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레터는 해산물에 있어서는 늘 진심인 바람에 주변 사람들에게는 해산물 덕후로도 불리고 있는 정세욱 셰프의 레스토랑입니다. 레스토랑의 이름도 발라낸 생선 살을 뜻하는 ‘필렛(Fillet)’에서 따왔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그의 해산물 사랑이 어느정도인지 짐작하게 됩니다. 그의 해산물에 대한 사랑은 해산물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금방 가 닿았고, 지난 10월에 발표된 미쉐린 가이드 서울 2023에서 빕 구르망 레스토랑으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필레터는 어떤 곳인가요?
해외의 수산시장을 콘셉트로 하는 해산물 전문 레스토랑이에요. 수산시장에서 생선을 직접 고르면 셰프들이 그 생선을 가장 맛있는 방식으로 요리해 준다는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일부러 숙성중인 생선이나 해산물을 직접 볼 수 있도록 쇼케이스를 곳곳에 배치해 ‘매대’의 느낌을 냈고요. 그리고 시장 하면 시끌벅적한 느낌이 가장 먼저 떠오르잖아요? 그래서 저는 필레터가 약간은 시끄럽고 들뜬 분위기에서 해산물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해요.
그래서 미쉐린 가이드 서울 2023에서 빕 구르망 레스토랑으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정말 좋았습니다. 누구나 편하게 와서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는데, 빕 구르망이야말로 그런 곳들에 주어지는 영예로움이잖아요. 그래서 더욱 의미가 있었어요.
필레터 오픈 전에 루이쌍끄와 고료리 켄에서 일을 했어요. 프렌치와 재패니스라니 약간은 의아한 조합인데요.
어릴 때부터 요리를 하고 싶었는데, 부모님의 반대로 조리 고등학교에 가지는 못했었어요. 그래서 대학교에 진학하는 대신 졸업하자마자 요리를 시작했죠. 군대에 다녀와서 프렌치 다이닝 펍인 루이쌍끄에서 5년 정도 일을 했었습니다. 어릴때부터 해산물을 워낙 좋아하기는 했었는데, 요리를 하다 보니 제가 해산물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깨달았어요. 그 방향으로 더 공부를 해보고 싶었는데, 국내에서는 해산물에 대해 깊게 배울 수 있는 곳이 한정적이었어요. 해산물을 가장 많이 다뤄볼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 생각해 보니 일식 전문점이 아닐까 싶더라고요.
그래서 미쉐린 1스타 레스토랑인 고료리 켄의 김건 셰프님이 운영하는 이자카야인 이치에에 지원했었어요. 그런데 마침 그때 고료리 켄이 리뉴얼을 준비하고 있는데, 저와 결이 잘 맞을 것 같다고 말씀해 주셔서 고료리 켄의 셰프로 합류했었죠. 그때 제철 해산물에 대해서 정말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루이쌍끄와 고료리 켄, 그리고 필레터는 어떻게 이어져 있나요?
지금의 필레터는 두 곳에서 배운 것들을 것들을 단단한 기반으로 삼아 만들어진 셈입니다. 루이쌍끄에서 클래식 프렌치에 대한 지식을 다졌고, 고료리 켄에서 일하면서 일본 스타일의 해산물 요리에 양식적인 터치를 더하는 방법을 다양하게 시도해 보면서 저만의, 필레터만의 스타일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 배울 수 있었거든요.
그래서인지 손님들이 필레터는 어떤 나라의 음식을 베이스로 하는지 많이 여쭤보시는데요, 사실 저희는 필레터의 음식을 어떤 퀴진이라고 정의하지 않으려고 해요. 일본 식재료도 사용하고, 양식 스타일의 터치가 들어가기도 하고, 어떨 때는 스페인이나 이탈리아 요리에서 온 요소들이 사용되기도 하니까요. 저는 필레터가 그냥 필레터이길 바라요. 다른 단어로 정의되는 것이 아니라요.
필레터를 가장 잘 보여주는 요리가 있다면요?
옥돔 요리를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을 것 같아요. 껍질을 기름으로 튀긴 후 숯불에 구워낸 옥돔에 여기에 녹두와 초리조 볶음, 생선 육수를 넣은 그린 커리 소스를 곁들이는 요리인데요, 이 중에서도 기름으로 생선 비늘을 살리는 것이 일식에서 많이 사용되는 기법이에요. 전부 튀겨내는 것이 아니라 껍질과 비늘 부분만 기름으로 튀겨내서 튀김 요리의 단점인 기름진 맛 없이 바삭함을 살릴 수 있는 것이 마음에 들더라고요.
저는 흰쌀밥에 구운 생선 살을 올려서 먹는 것을 정말 좋아하는데, 밥 대신 옥돔에 곁들일 수 있는 게 무엇이 있을까 생각하다가 녹두를 떠올리게 됐어요. 여기에 아주 약간의 매콤함이 더해지면 좋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다 보니 초리조와 그린 커리 소스를 곁들이게 됐고요. 결국 일식의 기법으로 조리한 옥돔, 태국 스타일의 그린커리, 그리고 한국적인 식재료인 녹두와 스페인 식재료인 초리조가 한 그릇에 모두 담겨있죠. 이 요리가 필레터다움을 잘 보여주고 있어요.
필레터의 요리들을 살펴보다 보니 생선 요리에 묵직한 맛과 질감을 가진 소스들을 매칭하는 것이 눈에 띄어요.
보통 생선에는 가벼운 소스를 매칭하는 경우가 많지만, 저는 진한 소스들이 가진 직관적인 맛있음이 더 와닿더라고요. 특유의 입에 착 감기는 그 느낌도 좋고요. 일부러 진한 소스를 매칭하려고 하는 것은 아닌데 제 스타일의 요리들을 선보이다 보니 묵직한 소스들이 더 자주 떠오르고, 많이 등장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웃음)
앞으로의 필레터에서는 어떤 것들을 만날 수 있을까요?
‘생선으로 어디까지 할 수 있을까?’라는 제 안의 질문에 답을 한다는 마음으로 해산물이라는 챕터 안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더욱 다양하게 도전해보고싶어요. 생선을 더 고급스럽고 디테일하게 다룰 때 어떤 식감을 낼 수 있는지 보여드리고 싶기도 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