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데 음식만 한게 없다고 한다.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외교 수단이기도 한 음식. 입안에서 한 번, 마음까지 두 번 감동을 주는 음식 외교는 긴장된 분위기를 완화시켜 상호 이해관계를 도모하기도 하고 때로는 의미심장한 정치적 메시지를 담아내기도 한다. 한 나라의 원수가 주최하는 국빈 만찬은 주최국의 환대 문화나 음식 문화를 반영함과 동시에 국빈에 대한 일종의 헌사를 의미하기도 한다. 올림픽처럼 범국가적으로 치러지는 국제 행사에서도 음식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것 이상의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평창 동계올림픽이 일 년 앞으로 다가왔다. 병풍처럼 펼쳐지는 태백산맥의 빼어난 경관을 배경으로 총 17일간 95개국 3,000명의 선수들이 15개 동계 스포츠 종목에서 승부를 겨루게 될 평창 올림픽은 1988년 서울 올림픽에 이어 한국이 개최하는 두 번째 올림픽이 될 것이다.
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다양한 분야에서 준비가 진행되고 있다. 올림픽에서는 다소 과소평가되는 식음료 분야도 그중 하나다. 올림픽의 특성상 그 어떤 행사보다도 치열하고 육체적인 소모가 많기 때문에 3천 명의 선수들 외에도 동행하는 4만 명의 올림픽 관계자들은 늘 배가 고플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임무는 과연 누구에게 주어질 것인가? 누군가는 그들의 끼니를 책임져야 한다. 그것도 하루에 몇 번씩 말이다.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음식을 제공하게 될 케이터링 업체 중에는 럭셔리 외식 사업을 전문으로 해온 런던의 모시만스(Mosimann’s)도 포함되어 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기점으로 2010 밴쿠버 동계 올림픽, 2012년 런던 올림픽, 2014년 소치 동계 올림픽, 그리고 가장 최근인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까지 모시만스는 올림픽과 깊은 인연이 있다.
모시만스는 50년 경력의 저명한 스위스 출신 요리사 안톤 모시만(Anton Mosimann)이 설립했다. ‘셀러브리티 셰프’의 원조 격인 그의 단골손님 중에는 A급 영화배우를 비롯하여 수상, 대통령, 그리고 4대에 걸친 영국 왕가까지 포함되어 있다.
런던의 유서 깊은 도체스터 호텔의 레스토랑을 총괄했던 13년 동안 그는 두 개의 미쉐린 스타를 받았다. 프랑스 내에 있는 레스토랑을 제외하고 미쉐린 스타 두 개를 받은 최초의 레스토랑이다. 도체스터 호텔을 떠난 후 1988년, 그는 ‘모시만스’라는 상호 아래 런던의 최고급 주택가인 벨그라비아(Belgravia)에 프라이빗 다이닝 클럽을 오픈했다. 뿐만 아니라 전문가들을 양성하는 요리 학교와 럭셔리 케이터링 업체도 함께 설립했다. 현재 회사의 경영 및 운영은 두 아들 필립과 마크에게 넘긴 상태이며 그들 역시 호텔 및 외식 분야의 오랜 베테랑들이다.
2000년, 영국 황태자로부터 왕실 조달 케이터링 허가증을 받은 모시만스는 2011년, 윌리엄 왕자와 캐서린 미들턴의 결혼식 피로연 만찬을 제공했고, 이듬해인 2012년에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즉위 60주년 기념행사 오찬을 제공하기도 했다.
모시만스에게는 또 하나의 대형 케이터링 프로젝트가 될 2018평창 동계올림픽. 2016년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기획을 도맡아온 맏형 필립은 평창과 강릉 일대를 사전답사하며 꼼꼼한 준비 작업을 하고 있다. 스태프 채용부터 부대시설 및 물류창고 확보, 담당 참가국 파빌리온의 주방 셋업까지 그가 맡은 임무는 막중하다. 하지만, 그는 모든 일이 원활하게 진행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오랜 세월 함께 해온 전문가들과 모시만스라는 브랜드의 노하우가 있기에.
최근 한국을 재방문한 필립 모시만을 만나 그 치열하면서도 흥미진진한 올림픽 케이터링의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평창 올림픽에서 맡게 된 임무는 무엇인가요?
음식으로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게 제 임무입니다.
평창 올림픽 때 어느 참가국의 케이터링을 맡게 되었나요?
아직 확정되지 않아서 이야기할 수 없지만 두 달 내로 결정이 날 거예요. 일부 참가국은 여전히 전용 공간으로 이용할 장소를 찾고 있는 상황이고 그것이 확정되는 대로 본격적인 준비를 시작할 수 있을 거예요. 예전부터 모시만스와 협업해온, 그래서 저희와 매우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참가국들과 현재 다양한 논의를 하고 있어요. 모시만스의 단골 고객들은 보통 올림픽 기간 동안 전용 공간을 이용할 만큼 규모가 큰 편이고 자국 음식을 제대로 소개하기 위해 대단히 노력을 많이 하죠.
이번이 모시만스가 참가하는 여섯 번째 올림픽으로 알고 있어요.
그런데도 아직 저에게 머리카락이 남아있다는 게 신기하죠!
다른 대형 행사들과 비교했을 때 올림픽 케이터링은 어떻게 다른가요?
저는 개인적으로 전 세계 음식 문화에 대단한 관심을 갖고 있어요. 올림픽 같은 경우 개최국의 미각을 파악하는 게 중요해요. 동시에 개최국의 다양한 음식 중에서도 고객이 특별히 더 좋아할 만한 음식이 무엇인지 간파해야 해요. 개최 도시 및 개최국을 대표할만한 메뉴와 고객의 미각을 동시에 반영한 음식을 제공하려고 노력하죠. 그러기 위해서 사전 공부를 철저하게 하는 편이에요. 개최국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특별한 식재료가 있는지,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조리법이나 요리가 있는지 찾아보고 그 나라의 음식 문화를 최대한 빛낼 수 있는 메뉴를 구성하죠.
선수들을 위한 식사도 준비하나요?
선수들은 보통 선수촌에서 식사를 해요. 최적의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한 특수 식단이 제공되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경기가 끝난 후에는 선수들 역시 자국 파빌리온을 방문하여 식사를 하죠. 메달도 땄고 즐길 시간이잖아요. 선수들을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는 올림픽 위원단도 참가국 파빌리온에서 식사를 하게 됩니다.
올림픽 기간 동안 어떤 스타일의 음식을 제공할 예정인가요?
간편한 테이크 아웃을 제공하는 간이식당, 앉아서 주문하는 레스토랑, 특별한 행사를 기념하기 위한 만찬이나 갈라 디너, 칵테일파티, 그리고 뷔페까지 다양한 스타일의 다이닝을 제공하게 될 거예요.
올림픽 규모의 케이터링을 위해 보통 몇 명의 팀원이 함께 하나요?
매번 다르긴 한데 과거 올림픽의 예를 들어볼게요. 2008 베이징 올림픽 때는 총 30명의 인터내셔널 매니저들이 움직였어요. 그들 대부분이 모시만스를 거쳐갔어요. 평상시에는 세계 각국에 뿔뿔이 흩어져 있다가도 저희가 연락해서 올림픽 때 도와달라고 요청하면 하던 모든 일을 중단하고 기꺼이 달려와요. 그만큼 올림픽을 사랑하는 사람들이죠.
소치 동계 올림픽 때는 88명의 인력이 동원되었고 리우데자네이루에서는 그의 반인 40명 정도와 함께 일을 했는데 그중 대다수가 현지인이었어요. 현지인과 함께 현지 문화에 따라 일을 하다 보면 배우는 것이 참 많아요. 저희가 선생인 동시에 학생이 되는 거죠.
올림픽은 스포츠 경기 외에도 다양한 문화 유산을 남기는데 저희도 거기에 기여를 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모시만스만의 노하우와 일하는 방식이 있지만 현지인들의 직업의식이라던지 직업 문화를 존중해가면서 일하려고 늘 노력하고 있습니다. 사실 한국인들의 직업의식은 감탄할 만 해요. 올림픽이 끝나면 반은 영국으로 모시고 가서 영국인들에게 ‘이런 게 바로 열심히 일하는 거다’ 라고 보여주고 싶을 정도에요.
올림픽은 치열해요.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치열하게 배고프고 치열하게 먹어대죠. 배고플 때마다 즉각 즉각 먹어야 해요. 밥을 먹기 위해 멀리 가는 걸 싫어해요. 그래서 저희 같은 업체들이 올림픽에 투입돼서 그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주죠.
저는 지난 10년 동안 올림픽에 참가하면서 올림픽에서 제공되는 음식의 품질이 몰라보게 향상되는 걸 봤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림픽 케이터링 분야가 여전히 과소평가되고 있는 것 같아서 안타까워요.
이토록 큰 규모의 행사를 진행하다 보면 다양한 난관에 부딪힐 것 같은데 특별히 기억에 남는 어려움이 있나요?
소치 동계 올림픽 때 한 참가국이 막판에 저희에게 케이터링을 부탁했어요. 17일 동안 매일 500명의 방문객에게 음식을 제공해야 하는 꽤 큰 규모의 참가국이었어요. 케이터링 요청을 받고 사전 답사를 갔었는데 바닷가 근처에 위치한 근사한 곳이었어요. 그런데 주방도, 주방 스태프도, 주방 도구도 무엇 하나 제대로 갖춘 게 없는 거예요. 물어봤죠. “주방이 어디에 있나요?” 그랬더니 이렇게 대답했어요. “현재 아무것도 없어요. 그래서 당신에게 도움을 요청했어요.” 올림픽 개막까지 3주 반 밖에 남지 않았던 시기였고 이미 6개의 참가국 케이터링을 맡고 있었기 때문에 거의 매일 밤을 새우다시피 했죠. 이런 행사를 치를 땐 잠은 포기해야 해요. 해야 할 일이 너무 많거든요.
하지만 결국 해냈어요. 주방 스태프도 추가적으로 데리고 왔고, 발품을 팔아가며 숙박 시설도 추가적으로 찾았죠. 너무 힘들었지만 동시에 참 즐거웠어요.
고객은 결과에 대단히 만족했고 지금까지도 저희 고객으로 남아있어요. 이런 행사를 위해 협업을 하다 보면 하나의 가족이 돼요. 모두가 서로에게 도움을 주는 관계가 돼죠. 저희같은 업체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고객들을 만족시키는 일이고 개최국에게 긍지를 심어주는 거예요. 그것이 모시만스의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그래서 올림픽 개막 일 년 반 전부터 제가 한국을 방문하기 시작한 거고요. 준비 작업을 잘 할수록 일이 훨씬 더 수월해지거든요.
모시만스의 좌우명은?
모든 일을 훌륭하게 수행하고자 하는 뜨거운 열정. 여기에는 서비스, 음식의 맛과 품질, 직원들을 대하는 자세, 협력 업체들과의 관계까지 전부 다 포함돼요. 모시만스에서는 언성을 높인다던지 감정적으로 격앙되어 주방 도구를 던진다던지 이런 일은 없습니다.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각자 맡은 일을 수행하죠.
모시만스의 최고의 홍보 대사는 바로 저희 직원들이에요. 그들이 모시만스를 떠나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저희와 함께 했던 시간이 최고의 경험으로 남아있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2000년에 영국 황태자로부터 왕실 조달 케이터링 허가증을 받았어요. 영국 왕가나 올림픽 케이터링을 하지 않을 때는 누구를 위해 음식을 제공하나요? 어떤 사람들이 주 고객인가요?
모시만스는 프라이빗 다이닝 클럽으로 개별적으로 후원받은 여섯 개의 전용 다이닝룸과 회원들에게만 개방되는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1988년도에 개업한 이후로 전 세계 2,000여 명의 회원이 모시만스를 이용하고 있어요. 저희 고객들 중에는 정치인과 정부 관료를 비롯한 유명 인사도 있지만 사생활을 보장해주는 모시만스의 섬세한 서비스를 즐기기 위해 방문하는 조금 유별난 고객들도 있어요.
참고로 모시만스에서 제공하는 파인 다이닝은 복잡하지 않은 음식이에요. 처음부터 자연주의 건강식을 추구해왔는데 기름이나 버터, 설탕, 알코올 등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 게 특징이에요.
본인에게 음식이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음식은 제 삶이에요. 먹기 위해 산다고 할 정도로 먹는 걸 좋아해요.
가장 즐겨 먹는 음식은?
지금은 김치가 너무 좋아요. 발효 음식은 맛도 있지만 건강에도 유익하잖아요. 서양에도 수백 년 동안 발효 음식이 존재해 왔지만 지금까지는 외면당했던 게 사실이에요. 지금은 발효 음식의 건강학적 측면에 대한 관심과 인지도가 올라감에 따라 수요도 늘고 있어요. 예전에는 초록색과 보라색 채소만 슈퍼 푸드 취급을 당해왔지만 더 이상은 아니에요.
한국에서 일하게 된 소감은?
벌써부터 정이 든건지 떠나기 싫네요 (웃음).
발행일 2017.0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