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ures 1 minute 2023년 4월 25일

홍콩에서 한식을 말하다: 모수 안성재 셰프, 주옥 신창호 셰프, 그리고 조희숙 셰프의 한식

4월의 마지막 주말, 홍콩에서는 한식의 다채로운 면면을 소개하는 컬래버레이션 행사가 진행되었습니다. 한국의 미쉐린 스타 셰프들이 선보이는 한식의 모습을 소개합니다.

‘퀴진’은 어떻게 정의될까요? 우리가 한식이라고 말하는 음식의 다양한 스펙트럼은 어떻게 유기적으로 이어지고, 전통을 공유하고, 창조적으로 발전해 나가는 것일까요? 서울의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 모수의 안성재 셰프는 홍콩에서 같은 이름의 레스토랑을 오픈해 한국의 음식 문화를 품은 현대적 요리를 선보이며, 넓은 의미에서 ‘한식’의 의미를 확장하고 있습니다.

이번 홍콩 모수에서 열린 <한식의 다양성> 컬래버레이션 행사에는 서울의 미쉐린 2 스타 레스토랑 주옥의 신창호 셰프와, 미쉐린 가이드 서울 2021의 멘토 셰프로 선정된 (구)한식공간의 조희숙 셰프가 힘을 보탰습니다. 이 자리에서, 세계 무대에 펼쳐진 한식의 모습의 실마리를 찾아보았습니다.

셰프님에게 한식은 어떤 의미인가요?

안성재 셰프 ‘한식’을 간단히 정의하기는 어렵습니다. 저는 한국인으로써 한식을 늘 먹고, 좋아합니다. 정식 교육기관에서 한식을 배운 것은 아니지만 삶을 통해 자연스럽게 체득한 ‘한식’의 범주가 있지요. 제 입맛이 공감할 수 있는 맛있는 한식의 모습은 제가 의도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제 요리에도 드러납니다.

서울의 모수에서는 한국 식재료를 많이 사용하니 한국의 음식 문화가 제 요리가 자연스레 반영되고, 이곳 홍콩에서는 맛에 대한 저만의 기준이 이곳의 식재료를 통해 새로운 요리로 만들어집니다. 모수에서 선보이는 음식을 ‘한식’ 혹은 ‘컨템퍼러리’ 등으로 정의하고 싶지 않습니다만, 넓은 범주에서는 제가 하는 요리도 한식의 연장선에 서 있다고 봅니다.

과거의 것을 하나의 정답처럼 생각한다면 오히려 한식을 정의하기 어려워요. 10년 전의 한국 음식은 100년 전, 1000년 전의 것과는 분명히 다르기 때문이에요. 전통을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라, 보다 넓은 의미에서 개념을 확장해 나가야 하죠. 세계 교류가 많아지고 이제 한국 사람들도 일상의 음식을 할 때 일본식 재료나 프렌치 조리법을 익숙하게 사용합니다. 고정관념을 내려놓는다면 한식의 모습은 무궁무진합니다.

세 명의 셰프가 함께 만든 원형을 보존한 보쌈 김치
세 명의 셰프가 함께 만든 원형을 보존한 보쌈 김치

홍콩에서의 한식 이벤트를 통해 세 명의 한국 셰프가 보여주려고 한 것은…

조희숙 셰프 이번 행사를 기획하고 여러 번의 회의를 거치며, 무엇을 보여줄까 많이 고민했어요. 세 명의 셰프가 각자 한식을 표현해내지만 그 모양새와 방법이 모두 다르니, 각자가 잘 하는 것을 유기적으로 보여주자는 데로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저는 전통 한식을 해 왔으니, 한식 원형의 모습을 홍콩의 손님들에게도 선보이고자 했어요. 국내에서 반응이 좋았던 것들은 세계에서 어떻게 생각하실까 궁금하기도 했고요.

한식은 다양합니다. 집안의 내림음식, 지방의 향토음식, 사찰음식까지 분야를 가리지 않고 한국인의 삶에 깊이 자리잡고 있어요. 하지만 너무 한식을 정의하려고 애쓰지는 않습니다. 그래야 문화를 더 자유롭게 교류하고, 음식이 발전할 수 있습니다.

신창호 셰프 그리고 보쌈김치와 신선로처럼 품이 많이 드는 음식은 세 명의 셰프 팀이 함께 만들었습니다. 저와 안성재 셰프도 이번 기회를 통해 조희숙 선생님이게 배운 것도 많지요. 한식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같이 만들기’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김장을 혼자 하는 경우는 거의 없듯이, 세대와 사람들이 모두 함께 모여 공동체의 맛을 만들어낸다는 마음까지도 담아 내었습니다.

안성재 셰프 홍콩에도 이런 한식 이벤트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이 자리를 마련했어요. 지금 세계적으로 한식이 각광받고 있지만 한국을 벗어내서 한식의 다양성을 느끼기는 굉장히 어려운 것도 사실입니다. 아무리 음식에 관심이 많은 외국인 미식가라도, 한식에 대해 깊이 있는 경험을 하기가 쉽지 않죠. 이번 이벤트를 하며 정말 다양한 직업과 관심사의 손님들이 저희의 한식을 경험해 주셨는데, 이 과정에서 셰프의 교류, 문화의 교류, 세대의 교류가 일어났다고 생각해요. 반 농담으로 ‘이것이 진짜 애국 아닐까’라는 이야기도 했고요. (웃음) 한국의 모습을 알리는 데 정말 중요한 것이 음식이라고 믿으며 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궁중 신선로를 최대한 원형에 가까운 기물과 구성으로 재현한 메뉴
한국의 궁중 신선로를 최대한 원형에 가까운 기물과 구성으로 재현한 메뉴

한식의 원형을 어떻게 재창조해 나가고 있나요?

신창호 셰프 제가 할 수 있는 한식이 무엇인지 생각을 많이 합니다. 처음 주옥을 시작할 때는 한국인이든 한식을 처음 접하는 외국인이든 편하고 즐겁게 먹을 수 있는 맛있는 음식을 먹는 데 중심을 뒀어요. 그리고 한식의 맛을 내는 ‘장’을 요리의 핵심 요소로 활용하려고 했지요. 하지만 어떤 특정한 식재료만을 써야 한다고 고집하지는 않습니다. 해외의 재료로도 한식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으니까요. 제가 생각하는 한국적인 요소는 결국 맛을 내는 소스에서 나오는데, 이렇게 해외 출장을 다닐 때 늘 가져가는 패키지가 있을 정도에요. 갓 짠 들기름이나 직접 발효한 식초 같은 것이 빠진다면 제가 생각하는 한식과는 점점 거리가 생길 수 있으니까요. 한국적인 맛을 표현하면서도 현대적인 감각을 더해 누구나 즐겁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주옥의 시그니처 '들기름'은 들깨를 직접 짜서 사용합니다
주옥의 시그니처 '들기름'은 들깨를 직접 짜서 사용합니다

안성재 셰프 저는 모던한 요리를 하는 입장에서, 한식의 정체성을 다양한 식재료와 테크닉으로 풀어내 보았습니다. 이번 행사에 준비한 생선조림에는 모두 홍콩의 로컬 재료를 사용했어요. 한국에는 없는 향신료도 넣었고요. 하지만 한국인이라면 이 요리를 먹었을 때 늘 집에서 먹던 생선조림의 느낌을 받으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요. 자연스럽게 어느 나라의 식재료로도 한국의 맛을 낼 수 있다는 것을 시도하고 싶었습니다.

모수의 안성재 셰프가 홍콩 로컬 재료로 풀어낸 '생선조림'
모수의 안성재 셰프가 홍콩 로컬 재료로 풀어낸 '생선조림'

셰프가 생각하는 전통과 현재, 미래의 한식의 모습은?

조희숙 셰프 자연스럽게 변화하는 것이 한식의 모든 스펙트럼입니다. 결국 음식은 사람이 즐기는 것이고 교류하는 매개체이지요. 먹는 사람의 생각과 행동, 성향까지도 좌우할 수 있는 중요한 삶의 요소이기도 하고요. 그렇기에 결국 우리 문화의 근간이 됩니다. 우리가 여러가지 다양한 문화를 접하다가도 어느 순간에는 ‘한식’의 자연스러운 편안함을 느끼게 되는 것처럼, 우리가 인지하지도 못하는 사이에 한식은 익숙하게 우리의 세월 속에서 함께 변화하며 동행합니다. 무언가를 강요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나아가는 흐름 속에 과거와 현재, 미래가 모두 있다고 생각합니다.

'삼계탕'을 모티프로 한국적인  풍미를 선보인 조희숙 셰프의 요리
'삼계탕'을 모티프로 한국적인 풍미를 선보인 조희숙 셰프의 요리

신창호 셰프 무엇보다 ‘존중’이 가장 중요해요. 원형을 지키려는 노력, 그리고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나가려는 노력이 모두 서로를 비난하거나 틀렸다고 말하기보다는 각각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 하며 서로를 인정하는 것이지요. 전통은 고루한 것이 아니고, 이노베이티브한 변화도 잘못된 변형이 아닙니다. 전통을 지키면 근간이 튼튼하니 좋고, 새로운 시도를 하면 외연이 넓어지니 좋은 것이지요. 지금의 한식도 과거에는 ‘미래의 한식’이었을 겁니다. 그렇게 긴장과 균형, 변화 속에서 발전해 나가는 것이 우리 한식의 본질 아닐까요?

안성재 셰프
어쩌면 모수의 음식도 미래에는 전통 한식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생각하며 제 위치에서 요리를 만들어 갑니다. 경계를 그어 두지 않고, 옛 지혜와 새로운 기술 속에서 좋은 선택을 하며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아요. 지금 모수는 ‘모수의 정체성’을 확고하게 만들어 나가려고 노력하는데, 동시에 저희는 서울의 3스타 레스토랑이기도 하고 어떤 의미에서는 서울, 한국의 다이닝 씬을 대표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특정하게 퀴진을 정의하지 않는 저의 의도와는 별개로 홍콩 모수를 찾은 분들은 ‘코리안 퀴진’의 어떤 모습을 모수에서 바라보고 경험하시기도 하고요. 그래서 어쩌면 이 과감한, 혹은 무모한 도전에서 최선의 모습을 만들어 나가려고 합니다. 존경하는 셰프님들과 한식의 모습을 탐구하는 이런 자리를 마련해 나가면서요. 그 속에 우리 음식의 과거와 미래가 공존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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