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2 minutes 2020년 3월 4일

더 그린테이블 김은희 셰프와의 여섯 가지 질문

미쉐린 플레이트로 선정된 더 그린테이블의 김은희 셰프. 뜻밖의 사고로 평생의 직업을 찾은 이야기와 그녀의 멘토, 요리 여정에 관해 물었습니다.

역동적인 도시 서울의 다이닝 씬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수없이 나타나고 사라지는 서울의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사이에서 지난 10년간 고객에게 오랜 지지를 받으며 자신의 색을 지켜 온 곳이 있으니 바로 김은희 셰프가 이끄는 프렌치 레스토랑, 더 그린테이블이다. 이곳에서는 계절의 흐름을 고스란히 담아낸 재료가 섬세한 손길로 요리되어 고객의 테이블 위에 오른다.

최근 국제적으로 뛰어난 여성 셰프들이 명성을 얻으며 주목받고 있지만, 국내외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에서 여성 헤드셰프는 여전히 흔치 않다. ‘여자는 셰프가 마땅히 견뎌야 할 육체적, 정신적 도전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편견에도 불구하고, 김은희 셰프는 뚝심 있게 섬세한 프렌치 요리를 선보이며 오늘도 고객을 맞이하고 있다.

더 그린테이블의 김은희 셰프를 만나 요리 여정과 멘토, 가장 좋아하는 식재료에 이르기까지 그녀의 요리 세계를 엿볼 수 있는 이야기를 나눴다.


어떻게 요리에 대한 열정을 가지게 되셨나요?

어릴 때부터 요리하는 것을 좋아했지만, ‘셰프’라는 직업에 대해 뜻을 품은 것은 한참 뒤의 일이에요. 대학을 공대로 진학하고 국가에 도움이 되는 기술자가 되겠다는 막연한 꿈을 품었지만, 왠지 마음 한구석에 빈 공간이 있었죠. 제가 해야 할, 무언가 다른 일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여러 가지 탐색 끝에, 졸업 후에는 웹디자이너로 커리어를 시작했어요. 그때도 창의적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일에 대한 열망이 있었던 것 같아요.

스물다섯 무렵, 친구와 한강에서 시간을 보내고 차를 타고 돌아가던 중 교통사고를 당했어요. 이 사고를 계기로 번뜩 깨달았죠. ‘오늘 죽었다면 내 사소한 불안과 걱정은 아무것도 아니었겠구나’라는 마음과, ‘지금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후회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무엇을 하며 평생 살아야 할까 스스로 질문을 던지니 결국 ‘요리’에 답이 있었어요. 부모님이 반대하고, 나는 여자고, 체력도 약하고, 지금까지 배운 것도 없다는 말은 핑계에 불과했죠.

프랑스 요리로 일을 하려면, 먼저 배워야 했습니다. 한국에서 시작하면 너무 느릴 것 같아서 완전히 몰입할 수 있는 환경에 저를 던지기로 결심했어요. 한 번 마음을 먹으니 미룰 시간이 없었습니다. 미국 뉴욕으로 가기로 순식간에 결정하고 영어를 공부하며 10개월 만에 CIA(Culinary Institute of America)로 진학했죠. 한참 뒤에 친구가 그러더라고요. 그 당시의 저는 정말 완전히 미친 사람 같아서, 도저히 말릴 수 없었다고요.

미국에서 3년을 10년처럼 보냈어요. 스물 몇 살에 흰 머리가 생길 정도였죠. 피곤한 날의 연속이었지만 단 한 번도 요리하겠다는 결심이 후회된 적은 없어요. 사고를 계기로 정말 제 천직을 찾은 느낌이랄까요. 피곤함마저 재미있고, 흥분됐어요. 제 인생을 가장 집중적으로 탈바꿈한 시기였죠. 


셰프님의 롤 모델은 누구이신가요? 영향을 받은 특별한 인물이 있나요?

제 롤 모델이자 스승은 모두 책 속에 있었어요. 미국에 가서 공부하며 주말마다 맨해튼의 중고서점인 스트랜드(Strand)에 가서 책을 뒤적이는 것이 일상이었는데, 이때 토마스 켈러의 책을 보게 되었습니다. 켈러 셰프가 이끄는 프렌치 런드리의 목가적이고 아름다운 분위기, 공간을 닮아 서정미가 넘치는 섬세하고 아름다운 음식은 저를 매료시켰어요. 그 책을 사서, 수십 번을 반복해 읽었죠. 지금의 요리 세계에도 영향을 크게 받았습니다.

알랭 뒤카스 셰프도 빼놓을 수 없어요. 15년 전만 해도 지금처럼 유튜브 같은 영상 매체가 많이 발달하지 않아, 학교 밖에서 지식을 더 습득하는 좋은 방법 중 하나가 책을 보는 것이었거든요. 뒤카스 셰프의 책은 백과사전처럼 기본적이면서도 정교한 프렌치 테크닉에 관해 설명이 잘 되어 있어서 제겐 성경이나 다를 바 없었습니다. 최근까지도 뒤카스 셰프의 책 중 채소 요리만을 다루는 레시피북이 큰 도움이 되었어요. 인생의 흐름처럼 요리에도 흐름이 있듯, 제게 지금은 채소가 큰 비중을 차지하며 변화하고 있죠.

2년 전 알랭 뒤카스 셰프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 저희 레스토랑에 온 적이 있는데 그날이 아직 생생합니다. 제 요리 세계를 이끈 멘토가 제 음식을 맛보는 순간이니까요. 떨지 않으려고 정말 노력했습니다. 바로 이 자리에 앉아서 식사하셨어요.

미쉐린 가이드가 한국에서 발간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제가 이 가이드북에 등재되었다는 이야기를 믿을 수 없었어요. 알랭 뒤카스, 토마스 켈러처럼 항상 존경하던 셰프들의 이름이 가득한 가이드북에 함께 실린 셈이니까요. 정말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프렌치 요리를 하는 셰프라면, 더 자랑스럽게 여길만하지 않을까요? 언젠가는 별을 받을 수 있도록, 더 열심히 일해야죠.


더 그린테이블의 다이닝 홀 ⓒJulia Lee
더 그린테이블의 다이닝 홀 ⓒJulia Lee

가장 좋아하는 식재료는 무엇인지, 어떻게 활용하는지?

최근엔 채소 중에서도 뿌리채소를 사용하는 것이 가장 즐거워요. 하나만 꼽기는 어렵고, 돼지감자, 무, 마, 초석잠, 연근처럼 다양한 뿌리채소를 두루 사용합니다. 예전에는 허브와 잎채소를 자주 썼는데 몇 년 전부터 한국에서 구할 수 있는 맛있는 뿌리채소의 매력에 빠졌죠. 채소이지만 묵직하면서도 따스한 맛과 기운이 있는 이 식재료는 어떻게 요리해도 아주 훌륭해요. 깨끗이 씻어 생으로 먹어도 좋고, 두툼하게 썰어 스테이크를 굽듯 겉면을 캐러맬라이즈해 바싹 구워내면 속은 즙이 가득하며 부드럽고, 겉면은 아주 건강한 감칠맛이 가득해요.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맛이죠. 정말 맛있습니다.

최근엔 저희 아버지가 은퇴하고 작은 밭을 가꾸는데, 여기서 수확한 돼지감자를 다양하게 요리하고 있어요. 수프도 끓이고, 피클도 담고, 말려서 칩으로 만들기도 하고요. 특히 피클 같은 경우는 한국의 장아찌처럼 꽤 오래 저장을 하며 먹는데 신선한 돼지감자를 숙성하면 은은한 복숭아 향도 나 정말 아름답습니다. 구우면 아주 구수한 반전 매력도 있고요. 대파와 생크림을 넣고 단순하지만 따스하게 끓여낸 수프는 쌀쌀한 계절에 온몸이 편안해지는 맛이죠.

최근엔 한국 사찰요리를 배우며 여기서도 큰 영감을 받았어요. 채소를 다루는 접근 방법이 제가 기존에 배워 온 프렌치와는 또 다르거든요. 셰프가 되더라도 요리의 세계는 배움의 연속이고, 끊임없이 달라지는 영역이에요. 처음 사찰요리를 접할 땐 재료도 단순하고, 조리법도 비교적 쉬워 보였지만 재료 하나하나의 상태를 잘 헤아려 그 맛의 정수를 끌어낸다는 점에서 굉장히 고차원적이라고 느꼈습니다. 지금은 재료를 계속 더하는 것보다, 맛의 핵심을 끌어낼 수 있도록 덜어내고 가장 적합하게 조리하는 것에 신경 쓰고 있어요.

요리에 도전하는 젊은 여성 셰프에게 해 줄 조언이 있다면?

“담대해지자!” 그 한 마디에 모든 것이 포함돼요. 요리 실력을 키우는 과정에서 쓴소리를 들으면, 더 나아지면 될 일이에요. 빨리 프로의 세계에서 ‘동료’로 인정받으려면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앞으로 걸어 나가는 담대함이 필요하죠.

더 많이 도전해야 해요. 시도하기 전에 괜한 두려움을 가지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어요. 누구나 처음엔 부족합니다. 시간이 가며 성장할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다면, 결국 모두 해결될 문제이니까요. 나의 중심을 찾고 신념을 가지는 것, 한 방향으로 걸어가다 보면 그것이 자기 길이 됩니다.

여성 셰프들에 대해서: 이 업계에서 여성 셰프가 더 많은 인지도를 쌓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할 수 있을지?

글쎄요, 생각해 본 적이 없어 어려운 질문이네요. 저는 레스토랑에 어떤 마케팅도 해 본 적이 없어요. 셰프의 입장에서 방문한 고객들이 만족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가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할 뿐이죠.

오너 셰프로 산다는 것은 정말 많은 희생이 필요한 일이에요. 요리를 직업으로 삼겠다고 결심한 이후 요리를 배우고, 공부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관련된 경력을 쌓다가 결국 제 레스토랑을 오픈하기에 이르렀죠. 지난 18년 동안은 저의 개인적 성장 과정이기도 합니다. 그간의 시간을 돌아보니 눈물이 납니다. 하루 종일 집에만 틀어박혀 록 음악을 들으며 시간을 보내던, 그렇게 내성적이던 제가 요리를 통해 세상과 만나게 된 것이죠. 지금도 오너 셰프로 레스토랑을 관리하고 직원을 챙기는 모든 과정을 배워나가고 있고요.

저희는 여전히 어떻게 하면 인지도를 쌓는지에 대한 대답을 드리기 어렵습니다. 저도 그렇게 명성을 위해 일하고 있지 않고요. 열심히 일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유명세를 얻기 위해 일을 한다는 것은 셰프에게 맞지 않는 태도라고 생각해요. 매년, 매달, 새로운 유행이 생기지만 그것을 좇다 보면 자신의 정체성을 잃게 됩니다.

주방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써, 저는 유명세에 울고 웃을 시간이 많지 않고, 트렌드를 분석해 마케팅을 하는 것도 어렵습니다. 아직 오래 산 것은 아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본질’을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의지가 있다면 언젠간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결과가 목표가 될 수는 없어요. 일 하는 모든 과정에서 호기심을 갖고, 행복을 느끼는 매 순간이 중요한 것이죠. 인생에서 음식을 그렇게 대한다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언젠가는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을까요?



2020년, 다가오는 다이닝 트렌드에 대한 김은희 셰프의 생각은?

서울 다이닝 시장의 성장과 함께 고객 수준도 많이 올라가며, 이제 특정한 퀴진에 열광하는 모습은 많이 사라진 것 같아요. 훌륭한 요리를 즐길 수 있는 정말 뛰어난 수준의 레스토랑이 많아지기도 했고요. 고객 입장에서는 다양한 레스토랑에 방문해봤으니, 이제 본인이 가장 진심으로 대접받는다, 사랑받는다고 느낄 수 있는 따뜻하고 정성이 느껴지는 곳에 방문하지 않나 싶습니다.

셰프로써 이런 변화를 체감해요. 즉 진정한 의미의 호스피탈리티(Hospitality)가 올해 다이닝 트렌드 아닐까요? 식사의 순간은 셰프와 고객이 함께 만드는 것이죠. 약속한 시간동안 음식과 대화로 서로의 마음이 통하며, 연극을 하듯 합을 맞추며 에너지를 창조해나가는 과정이고요. 요리하는 사람과 먹는 사람이 모두 행복한 시간입니다. 여기서 진정한 셰프의 환대와 고객의 즐거움이 생겨난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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