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 스타일리스트, 레스토랑 컨설턴트, 식음 기획자 등 음식을 콘텐츠로 전달하는 일을 하며 경력을 쌓아 온 장진아 대표가 운영하는 채소 친화적 레스토랑 베이스 이즈 나이스. 화려한 미사여구 없이도 채소를 주인공으로 균형적이고 간결한 식사를 내놓는 이곳의 음식은 한 번 찾으면 다음 방문을 또 기대하게 만드는 따스한 매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미쉐린 가이드 서울 2021 에디션이 소개하는 첫 번째 빕 구르망 베지테리안 레스토랑, 베이스 이즈 나이스의 장진아 대표를 만나 채소와 요리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어떻게 요리에 대한 열정을 가지게 되셨나요?
저는 요리를 전공하거나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적이 없어요. 물론 요리를 직업으로 삼아 온 경력도 전혀 없습니다. 저는 사회초년기에 외식기업의 기획과 마케팅 업무 맡았습니다. 카페와 레스토랑을 기획하고 론칭, 운영하는 과정에서 음식을 다루는 다양한 분야를 두루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레스토랑을 브랜딩하고 메뉴를 기획, 개발하는 것부터 디자인과 마케팅에 이르기까지 전반적인 시야를 갖추고 일하는 디렉팅 업무를 담당하게 된 것이지요.
뉴욕에서의 10년 정도의 활동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 저의 일을 이어가려고 하니, 제가 생각을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은 결국 ‘음식’이라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직접 요리까지 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대표님의 롤 모델은 누구이신가요? 영향을 받은 특별한 인물이 있나요?
제 롤모델은 어떤 특정인에 국한되지 않아요. 자신의 소신과 철학을 지키며 자신만의 것을 개척하고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두루 제게 영감을 줍니다. 요리인, 정치가, 아티스트 등 분야를 막론하고 각자의 것을 만들어 나가는 사람들에게서 영감을 받으며 그 자세를 배우게 됩니다. 무엇보다"사람"과 "본질"을 중심에 두는 사람들에게 특히 영향을 받습니다.
다양한 식재료 중, 특별히 채소를 주제로 삼고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저는 10년 정도 뉴욕에 살았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뉴욕과 근처의 로컬 채소들에 길들여져 있었어요. 한국으로 돌아와 이곳의 채소를 자주 맛보니, 미묘한 다름이 느껴졌고 흥미롭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국 채소만의 진미를 느낀 것이지요! 특히 저의 고향인 제주도에서 그 차이를 확연히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채소들은 대체로 수분과 당분이 높아요. 그래서 질감과 식감이 부드럽고 아삭거리며, 향미가 매우 좋아서 채소의 청량함을 제대로 즐길 수가 있어요. 제가 어릴 때 늘 먹고 자라온 채소들인데, 꽤 긴 시간동안 타국 생활을 하고 돌아오니 다시 이것들의 진미를 발견하게 된 셈이죠.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한국의 식탁 위 채소들을 살펴보니 대부분이 반찬의 형태로 강하게 간을 하거나 참기름, 들기름으로 향을 덮어버리곤 했으니까요. 그리고 충분히 훌륭한 주인공의 대접을 받을 수 있는데, 육류나 해산물의 메인재료를 뒷받침하기 위한 부재료로 쓰이는 것이 많더라고요.
우리가 흔히 ‘채식’을 이야기할 때, 산채요리나 생채소를 위주로 먹는 서양의 샐러드 요리로 국한해 떠올리는 것을 보고 생각을 했죠. “하루의 한번쯤은 채소를 주인공으로 한 식사는 어떨까”, “간결히 조리해 채소 본연의 진정한 맛과 향을 살리며 속은 편안한 음식은 어떨까”. 이렇게 제가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를 음식으로 담아내고 있습니다.
보통 어디서 식재료를 구매하시나요? 혹시 직접 재배하시는 것도 있으실지요?
채소를 많이 먹는 일이 농사를 짓고 특별한 요리를 하는 복잡한 일이 아니라, 오히려 일상 속의 실천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대부분의 채소는 가까운 대형마트 혹은 동네 채소 가게에서 구합니다. 대형마트는 유통망이 방대해서 산지가 다양한 전국의 채소들을 한자리에서 볼 수가 있고 무엇보다 매일 찾을 수 있는 거리이기 때문에 필요한 만큼의 양만 사서 채소가 시들어 버리게 되는 일이 없죠. 쉽게 손이 닿고 자주 마주할 수 있는 보통의 채소를 선호합니다.
가장 좋아하는 식재료는 무엇인지, 어떻게 활용하는지?
가장 좋아하는 채소는 제주산 건 표고버섯입니다. 제주산 건 표고버섯은 속살이 은은한 금빛을 띄고 쫄깃하면서도 입 안에서 부드럽게 느껴지죠. 그리고 여느 향채와도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강하고 매혹적인 향미를 품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표고버섯을 채수를 우려내는 주재료로 사용합니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채소들 중에서 묵직한 향미를 내기 때문에, 좀 더 가볍고 경쾌한 향을 내는 신선한 재료들과 마리네이드 한 후 직화로 구워내는 BBQ 요리에도 즐겨 사용합니다.
요즘 ‘지속가능성’과 ‘비건’이 화두인데, 이에 대해 대표님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신가요?
당장 눈앞에 보이는 ‘현재’보다는 ‘미래’를 위해, 그리고 ‘나’를 넘어 ‘우리’를 위해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다만 음식의 본질은 우리에게 이롭고 건강한 것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섭취하는 식재료를 극단적으로 제한하는 방향은 지양합니다.
베이스 이즈 나이스에서는 ‘비건’으로 스스로의 음식을 정의하기보다는, 채소의 비율을 높이는 "채소 친화적 태도"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베이스 이즈 나이스가 추구하는 요리는…
채소에 중심을 두는 식생활을 이야기합니다. 단순히 채소만 먹는 것이 아니라, ‘채소 친화적’인 요리를 내어드리고 있어요. 다양한 채소 본연의 색과 질감, 식감, 향미와 풍미를 최대한 존중하는 요리를 추구합니다.
저는 이 공간을 통해 채소 친화적이며, 균형적이고 간결한 식사를 보여드리고 싶어요. 자주 먹고 싶고, 몸에 이롭도록 우리의 삶 속에서 일상성을 지닐 때 훌륭한 음식이 된다고 생각해요. 우리와 음식의 관계는 매우 직접적이며 밀접합니다. 그래서 이 본질적인 관계가 맛있고, 이롭고, 아름다우며 긍정적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이 곳을 찾아 주신 분들이 분명 한번쯤 맛보았던 보통의 채소를 색다르게 맛보고 다르게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경험이 무척 즐거워서, 의무감이나 강요에 의해서가 아닌, 자연스럽게 채소 친화적 식생활을 갖게 되었으면 합니다.
이곳에 와주신 많은 손님들이, 남녀 할 것 없이 ‘엄마 생각이 많이 난다’고 하세요. 처음은 친구와 연인이 왔다면 재방문을 할 때는 엄마 혹은 가족들과 오시는 분들이 정말 많습니다. 값비싸고 희소한 식재료로 차려진 식사가 아닌데, 삶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 엄마를 자연스럽게 떠올리는 음식이라니 여전히 너무 신기하고 감사해요. 아마도 이것이 소박하지만 이롭고 아름다운 에너지를 지닌 채소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레스토랑 이름, ‘베이스 이즈 나이스(Base is Nice)’의 의미는…
저는 제주도에서 나고 자랐고, 도쿄와 뉴욕에서 살았습니다. 학습을 통해 얻는 지식보다는, 매일 세 끼를 먹으며 자신에게 켜켜이 쌓아 온 맛의 기억이 훨씬 그 사람에게 끼치는 영향이 크다고 생각해요. 제 인생에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 제주, 도쿄, 뉴욕에서 쌓였을 저만의 맛의 경험이 근본(base)이 되어 좋은 것(nice)을 만들고 싶다는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베이스 이즈 나이스의 시그니처 요리
홍고추 퓌레의 구운 두부 밥
고추가루나 고추장이 아닌 홍고추만으로 맛을 낸 홍고추 퓌레와 들기름향을 더한 직화두부, 영양부추와 바삭한 연근칩을 올린 채소밥입니다.
우리 주변의 흔한 "보통의 채소"를 약간 다르고, 맛있게 즐기는 방법을 소개하는 것이 제가 추구하는 요리입니다.
한국인이라면 고춧가루와 고추장은 김치나 떡볶이처럼 일상적인 음식을 통해 자주 맛봅니다. 하지만 정작 그 재료인 홍고추는 본래의 맛을 즐기며 먹는 일이 흔치 않습니다. 저는 홍고추가 내는 본연의 기분 좋은 단맛과 개운하고 맑은 매운맛, 채소가 품은 수분이 내는 촉촉한 텍스처를 보다 많은 분들이 맛을 보았으면 하는 생각으로 홍고추를 뭉근하게 조려서 퓌레를 만들었습니다. 홍코추 퓌레는 밥과 아주 잘 어울리며, 두부, 연근, 영양부추와도 훌륭한 조화를 이룹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