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llness 2 minutes 2019년 6월 14일

추어탕, 헌신의 보양식

추어탕은 어탕이지만 농촌의 정취가 묻어있는 음식입니다.
밤이 이슥하도록 가을걷이를 끝내고 농부들은 집으로 가는 길에 논두렁의 미꾸라지를 잡아 돌아갔습니다. 수확의 기쁨을 나누기 위해 달 아래 마을에서는 솥을 걸어두고 미꾸라지와 갖은 야채를 푹 고아서 축제의 밥을 나눕니다. 이때만큼은 마을 어르신들을 임금처럼 모실 수 있었습니다. 물론 수라상처럼 산해진미를 올릴 형편은 못되었지만 미꾸라지가 있어 푹 고아 든든한 보양식을 먹여드릴 수 있었습니다.

추어탕은 가난한 백성들의 음식으로 시작했지만 그 영양가가 뛰어나고 맛도 좋아 귀족도 임금까지도 즐겨먹게 되는 보양식이 되었습니다. 위에서 내려온 음식이 아니라 아래로부터 올라간 음식입니다. 외부에서 들여온 음식이 아니라 우리의 삶에 기반을 둔 음식입니다. 시골의 산천이나 논두렁에서 해먹던 추어탕은 오늘날 도시에서 더욱 각광받습니다. 과로와 스트레스로 사람들의 기력이 약해지면 본능적으로 찾게 되는 음식이 바로 추어탕입니다. 뜨끈한 추어탕을 후루룩 후루룩 떠 먹다 보면 어느새 고통과 열병에서 탄력성을 회복하게 됩니다.

추어탕의 역사와 지역별 조리법, 그 맛에 녹아 든 영양적 가치를 알게 되면 참으로 너그러운 음식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웅덩이를 흐린다.” 라는 속담에 나타나듯이 미꾸라지 하면 흉측하고 미끌거리며 못난 존재로 여겨왔습니다만 이 미천한 존재가 공평하게 세상을 감싸 안으면서 우리 음식문화에 뿌리깊은 보양식을 만들어 내었습니다.


추어탕의 역사

추어탕의 역사는 고려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1123년 발간된 “고려도경(高麗圖經)” 은 고려 중기 송나라 사절의 한 사람으로 고려에 왔던 서긍(徐兢)이 지은 책인데 처음으로 미꾸라지의 존재를 기재했습니다. 고려의 민초들이 즐겨 먹는 아홉 종의 수산물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 중에 이 ‘추(鰍)’가 바로 미꾸라지를 의미합니다. 조선시대 통번역을 담당했던 사역원에서 1690년(숙종 16)에 편찬한 중국어 어학서 “역어유해(譯語類解)”에는 중국어에 한글 음을 달았는데 ‘추(鰍)’를 ‘묏그리’로 해석했습니다. 1798년 이만영의 “재물보(才物譜)”와 순조 때의 실학자 유희의 “물명고(物名攷)”에는 ‘밋그라지’가 기재되어 있습니다. 실학자 서유구의 “난호어목지(蘭湖漁牧志)”에는 한글로 ‘밋구리’라고 적고 있으며 ‘드렁허리와 비슷하나 짧고, 머리가 뾰족하고, 몸이 노랗고 검다, 분비된 점액이 몸을 싸고 있어서 미끄러워 붙잡기가 어렵다, 시골사람들이 국을 끓여 먹는데 특이한 맛이다.’라고 기재했습니다. 추어는 다른 어종에 비해 특징이나 맛의 기록이 미약하지만 전국에 걸쳐 분포하였으며 문헌에 기재 된 시기보다 훨씬 이전부터 각 지역마다 탕으로 끓여먹는 풍습이 만들어 졌음을 추정할 수 있습니다.


추어탕의 지역별 특성

추어탕은 지역별로 끓이는 법이 다양합니다. 이제 네 그릇의 추어탕을 맛보며 그 특징을 이해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서울식 추어탕입니다.

서울에서는 추탕(鰍湯)이라 부릅니다. 원래는 미꾸라지가 아닌 미꾸리를 써서 끓입니다. 미꾸리는 미꾸라지와 같은 과이지만 엄연히 다른 어종입니다. 생김새는 미꾸리가 미꾸라지보다 짧고 동그랗고 맛이 더욱 농축되어 있습니다. 미꾸라지가 검지손가락만 하다면 미꾸리는 새끼손가락 정도로 귀엽게 생겨서 통으로 써도 혐오스럽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살점과 뼈의 씹는 맛이 더욱 입체적이었으니 갈아 넣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과거의 논두렁이나 개천에서는 미꾸라지 보다 미꾸리가 더 많이 서식했지만 지금은 자연산 미꾸리가 수요에 비해 턱 없이 부족합니다 대부분이 치어를 구해다 양식하여 먹기에 성장 속도가 빠른 미꾸라지를 쓰는 곳이 대부분입니다.

탕의 육수는 소고기나 곱창을 넣고 진하게 우려냅니다. 삶은 미꾸라지와 함께 두부와 유부, 목이버섯과 애호박, 대파 등을 넣고 고춧가루로 맵고 칼칼하게 끓여냅니다. 마지막에는 채선 대파를 뿌려 먹습니다. 산초는 넣어도 그만 안 넣어도 그만입니다.

서울식 조리법은 현재 “용금옥”과 “형제추탕”이라는 추어탕 노포에서 맛볼 수 있습니다. 주문할 때 통추어탕으로 할지 갈아서 만든 추어탕으로 할지 묻습니다.한 입 먹으면 진득하니 얼큰합니다.육개장이나 해장국을 먹는 기분입니다.위와 장을 따라 손끝까지 체세포에 에너지가 충전되는 기분이 듭니다. 두부와 유뷰가 의외로 미꾸라지의 맛과 어우러져 고소함을 배가 시킵니다.

1930년대 생겨난 이 식당들은 정경계, 문화계 유명 인사들이 모여드는 명소가 되었습니다.

지금은 그 유명세가 희미해 졌지만 식당 벽에 걸린 신문 기사와 남긴 글과 그림을 보니 식당 그 이상의 생활 박물관에 온 기분이 듭니다. 서울식 추탕을 찾는 사람은 과거의 추억을 기억하고 오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시간이 좀 더 지나 이들조차 찾지 않는다면 사라질 지도 모른다는 안타까움도 듭니다.

다음으로는 강원도식 원주추어탕입니다.

여기도 옛날에는 미꾸리를 쓰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그래서 통추어탕이 유명합니다. 갈아서 만든 추어탕도 있는데 이는 타 지역의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육수를 낼 때 소고기를 넣지 않는 것이 서울식과 다른 점입니다. 고추장이나 고춧가루를 써서 얼큰하게 맛을 내니 서울의 조리법과 공통분모가 있습니다. 초벌로 조리한 탕을 작은 무쇠솥에 담아 손님상에서 다시 끓입니다. 펄펄 끓는 추어탕을 먹으면 땀이 저절로 납니다. 기호에 따라서 제피가루를 넣기도 합니다. 서울의 강렬한 맛과 전라도 경상도식의 먹기 편함을 절충시킨 똑똑한 추어탕입니다.

세번째로는 경상도식 추어탕입니다.

마산이나 경주가 유명합니다. 추어탕 중에서 가장 맑은 스타일입니다. 미꾸라지를 푹 고아서 뼈까지 으깨어 체에 걸러 냅니다. 미세하게 걸러진 진액만 넣고 국을 끓이다가 된장으로 간하고 데친 배추속대나 우거지, 토란대, 파, 마늘을 넣고 푹 끓여줍니다. 불을 끄고 방아잎을 넣으면 고급스러운 향이 완성됩니다. 간은 된장으로 하기에 구수함이 그만입니다. 미꾸라지는 아주 미세하게 갈아 형체가 없어서 누가 말하지 않으면 아주 구수한 우거지 된장국을 먹는 기분입니다. 경상도 사람들은 이래야 고급스러운 추어탕이라는 자부심이 있습니다. 개운하니 매일 먹어도 물리지 않으며 은은한 감칠맛이 특징입니다. 먹을 때 산초 가루를 넣으면 풍미가 좋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전라도식 남원추어탕 입니다.

미꾸라지를 삶아 으깨고 시래기를 넣고 오랜 시간 뭉근히 끓입니다. 미꾸라지의 뼈와 살점이 녹아버릴 정도로요. 된장으로 구수하게 간하고 들깨가루를 넣어 걸죽한 고소함이 더해집니다. 먹을 때는 제피가루를 뿌려 탕에 아직 남은 미꾸라지의 비린맛과 흙내를 걷어냅니다. 맛이 가장 풍만하고 고소하며 남녀노소 누구나 먹기 편해서 가장 대중화된 조리법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최근에 대기업에서 출시하는 간편가정식에 남원추어탕이라는 이름으로 나온 것이 모두 그런 이유 입니다.

현재는 전국에서 추어탕을 맛볼 수 있습니다. 지역별로 구별되던 조리법도 서로 영향을 주며 변형되니 이제 그 구별이 어려울 정도 입니다. 서울식 추탕을 파는 곳인데 전라도식 추어탕이 더 인기를 끌기도 하고 미꾸라지와 미꾸리, 제피와 산초의 구별도 모호해졌습니다. 방아잎 대신 구하기 쉬운 부추로 구색을 맞추기도 합니다. 지역색이 아닌 손님의 입맛과 요구에 다라 추어탕의 맛도 변모해 갑니다.


추어탕의 영양

중국 명나라 이시진(1518-1593)이 저술한 의학서 “본초강목(本草綱目)”에는 추어(鰍魚)를 들어 ‘맛이 달고 평(平)하며 독이 없는 식품으로 특히 양기(陽氣)가 위축됐을 때 먹으면 치료가 된다. 배를 덥히고 원기를 돋우며 술을 빨리 깨게 하고 정력을 보하기에 발기 불능에 효과가 있다. 백발을 흑발로 변하게 한다.’ 라고 효능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지금도 대형 병원 주변에 유명한 추어탕 집이 있는 것이 우연이 아닙니다. 병자의 치유식, 회복식으로 추어탕을 꼽습니다. 동물성 단백질과 칼슘의 공급원이 되며 무기질과 비타민도 풍부합니다. 타우린 성분은 간에 작용하여 해독을 돕고 눈을 좋게 합니다. 불포화지방산은 혈액에 흡수되어 에너지원이 되다가 신진대사를 도와 세포 구성 물질로 쓰이기도 합니다. 더불어 함께 끓이는 시래기와 우거지 등은 비타민D와 칼륨, 식이섬유까지 풍부합니다. 따라서 추어탕은 동물성과 식물성 영양소가 결합된 완전 영양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무엇보다 뼈째 갈아내고 푹 고아 식감이 부들부들 하기에 감기몸살에 걸리거나 입맛이 없고 기력이 빠질 때도 훌훌 마시듯 떠넘길 수 있으며 소화 흡수도 쉽게 됩니다.

그 누가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웅덩이를 흐린다고 했을까요, 미꾸라지는 흉측하고 못된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살아서는 개천에서 헤엄치면서 습지의 자기정화 시스템을 가동시킵니다. 논두렁에서는 병충들의 천적이니 농약을 뿌리지 않고 미꾸라지를 풀어 병충해를 막는 친환경 미꾸라지 농법이 각광받고 있습니다. 하천에 미꾸라지가 있으면 그 해 말라리아에 걸리는 환자가 급감합니다. 미꾸라지가 모기 유충을 잡아 먹기 때문입니다. 죽어서는 살과 뼈, 지느러미까지 통으로 추어탕이 되어 가난한 민초의 삶을 허기와 질병에서 구했습니다. 비록 작고 볼품없고 진흙탕에 엉키어 살았으나 사람에게 그 어느 하나 은혜롭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추어탕 한 그릇을 대하면 마음이 차분하고 명료해집니다. 흙이 바닥으로 가라 앉듯이 불안과 근심으로부터 분리됨을 느끼게 됩니다.‘미꾸라지가 용 됐다’는 속담은 이제 수정되어야 합니다. 미꾸라지야 말로 흙탕물같이 뿌연 현실에서 지친 사람들을 태우고 날아오르는 비룡의 다른 이름이었습니다.

발행일  2019.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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