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서울은 ‘정교하면서도 거침없는 한식의 매력을 경험’을 제안하며 미쉐린 가이드 서울 2022에 새로운 스타 레스토랑으로 이름을 올렸습니다. 이곳을 이끄는 김도윤 셰프는 한국 음식이야말로 ‘사계절이 주는 기다림’을 보여준다고 말합니다. 그는 계절, 절기가 주는 다양함이 곧 한국의 맛이라고 설명하며, 이를 잘 표현하기 위해 식재료 본연의 맛을 가장 중시합니다. 다양한 조리법을 경계 없이 활용해 원 재료의 향과 식감을 최대한 보여주는 윤서울의 김도윤 셰프를 만나 미쉐린 가이드를 처음 받은 순간에 대해 물었습니다.
(배너 이미지 by lamainedition)
김도윤 셰프가 걸어 온 길은…
처음 음식을 만든 기억은 국민학교 4학년 때 가정 시간이에요. 당시는 초등학교가 아니라 국민학교라고 부르던 시절이었는데요. 수업 중에 깍두기를 만드는 시간이 있었어요. 별다른 레시피도 없이 제 방식으로 만들었는데, 친구들이 제 것이 맛있다고 하더라고요. 만든 것은 집으로 가져가서 식구들과 식사할 때 꺼내서 상에 올렸는데, 가족 모두가 맛있다며 이야기하던 기억이 아직도 행복하게 남아 있어요. 누군가가 제 음식을 먹고 기뻐하는 모습이 흐뭇한 감정으로 기억되는 것을 보니, 요리의 즐거움을 그 때 어렴풋이 알았나 봐요.
요리를 직업으로 삼은 지는 벌써 30년 전이죠. 저는 요리를 1992년부터 시작했어요. 당시에 자취를 하고 있었는데, 어려운 상황에서 사흘 정도 굶은 적이 있었어요. 그 당시, 음식점에서 일을 하며 밥이라도 많이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처음 요리를 시작하게 된 것은 인생의 거창한 계획이 아니었던 것이죠.
일하던 곳은, 자기 식사는 자기가 해 먹는 방식으로 운영되는 곳이었어요. 제겐 굉장히 좋았죠. 하다 보니 재미도 있었고, 주변 사람들에게 음식을 만들어 먹여 보고 반응을 보는 것도 즐거웠어요. 우연히 들어간 곳에서 적성을 찾았다고나 할까요? 이 요리의 맛은 어떤지, 사람들이 좋아하는지… 스스로를 규정하지는 않았지만, 저만의 레시피로 테스트를 해 본 셈이에요.
다양한 퀴진을 거쳐 지금의 한식 다이닝에 오기까지, 어떤 경험을 하셨나요?
한식은 물론이고 일식, 프렌치, 이탈리안 등 다양한 경험을 쌓아 왔네요. 요리를 너무 작은 틀 안에서 규정하지 않고, 사람이 먹고 즐기는 것이라고 생각하니 배울 것이 너무나 많더라고요. 좋은 요리를 하려면 더 많이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늘 있었어요. 지금도 공부를 하지만 끝이 없습니다. 아무리 배워도 늘 배울 것이 있죠.
식재료도 정말 중요해요. 음식을 프렌치냐 일식이냐 한식이냐 이런 방식으로 요리를 하는 것보다, 그 식재료가 자라는 환경과 자연을 이해하는 것이 어쩌면 더 본질적이라고 봐요. 저는 모르면 그 식재료가 나는 곳을 찾아 재배하고 수확하는 과정을 봅니다. 요리를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부터, 이것이 습관이 된 것 같아요. 90년대에는 지금처럼 인터넷에서 쉽게 사진과 영상 같은 자료를 찾기 힘들었으니까요. 1994년에는 추자도에서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갔고, 그것을 시작으로 전국을 돌아 다니며 농산물 수산물 가리지 않고 많이 보고 배웠습니다.
윤서울의 시그니처 요리: 면
‘면’을 소개하고 싶어요. 국수는 세계적으로 봤을 때 아시아 지역에서 널리 사랑받는 요리인데요, 아무래도 면의 탄력을 위해 첨가제를 넣어 만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14년 전부터 면을 연구하기 시작했어요. 대만과 일본, 중국을 다니며 면을 배우고 공부했지만 첨가제를 쓰지 않는 것을 찾기가 더 어렵더군요. 좀 더 순수하고 속이 편한 면은 없을까 궁금했고, 직접 만들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980년대에 값이 싸고 품질이 일정한 미국산 밀가루가 들어오면서 한국에서는 밀가루를 굳이 생산할 이유가 없어졌어요. 좋은 점도 있었겠지만, 제분소나 정미소도 그 당시에 많이 사라졌고, 그래서 오래된 밀가루를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연히 향도 거의 나지 않았고요. 밀가루에서도 향이 날 수 있거든요. 그런 은은하고 자연스러운 향이 있는, 신선한 면을 만들어 보여 주고 싶었어요.
면을 만들 때는 기본 반죽이 2kg 정도가 되어야 하는데요, 어떤 날은 아홉 번을 넘게 테스트하고 수정하며 하루 종일 면 생각만 하고, 면만 만졌던 기억이 납니다. 면이 토핑을 뒷받침하는 부재료가 아니라, 면 자체가 주인공이 될 수 있게, 면만으로도 맛있는 요리를 만들 수는 없을까 연구하며 결국 지금의 윤서울 면이 만들어졌어요.
윤서울의 국수 요리의 주인공은 면입니다. 이를 오롯이 살리기 위해 육수도 공산품은 전혀 사용하지 않고 직접 말리고, 숙성한 재료들로 은근히 만들어낸 것으로 준비해요. 윤서울을 오픈하면서 ‘면’을 하나의 독립된 요리로 내었을 때, 손님이 그 면을 드시고 입가에 웃음이 보였을 때를 잊지 못해요. 정말 행복했어요.
김도윤 셰프의 요리 철학은 무엇인가요?
식재료 원물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위대한 와인은 그 지역의 테루아와 품종에 의지하는 것처럼요. 식재료의 품종과 재배 방법, 유통 과정, 보관 방법 모두가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들기름을 만드는 들깨의 품종도 50여가지가 넘는데, 그 중 저희는 ‘들샘’이라는 품종을 쓰죠. 셰프라면 자기가 쓰는 식재료가 어디서 생산되고, 어떤 품종이고, 특징이 무엇인지는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보관하며 들기름을 직접 짰을 때, 향이 희미해지거나 기름의 양이 줄어들면 더 이상 손님에게 드리지 않는 것도 저희의 원칙이죠.
요리를 완성하는 것은 결국 ‘향’이에요. 좋은 향은 인위적인 것이 아닌, 결국 식재료에서 나오거든요. 국수에서도 고소한 향과 맛이 날 수 있다는 것, 그런 경험을 드리고 싶어요. 익숙한 것처럼 보이지만 다른 곳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느낌을 받으실 수 있도록요.
셰프에게 영감을 주는 것들은?
요리 그 자체에요. 사실 저는 요리라는 매개체가 없으면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거든요. 휴일은 가게에서 테스팅을 하거나 식재료를 보러 떠납니다. 언제부터인지, 쉬는 날도 요리만 하게 되고 여행을 가서도 요리 생각만 해요. 가족이나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면 그들이 좋아하는 요리를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식재료 생각을 하다가 잠이 들기도 하고, 그러다가 깨서 번뜩 떠오른 아이디어를 메모하기도 해요. 제게 요리는 추억이자 사람들과의 삶 그 자체랍니다.
김도윤 셰프에게 미쉐린 스타의 의미는…
셰프들의 로망이죠. ‘미쉐린 스타’라는 것으로 세계 미식가들에게 받아들여지니,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알아 봐주시는 분들이 많아져서 좋습니다. 미쉐린이 아니였다면 ‘’윤서울”이라는 이름이 이렇게 널리 알려질 수 있었을까요? 아직도 꿈만 같습니다. 앞으로 더 좋은 기회도 찾아올 것이라고 믿어요.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입장에서도, 이전보다 환경이 더욱 좋아졌어요. 함께 일하는 직원을 더 채용해 서비스에 신경 쓸 여력이 생기니까요. 무엇보다 인원을 보충하고 더욱 안정적인 레스토랑의 모습을 갖추어 나가는 것이 지금의 목표입니다.
윤서울이 미쉐린 스타를 받게 되었을 때…
뉴욕 출장을 가기 하루 전 날, 미쉐린 1 스타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어요. 출장 준비로 바쁘고 정신이 없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연락에 처음엔 누군가의 장난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어요. 갑자기 축하한다는 말을 들으니 너무 놀랐고, 꿈만 같았죠. 혼자 가게에 멍하니 앉아 있던 기억이 나네요. ‘나 같은 사람에게도 기회가 주어지는구나.’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그 날 욕심을 부려 뉴욕 출장에 한국 식재료를 더 많이 챙겨 가고, 면도 만들어 가 뉴욕에서 면 요리도 했네요. 앞으로 우리의 음식을 더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미쉐린 스타를 받기를 원하는 젊은 셰프들에게 할 수 있는 조언은…
올해로 음식을 업으로 삼아 온 지 30년째네요. 돌이켜 보니, 자신을 규정하는 ‘타이틀’보다는 본질에 집중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천천히 한 길을 걷다 보면 좋은 결과가 있을 거에요. 결과물을 얻기까지는 오랜 시간과 숙련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