 한창인 ‘서촌김씨’의 김도형 셰프를 만나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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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탤리언 요리는 지역 특색이 뚜렷한데 서촌김씨는 어떤 요리를 전문으로 하고 있는지요?

다양한 지방의 요리들이 조금씩 섞여 있어요. 시칠리아 지방의 대표적인 음식인 ‘아란치니(리소토를 주먹밥처럼 동그랗게 뭉쳐 빵가루를 입힌 뒤 바삭하게 튀겨낸 음식)’, ‘링귀네 아이 리치 디 마레(성게알 소스 링귀네)’, 그리고 ‘칸놀리(달달한 리코타 치즈로 채워진 나팔관 모양의 바삭한 페이스트리)’가 준비되어 있고요. ‘비텔로 톤나토(참치 소스를 곁들인 얇게 저민 송아지 요리)’는 이탈리아 북서부에 위치한 피에몬테 지방 요리인데 저희는 송아지 대신 붉은 돼지 품종인 듀록(Duroc)을 이용한 ‘듀록 톤나토’를 제공하고 있어요. 이베리코 품종만큼은 아니지만 거미줄처럼 미세한 마블링 덕분에 뛰어난 식감을 자랑하죠.


손님들이 가장 많이 찾는 서촌김씨의 인기 메뉴는 무엇인가요?

라비올리, 아란치니, 듀록 톤나토요. 칼초네도 저희집 인기 메뉴인데 피자 반죽 대신 바삭한 페이스트리 반죽을 이용하고 있어요. 칼초네 안에는 트러플을 포함한 다섯 가지 버섯, 약간의 마스카르포네 치즈, 베샤멜 소스, 그리고 모차렐라 치즈가 들어 있어요. 성게알 링귀네 역시 대표 메뉴 중 하나인데 닭, 대구, 바지락 육수를 각각 따로 만들어 배합한 스톡으로 소스를 만듭니다. 저희 집 성게알 파스타 맛이 깊은 이유는 이 진한 육수와 넉넉하게 들어가는 성게알 때문이에요.

그중에서도 서촌김씨의 시그니처 메뉴는 라비올리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데 어떤 종류의 라비올리를 선보이고 있는지요?

처음 오픈했을 때는 탈레지오 치즈로 속을 채운 라구 소스 라비올리를 만들었어요. 새우소의 비스크 소스 라비올리와 다섯 가지 버섯소의 버섯 소스 라비올리도 했었고 지금은 랍스터로 속을 채운 사프란 소스 라비올리를 선보이고 있어요. 라비올리의 반응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기대 이상으로 좋았어요. 원래는 점심 코스 메뉴로만 나갔었는데 손님들이 저녁에도 꼭 먹게 해달라고 요청하셔서 추가하게 된 서촌김씨의 최고 베스트셀러입니다.


라비올리는 손이 참 많이 가는 요리인데…

맞아요. 매장이 작아서 다양한 종류의 라비올리를 만들지 못하는 게 안타까울 뿐이에요. 손이 많이 가는 데도 개인적으로 굉장히 애착이 가는 작업이기도 해요. 세몰리나와 강력분, 계란 노른자로 반죽을 만드는데 노른자 함유량이 높아야 반죽이 맛있어요. 저희는 매장에서 이용하는 모든 생면 반죽을 하룻밤 숙성시켜요. 본고장인 이탈리아에서는 숙성 과정은 거치지 않는 게 일반적이라는데 제가 직접 경험해 본 결과 숙성 반죽이 훨씬 더 부드럽고 쫄깃해요.

파스타 같은 경우 생면만 이용하나요?

지금은 링귀네 면을 제외한 라자냐, 라비올리, 탈리아텔레 모두 직접 만든 생면을 이용합니다. 그런데 면 세 가지의 특성이 각각 달라서 매번 세 종류의 반죽을 만들어야 해요. 4월에 오픈할 2호점에서는 100% 생면만을 제공할 예정이고 1호점 보다 파스타 메뉴가 더 다양해질 예정이에요. 다양한 종류의 라비올리뿐만 아니라 제가 개인적으로 너무 좋아하는 카르보나라도 만들 예정이에요. 이베리코 돼지뽈살을 이용하여 구안치알레(소금에 절여 숙성시킨 살루메의 일종)을 직접 만들어 사용할 계획이에요.


개인적으로 이탈리아의 어느 지역 음식을 가장 좋아하는지요?

딱 한 곳만 꼽으라고 한다면 저는 에밀리아 로마냐 (Emilia-Romagna) 지역의 음식이 가장 좋아요. 속을 채운 스터프드 파스타를 워낙 좋아하는 데다가 라비올리를 만드는 작업 자체가 즐거워요. 실패를 했던 적이 거의 없었던 것 같아요. 손님들의 반응이 늘 좋았거든요. 오늘도 저희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한 손님 두 분이 ‘미친 맛’이라고 극찬해주시는데 기분이 너무 좋더라고요.


맛도 맛이지만 손님들이 라비올리를 좋아하는 이유는 한국에도 비슷한 형태의 만두 요리가 존재하기 때문에 친근감을 느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드네요. 올봄에는 어떤 새로운 라비올리를 선보일 예정인가요?

봄과 함께 바질과 토마토의 계절이 돌아왔어요. 그래서 그 두 재료와 치즈를 이용해볼 생각이에요. 올봄에는 라비올리와 함께 토르텔리도 함께 선보일 예정인데, 한국인들이 사골을 고아 국을 만들어 먹듯이 이탈리아 사람들도 소나 송아지 뼈로 육수를 만들어 한국의 만둣국처럼 속을 채운 토르텔리 파스타를 띄워 먹어요. 몸보신하기에 이만한 게 없죠. 그래서 저도 이번 봄, 겨울에 빼앗긴 기운을 회복하시라는 의미에서 바질 토마토 치즈 라비올리와 함께 토르텔리 인 브로도를 선보일 예정입니다.

서촌김씨만의 매력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인테리어를 할 때 한국적인 미를 꼭 넣고 싶었어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저희 가게 벽에 걸려있는 저런 한국의 전통 문양들이 이탈리아에서 코르제티 (corzetti) 파스타를 만들 때 이용하는 틀이랑 너무 흡사한 거예요. 뿐만 아니라 이탈리아의 오래된 문에 달려있는 문잡이는 한국의 옛 기와집 대문의 문잡이와 느낌이 상당히 비슷해요. 그래서 한국적인 느낌을 인테리어에 접목시키면 그게 바로 이탈리아적인 느낌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레스토랑 이름이 서촌김씨이지만 정통 이탤리언을 기반으로 하듯이 말이에요. 서촌김씨의 ‘서’랑 서양의 ‘서’랑 같은 한자잖아요. 어떻게 풀어도 서쪽 동네란 의미가 돼요. 그게 창성동이 될 수도 있고 이탈리아가 될 수도 있고. 이런 게 서촌김씨만의 색깔이었으면 해요.


본인이 추구하는 요리 스타일은 무엇인가요?

저는 복잡하게 음식 할 줄 몰라요. 이탤리언 요리를 좋아하는 이유도 심플하기 때문이에요. 유학도 다녀오지 못했고, 어렸을 때 일식과 한식을 조금 배우긴 했지만 그걸 제가 하고 있는 요리에 어설프게 접목시켰다가는 욕먹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더더욱 정통을 고수하고 있는 거고요.

독창성이 조금 떨어지더라도 직관적인 맛의 요리를 만들고 싶어요. ‘이게 뭐지? 이 요리에 어떤 재료가 들어간 거야?’가 아닌 ‘그래, 이 맛이네. 고기는 고기 맛이 나고 생선은 생선 맛이 나고 토마토는 토마토 맛이 나야지’라는 반응이 나올 수 있는 음식이오. 이탈리아에서도 제가 즐겨먹는 음식은 편안한 트라토리아나 시장에서 할머니들이 만들어 파는 정겨운 먹거리들이에요. 취향이겠죠, 뭐. 저는 기본적으로 손님들이 맛있는 음식을 배불리 먹고 돌아갔으면 좋겠어요. 그게 인심 좋은 이탈리아 문화이기도 하고요.

와인 리스트는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요?

현재 58가지가 준비되어 있어요. 이탤리언 와인이 80% 정도를 차지하고 나머지는 프랑스, 호주, 뉴질랜드 와인이에요. 토스카나, 피에몬테, 시칠리아 등에서 생산되는 이탈리아의 지역 토착 품종을 선보이려고 노력했어요. 개인적으로는 토스카나 지역의 산지오베제와 피에몬테 지방의 네비올로 품종을 좋아해요. 키안티는 특히 채소, 육류, 해산물 등 대체적으로 어느 음식에나 잘 어울리는 와인이에요. 이탈리아인들이 가장 즐겨 마시는 와인이기도 하고요.


2호점 오픈 준비하느라 바쁘실 텐데, 새로운 매장의 콘셉트에 대해 설명해주세요.

문을 열고 들어가면 ‘여기가 이탈리아구나’라고 느낄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있어요. 이탤리언 트라토리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건축 자재인 벽돌과 제가 사랑하는 이탈리아식 대문도 이용할 거고요. 인테리어 디자이너에게 이탈리아 대문 사진 200개는 보여드린 것 같아요. 마침 그분이 이탈리아에서 들고 온 오래된 문잡이가 있다길래 저희 2호점에 꼭 써달라고 부탁했어요 (웃음).

발행일  2017.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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