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고기를 맛있게 먹는 법에 양식의 스테이크가 있다면 한식에는 불고기를 들 수 있다. 한국의 식탁에서 불고기는 “기쁜 날”을 의미한다. 특정한 명절의 음식이라기 보다 입학, 졸업, 생일, 집들이 등 새로운 시작, 일상의 축제 때 상에 올랐다. 불고기에는 둘러앉아 먹는 사람의 풍경이 있다. 각 지역마다 조리법과 먹는 방식이 달랐기에 불고기를 먹으면서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한국 사람들이 공유하는 행복의 맛을 체험할 수 있다. 현재 서울에는 불고기를 요리하는 레스토랑과 식당이 수 없이 많지만 그 중에서 미쉐린 가이드 서울 2019 3스타 레스토랑으로 선정된 한 곳과, 100년의 역사를 채워가며 <서울미래유산 (Seoul Future Heritage)>으로 지정되었고 <미쉐린 가이드 서울 2017> 발간 이래 빕구르망에 3년 연속 (2017~2019) 선정된 레스토랑 2곳을 찾아 불고기의 진수를 맛본다.
불고기에 쓰이는 소의 부위
소불고기에는 일반적으로 지방이 적고 근육막이 연한 부위가 쓰인다, 소의 엉덩이 부위인 우둔살과 뒷다리의 넓적다리 상단, 엉덩이 사이에 있는 설도 부위가 대표적이다. 앞다리살이나 목심은 근육이 다소 질기긴 하지만 육즙이 풍부하여 진한 고기맛을 낼 수 있다. 이 부위를 사용할 때는 고기를 사전에 숙성시키고 얇게 슬라이스 하거나 잘게 다져서 식감을 부드럽게 만드는 작업이 필요하다. 부위 별로 맛과 식감이 다르니 이 차이를 알고 먹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불고기 양념
불고기 양념의 포인트는 과하지 않는 단짠의 조합이다. 간장 베이스에 과일이나 양파, 설탕이 곁들여진다. 다진 마늘과 청주를 넣어서 고기의 비릿내를 잡는 것도 빠뜨려서는 안 된다. 양념장이 준비되면 고기는 핏물과 불순물을 빼고 양념장에 마리네이드 한다. 이 때 발효된 간장이 고기의 독성은 중화시키고 과채에서 나온 효소가 연육 작용을 돕는 가운데 은은한 단맛을 준다. 살짝 매콤함 맛을 원할 경우에는 고기를 구울 때 청양고추를 소량 썰어 넣거나 후추를 곁들인다.
불고기를 굽는 법
불고기를 굽는 방식에는 석쇠를 사용하여 불에 직접 닿게 하는 직화식과 동판을 이용해서 간접적인 열로 구워내는 불판식이 있다. 광양식이나 언양식은 직화 방식을 써서 고기에 훈연의 향을 입힌다. 서울식은 불판에 올려 육수를 부어가며 익히는 방법인데 은은한 부드러움이 일품이다.
바싹불고기, 보슬보슬한 고기에 스며드는 불향
1928년 순천의 호상식당을 시작으로 1962년 용산역 맞은편에서 운영한 역전회관은 바싹불고기 라는 조리법을 개발하여 특허를 낸 곳이다. 현재까지 음식의 맛과 친절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미쉐린 가이드 서울 2019 빕구르망에 선정되었다. 바싹불고기는 국내산 육우 치맛살 부위를 특제 양념에 48시간 숙성한 후 석쇠에 넣고 직화식으로 굽는다. 강한 화력에서 단시간 내에 구워내기에 겉은 쫄깃하고 속살은 촉촉하다. 초기에는 광양식 조리법에 기반하여 손님상에서 구워냈으나 연기가 너무 심하게 나자 주방에서 구워내는 방식으로 조정했다. 역전에서 바로 떠나야 하는 손님들이 연기와 고기 냄새가 옷에 배어 불편해 하기에 주인이 고심하며 개발해 낸 조리법이다. 고깃살을 칼로 다지고 얇게 펴서 빠르고 맛있게 구워낼 수 있다. 놋그릇에 담겨 온기를 품은 고기는 씹으면 쫄깃하고 속은 촉촉하다. 보슬보슬한 살점 사이로 훈연의 향이 멋스럽게 흐른다.
바싹불고기를 먹을 때는 곁들이는 찬에 따라 세가지 맛을 누릴 수 있다. 처음은 고기만 먹어 본연의 풍미를 즐기고 두번째는 깻잎에 싸서 쌉싸름한 아로마와 숯향의 조합을 느낀다. 마지막 한입은 쪽마늘을 함께 나온 양념장에 찍어 고기에 곁들이니 개운하고 담백하게 마무리 된다. 역전회관은 100년을 채워가는 역사 속에서 바싹불고기의 맛과 조리법의 가치를 인정받아 서울미래유산 2013-181호로 지정되었다.
서울식 불고기, 쫀득한 부드러움
1939년에 문을 연 한일관은 서울식 불고기를 대표한다. 서울식 불고기는 궁중요리에 기반을 두었기에 한일관을 서울식 불고기의 원조라 부를 수 없지만 서울의 불고기 전문점 가운데 가장 오랜 역사를 지녔다. 60-70년대의 외식 문화에 불고기 전성기를 주도했고, 정갈한 음식과 품격 있는 서비스로 오늘날까지 꾸준히 사랑 받고 있으며, 미쉐린 가이드 서울 2019 빕구르망에 선정되었다. 한일관의 대표 메뉴는 등심 불고기이다.
국내산 육우를 쓰며 고기 선별에 특별히 신경을 쓰니 한우 못지않은 고기 맛을 유지한다. 한우 등심 대비 가격이 합리적인 것도 장점이다. 그런데 한일관이 일찍부터 유명세를 탈 수 있었던 것은 60년대 일본에서 정육 슬라이스 기계를 처음으로 도입했기 때문이다. 사람의 칼보다 얇게 저며낼 수 있는 기술이 그 당시 사람들에게 쫀득하고 부드러운 궁극의 맛을 선사했다. 한일관의 특제 양념 또한 유명하다. 연한 간장 베이스에 사과, 배, 키위 등을 충분히 써서 풍성한 단맛을 추구한다. 이와 더불어 양지와 사태를 2시간 가량 우려낸 육수를 따로 내는데 고기를 구울 때 부어가며 굽는다. 한일관은 불고기를 가장 맛있게 굽기 위해 자신만의 불판을 개발해 내었다. 가운데가 봉긋하게 돔형으로 솟은 모양인데 고기는 돔의 상단에서 제 맛을 내며 익히고 육수는 고기에 스민 후 자연스럽게 하단으로 빠져 나오도록 한다. 이 육수는 지속적으로 증기를 만들어 마지막 한 점의 고기까지 촉촉하게 유지시킨다. 올해로 80주년을 맞이한 한일관은 역사적인 가치와 불고기의 맛과 품격을 인정받아 서울미래유산 2013-281호로 선정되었다.
전통 조리법과 현대적 상차림
신라호텔의 라연은 한식의 전통을 세련되고 정교하게 해석하여 미쉐린 가이드 서울 2017, 2018, 2019 3년 연속 3스타에 선정 되었다. 현재 정찬코스 가운데 인기가 높은 메뉴는 석쇠불고기이다. 한우 1++ 채끝등심을 언양식 불고기 조리법에 기반하여 요리한다. 김성일 셰프의 지휘 하에 우선 고기를 황토 맥반석 숙성고에서 최적의 상태로 숙성시킨 후 육질을 연하게 한다. 라연만의 불고기 양념으로 밑간하여 손님상에 나가기 전 숯불로 석쇠에 구워낸다.
곁들임 음식도 중요한데 장시간 구운 양파 장아찌, 된장 소스에 구운 가지, 산초 장아찌 등 발효음식과 함께 낸다. 발효 음식 각각은 한 숨 정제된 단맛, 구수함, 매콤함을 지니기에 고기의 맛을 한층 더 풍요롭게 만들며 소화도 돕는다. 도톰한 불고기 한 점을 입으로 가져가면 먼저 코끝에 숯불 향이 스치며 혀 위에서는 한우 특유의 진한 육즙이 터져 나온다. 특제 소스는 자극적이지 않아서 한우의 온전한 맛을 최고조로 끌어올리니 남녀노소가 좋아하며, 내 외국인에게도 모두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불고기는 원래 둘러앉아 공유하는 음식이었으나 최근 혼밥의 분위기를 타고 1인이 즐길 수 있는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다. 주방에서 미리 조리하여 1인분씩 내놓거나 소형 불판을 개발하여 1인분만 구워 낼 수 있도록 했다. 육수형 불고기는 뚝배기에 끓여내어 불고기 백반으로 제공한다. 그 어떤 형태로든 입으로 들어온 불고기는 달고 부드러우며 든든하다. 조용히 앉아 불고기 한 점을 먹고 있으면 일상으로부터 보호받고 있다는 안락감이 밀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