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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tures 2 minutes 2019년 8월 5일

콜드누들을 한국에서 맛봐야 하는 이유

콜드누들, 여름을 보내는 경험의 기록

밥과 국이 지배하는 한국인의 식탁에서 면(麵)은 그 자리를 쟁취하고자 호시탐탐 기회를 노렸다. 밥 짓고 탕 끓이는 주방이 줄어들고 남녀노소 모두들 한끼 식사는 간편히 하자는데 동의하자 콜드 누들은 재빨리 탕반의 자리를 치고 들어와 승리의 깃발을 꽂았다. 

콜드누들은 한국 여름의 청사진이다. 시원한 쾌감, 쫄깃한 면발, 숙성된 양념, 영양적 균형으로 한끼 훌륭한 음식으로 자리잡았다. 이는 변방에서 센터로 오기까지 스스로를 진화시킨 선택과 경험의 기록이었다. 동네 분식집부터 한식 파인다이닝 레스토랑까지 콜드누들은 이제 메인디쉬의 왕좌에 당당하게 앉아있다.

비채나의 정찬코스에 구성된 메밀냉면
비채나의 정찬코스에 구성된 메밀냉면

대표적인 콜드누들로는 냉면, 막국수, 밀면, 콩국수, 김치말이소면 등이 있다. 장마와 미세먼지 고온다습의 기후에서 유일한 위안은 시원한 면 한 그릇이다. 이 음식은 사람들의 무기력한 식욕을 작동시켰고 저작 활동을 윤활하게 했으며 소화력을 낭비하지 않는 차원에서 완벽한 영양을 공급했다.

그런데 콜드누들의 강점은 단순히 시원함 뿐만이 아니다. 육수, 면, 고명, 이 모든 요소가 중요하며 하나하나 입에 넣고 있으면 이 맛의 요소가 한국인의 삶과 얼마나 긴밀하게 얽혀 있는지 설명해 준다. 그리고 이 사실은  한국에 오면 왜 콜드누들을 맛보아야 하는지도 가르쳐준다.

소고기편육, 메밀면, 육수의 조화 남포면옥
소고기편육, 메밀면, 육수의 조화 남포면옥

경쾌한 식감과 감칠맛의 묘미

밥은 한술 한술 독립적인 단위로 떠먹게 되지만 면은 흐름이다. 한 젓가락 후루룩 입에 넣으면 젓가락을 내려 놓기가 어렵다. 한 손은 그릇을 부여잡고 한 손은 면을 비빈 후 끌어올려 입으로 가져간다. 위까지 채워 넣었다 싶을 때 면을 다시 아래로 끌어내린다. 마치 지휘자처럼 젓가락을 지휘봉 삼아 누들 교향곡을 연주한다.

냉면을 먹는 순간은 온몸이 저작활동을 한다. 찰랑거리는 면발은 입에서 위까지 관통하고 혀로부터 위까지 그 면에 달라붙어 쫄깃쫄깃 리드미컬하게 꿈틀거린다. 음식이 들어가는 입 주변과 치아로부터 목구멍에 걸쳐 식도를 통해 소화를 담당하는 장기까지. 손은 말해 무엇하랴 쭛삣해진 발끝마저 꿈틀거린다. 먹는 사람들은 말 없이 표정도 매우 고요하나 실상은 매우 자아의 본능에 충실하며 면과 혼연일체가 되어 역동적이 움직임이 되는 것이다.

1965년부터 이어온 남포면옥의 평양냉면
1965년부터 이어온 남포면옥의 평양냉면

육수는 고기를 우려내어 만든다. 소고기가 가장 일반적으로 쓰이고 경우에 따라 돼지고기 닭, 꿩 등을 우려낸다. 기름기나 불순물을 섬세히 제거한 후 차갑게 식히니 한층 더 농축된 감칠맛이 탄생한다.   

콜드누들은 유동적이고 역동적이며 각 세대의 취향과 생각에 반응하며 발전해왔다. 감정이 격양될 때는 시원한 면을 먹으며 걱정이나 우울함을 날려 보낼 수 있었다. 체중을 줄이고 유지하는 데도 최선의 방법이다. 무더위로 교란된 신진대사를 정상화 하니 냉면 한 그릇 안에도 수많은 메시지가 함축되어 있다.  

콜드누들의 면발과 육수 제법

메밀면, 고구마전분면, 밀면 등 면의 구분 

냉면 전문점은 시판 건면을 쓰지 않고 당일 제면한다. 조금 더 엄격한 주방장은 당일 쓸 곡물의 양을 아침에 제분해 두었다가 손님의 주문이 들어오고서야 반죽을 시작하여 면을 뽑고 삶아낸다. 곡물의 향이 최절정을 이룬 생파스타인 셈이다. 보관용이 아니라 당일 소진하기에 면을 만들기 위한 화학첨가제는 넣지 않는다. 우선 동그랗게 반죽을 하고 면틀에 넣어 압축하여 뽑아낸다. 밀가루는 소량이며 다양한 곡물가루가 배합된다. 그 중 인기가 많은 것은 메밀과 고구마 전분이다. 메밀은 지긋이 누르면 으스러지는 식감인데 쫄깃함을 보완하기 위해서 고구마 전분의 힘을 빌린다. 따라서 콜드누들의 쫄깃함은 글루텐의 활성화가 아니라 녹말의 찰진 축합력이다. 부산식 밀면에는 밀가루를 쓰지만 고구마전분을 배합하여 쫄깃함을 연출한다. 로우 글루텐 혹은 글루텐프리를 지향하니 콜드누들을 먹고서도 소화가 잘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양양메밀막국수 주문을 받아 제면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양양메밀막국수 주문을 받아 제면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차갑게 식히는 육수의 감칠맛 

냉면의 육수는 고기육수이다. 들어가는 육종만도 소, 돼지, 닭, 꿩 등 다양하다. 가만히 살펴보면 탕을 끓이는 재료와 동일한데 이는 한식이 추구해온 영양과 감칠맛이다. 그런데 차가운 육수에서는 맛과 향이 더욱 강화되어 누린내와 지방, 불순물을 걷어내는 세심한 정성이 필요하다. 콜드 누들이 간단해 보이지만 만드는 절차는 더욱 복잡하다.

발효법의 활용 

고기 육수를 내지 않을 때는 김치나 발효 식품을 활용한다. 시원하게 담은 동치미는 그 자체가 훌륭한 육수다. 메밀면이나 고구마전분면, 밀가루 소면과도 잘 어우러진다. 명태나 가자미 등을 고춧가루와 발효, 숙성시킨 젓갈도 회냉면의 훌륭한 소스가 된다.



20년 숙련된 장인의 맛 진미평양냉면
20년 숙련된 장인의 맛 진미평양냉면

콜드누들의 다양성

대표적인 콜드누들에는 평양냉면, 함흥냉면, 막국수, 밀면, 김치말이소면, 콩국수, 회냉면 등이 있다. 서울은 이 모든 분야가 고루 발달해 왔으며 지방에서는 각자의 이름을 걸어 특화된 음식으로 발전했다.  

평양냉면과 함흥냉면 

냉면은 면을 주류로 끌어올린 한국 미식계의 개척자다. 그 중에서도 평양냉면과 함흥냉면은 선두에 있다. 이 둘은 북에서 내려온 실향민들이 자신의 고향 음식으로 생계를 꾸려나가고자 만들어낸 비슷한 동기를 지닌다. 전쟁에 대한 기억과 망향에 대한 아련함이 음식에 베어 있어 먹는 이들은 음식의 맛과 관계없이 진한 감수성에 젖어든다. 전쟁을 거친 세대들은 그 감정이 더욱 짙어 노포 냉면집에서서 면을 먹으며 지난 날의 아픔을 어루만진다.  

평양냉면은 담담하며 함흥냉면은 역동적이다. 평양냉면의 면발은 메밀면을 상징하고 육수는 소고기육수가 일반적이다. 함흥냉면은 고구마 전분면을 상징한다. 쫄깃한 면발에 매콤 달콤한 비빔장이 들어가는 유형이 인기가 많다.

진미평양냉면
진미평양냉면

막국수와 밀면

막국수 하면 강원도 특히 양양이나 춘천을 떠올리고 밀면 하면 부산이 떠오른다. 막국수는 메밀면이고 밀면은 밀가루면이다. 물론 고구마전분으로 쫄깃함을 가미했다. 이 둘은 한국의 지방 명칭과 연관성이 더욱 깊다. 생겨난 근원에 대해서는 평양냉면이나 함흥냉면과 독립적이라 볼 수 는 없지만 문화적인 관점에서 조금 더 경쾌하다. 

양양메밀막국수의 회막국수에는 잘 삭힌 명태회가 올라가 있다.
양양메밀막국수의 회막국수에는 잘 삭힌 명태회가 올라가 있다.

김치말이소면, 회냉면, 콩국수와 들기름막국수 

이들은 특별한 재료가 이름으로 붙은 경우이다.
김치말이소면: 김치는 한국의 콜드누들에도 아주 적절한 소스 역할을 한다. 발효를 거치며 시원하고 곰삭은 맛은 여름의 갈증을 풀기에 적절했다. 따뜻하게 말아먹는 소면을 여름에는 시원한 멸치국물을 내고 김치를 넣어 훌훌 마시듯 먹는다.

회냉면: 곰삭은 생선젓갈을 면에 올리면 회냉면이 된다. 가오리, 가자미, 명태, 홍어 등을 고춧가루 양념을 하여 발효를 시키는데 이 과정에서 매콤한 감칠맛이 극대화 된다. 이는 냉면과도 너무 잘 어울려 비비면 비빌수록 매력적이다. 특히 고소한 참기름과 어우러지면 그 맛의 추억을 오래 간직하게 된다. 

특히 요즘 젊은층으로부터 열광적인 호응을 얻는 두 종류의 콜드누들이 있다. 이는 콩국수와 들기름막국수이다. 전자는 크림파스타와 후자는 오일파스타와 식감이 흡사하다.
콩국수: 국산콩을 공수하여 가마솥에 삶고 재래식 맷돌로 갈면 생크림과 비슷한 질감의 소스를 얻어낼 수 있다. 여기에 잘 삶은 메밀면이나 밀가루 면을 말아 먹는다. 면에 콩소스를 듬뿍 얹으면 고소함이 이루 말 할 데가 없다. 이는 한국에서만 만들어지는 독특한 누들이다.   

황금콩밭의 콩국수
황금콩밭의 콩국수

들기름막국수: 쌉싸름하고 구수한 메밀면을 고소한 들기름에 비벼 먹는 방식이다. 김가루만 살짝 뿌려서 감칠맛을 더해준다. 아주 심플한데 향미가 압축되어 한번 맛보면 중독성이 있다. 콜드누들계의 에스프레소에 비견된다.

한국식 콜드누들의 쾌감 

아시아 문화권에서 중국과 일본은 누들 강국이다. 그런데 차가운 음식을 경계하는 중국의 식문화와 소바와 우동이 강력한 주류를 이루는 일본에 비해 콜드누들에 한해서는 한국은 어느 하나 강자도 약자도 없이 다양한 양상으로 발전하여 왔다. 

한국식 콜드누들은 면, 고기, 양념장과 들기름, 야채의 군집이 차가운 환경에서 얼마나 완벽하게 융합할 수 있는지를 알려준다. 이 음식 덕분에 여름의 무기력함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여름을 시원하게 보내기 위해 사람들이 동조하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점심 메뉴를 찌개나 탕국에서 콜드누들로 바꾸는 것이었다. 누구 하나 특별한 강자도 없고 그 어떤 경계나 금기도 없다. 한국에서 콜드누들을 통해 얻는 것은 자유로운 쾌감이다.

필동면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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