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치즈가 우유의 쓰임과 맛의 차원을 한 차원 높였다면 아시아에는 두부가 있어 콩의 쓰임에 획기적인 발전을 가져 옵니다. 중국과 일본 모두 두부가 발달한 국가이지만 한국의 두부는 한국인의 좋아하는 식감과 조리법에 맞게 발전하여 왔습니다. 두부를 이해하면 한국의 식문화를 이해하는 초석이 될 것입니다.
한국의 영화에서도 가끔 이 장면이 등장하는데 교도소에서 출소한 이들에게 가족이나 친구들은 두부를 먹여 줍니다.
감옥의 철창을 나와도 두부를 먹어야 죄의식을 놓아버리고 자유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을 열게 된 것입니다. 예부터 조상에 대한 제례나 차례를 지낼 때 두부로 전을 부쳐 올렸습니다. 두부는 신성하고 깨끗하여 조상님께 바치는 음식이었습니다.
두부는 한국인의 희로애락을 함께 한 친구이기도 합니다.
농촌에서는 밭일을 마치고 두부에 잘 발효된 김치와 막걸리를 걸치면 가장 훌륭한 새참이 됩니다. 한국의 산촌에는 유명한 두부촌이 형성되는데 이는 등산을 마치고 기운이 빠질 때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찾게 되는 것이 두부이기 때문입니다.
도시에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특히 집밥을 먹던 8-90년대는 하루에 두 번 두부를 실은 트럭이 골목 골목을 누빕니다. 확성기로 “두부사세요 두부, 따끈따끈한 두부 사세요 두부!” 소리가 골목에 청량하게 퍼집니다. 한번은 동틀 무렵이며 또 한번은 해질 무렵입니다. 가정의 아낙네들은 따끈한 두부를 품에 안고 아침은 맑은 황태국이나 콩나물국에 넣습니다.
저녁에는 된장찌개나 김치찌개에 넣어 자글자글 끓입니다.
사람들은 숟가락으로 두부를 떠먹는 순간 오늘의 삶 또한 잘 가고 있음에 안도감을 느낍니다.
그럼 두부는 어떻게 만들어 이어져 왔을까요.
두부는 콩에 물과 불을 들여오는 작업입니다. 두부를 만드는 장인들은 수행자와 같습니다. 그들은 도대체 한그릇에 만원이 안 되는 돈을 받으면서 그 가격으로는 타당치 않은 ‘헌신’을 합니다. 그 해 수확한 햇콩을 반나절 물에 불리고, 콩입자가 다치지 않게 맷돌로 곱디곱게 갈아 줍니다. 이러면 걸쭉한 콩물이 생겨나는데 장작을 땐 가마솥에 고이 떠서 콩이 푹 익을 동안 끓여줍니다. 콩은 한번 끓기 시작하면 거품이 넘치는데 이때마다 냉수를 더해서 가라앉혀 주어야 합니다. 두부를 만들 때는 한눈 팔 겨를이 없습니다. 자칫하다간 솥에 넘치거나 솥바닥에 눌러 붙기 때문입니다.
계속 주걱으로 저어주며 묵묵히 지켜서야 하지요.
콩물이 푹 익으면 콩의 섬유질인 콩비지를 뺍니다. 그리고 남은 콩물에 간수를 붓고 아주 섬세하게 8자를 그리듯 저어 주어야 합니다. 이 순간 콩의 단백질과 지방이 몽글몽글 덩어리가 지기 시작합니다. 이 순간이 두부에 숨을 들이는 작업 “숨두부”라 부르기도 합니다. ‘숨’은 한국어로 ‘호흡을 하다, 생명을 얻다’라는 의미를 지닙니다. 이렇게 떠낸 첫 두부는 상상 이상의 신비한 맛을 지닙니다. 한국의 토양을 담은 콩의 떼루아, 가마솥의 장작불에서 얻은 훈연의 향기, 바다를 끌어온 천연간수, 거기에 장인정신까지. 이렇게 불(火), 물(水), 나무(木), 가마솥(金), 흙(土), 사람(人)의 조화로 만들어진 두부는 푸아그라의 녹진한 식감에 트러플의 야생적인 풍미가 더해졌다 할까요. 원초적인 흥분감을 안겨주는 미식의 최고 경지입니다. 사람들은 숨을 죽이며 이 자체의 묘미를 즐기거나 대파를 송송 썰어 넣은 간장을 올려 맛의 변주를 줍니다.
숨부두를 떠낸 후 남은 분량은 두부 판 위에 배보자기를 펴서 국물은 꼭 짜냅니다.
무거운 것으로 눌러준 후 응고되길 기다리는데 이 작업을 통해 탄탄한 육체를 얻습니다. 이 상태를 “모두부” (네모난 두부)라 합니다. 두부로 태어난 콩은 제 성질보다 온순하고 보드러우며 순백의 얼굴을 지닙니다. 물과 불을 건너면서 독한 기운이 사라지기에 그 어느 자리에 가도 자신을 내어줄 줄 압니다. 완전한 자유와 조화의 경지를 이루지요. 특히 들기름에 살짝 구워 곰삭은 김치를 곁들여 먹으면 환상적입니다. 갖은 야채와 버섯에 고기육수를 더한 두부전골도 인기가 많습니다.
두부는 그 자체로 독립적이지만 다시 부서지면서 다른 식재료를 하나로 통섭하는 역할을 합니다.
한국의 만두에는 꼭 두부를 넣어 만두소를 만드는데 이는 배추와 숙주나물, 돼지고기를 한데 품어 수렴하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명절음식으로 꼽히는 동그랑땡에도 두부는 잘게 썬 당근과 양파, 버섯 등을 동그란 팬케익 모양으로 재탄생 하게 합니다.
한국의 두부는 한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식감에 따라 시대와 세대에 맞게 변화되어 왔습니다.
지금 사람들은 누들을 좋아하기에 두부파스타가 되었고 빵과 과자를 사랑하기에 두부스콘이 되었으며 심지어 두부젤라또가 있어 아이들을 행복하게 합니다.
사람들의 쾌락에 빠질까 두부는 수호천사가 되어 건강을 지키고 죄의식을 사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공장제 대량 생산되는 두부를 마트에서 저렴하게 판매하고 있습니다. 한 팩에 3천원 정도이며 거기다 365일 원플러스원 행사를 하기 때문에 부자도 가난한 자도 두부 앞에선 평등합니다. 두 배 정도의 돈을 내고 발품을 팔면 장인정신으로 만들어 지는 최상의 손두부 (handmade Tofu)를 먹을 수 있으니 이 또한 특별한 선택입니다.
육식을 절제하거나 금하는 베지테리언에게 두부는 아직 캐내지 않은 금광과 같습니다.
맛도 좋거니와 저렴한 가격대와 낮은 칼로리로 사람의 몸에 흡수가 잘 되는 단백질과 불포화지방산, 미네랄을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두부를 즐겨 먹는 사람들은 육식을 즐기는 이들보다 뛰어난 면역력을 지니며 콜레스테롤, 비만, 골다공증, 동맥경화 같은 성인병에서도 자유롭습니다.
이제 두부는 한국과 아시아의 식탁을 넘어 미국과 유럽까지 전파되었고 전파될 것입니다. 살짝 튀겨낸 두부는 샐러드 토핑에 무엇보다 어울리며 두부로 만든 콩고기과 생선육이 벌써 패스트푸드의 혁신을 일으켰습니다. 한식을 통해 두부의 쓰임을 경험하고 맛 보며 이해한다면 미래의 음식에 대한 보다 근원적이고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얻을 것입니다.
발행일 2018-1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