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미쉐린 가이드 서울 편 출간 7개월째. 가이드에 소개되는 레스토랑과 호텔은 어떤 절차를 통해 선정되는지, 선정 기준은 무엇인지 등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미쉐린 가이드에 대해 다양한 궁금증을 갖고 있다. 셰프를 포함한 레스토랑 업계 종사자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베일에 싸인 미쉐린 평가원일 것이다. 미쉐린 평가원들은 해마다 3만 km가 넘는 여행을 다니며 다양한 레스토랑에서 250끼가 넘는 식사를 할 뿐 아니라 160여 곳의 호텔에서 잠을 청한다. 이들의 평가는 늘 독립적으로 이뤄지며 일반 손님처럼 익명으로 활동하는 것이 원칙이다.
이들은 누구인가? 어떤 절차를 통해 미쉐린 평가원이 되었나? 미쉐린 평가원이 되기 위한 자격 요건은 무엇인가? 먹는 것을 직업으로 삼는 이들이 음식을 대하는 태도는 과연 어떨까? 익명의 미쉐린 평가원을 만나 다양한 궁금증을 풀어보았다.
미쉐린 가이드 서울 첫 에디션 출간에 대한 소감부터 부탁한다.
아이를 출산한 기분이다. 첫 결과물이 나왔다는 자체로 만족한다. 가이드가 출간된 이후의 반응도 대체적으로 긍정적이었다. 긍정적이지만은 않았던 피드백도 단순 비난이 아닌 건설적인 충고가 더 많았던 것 같다. 무엇보다 미쉐린 가이드 서울 출간에 대한 기대가 얼마나 높았었는지, 한국의 외식 업계가 그동안 얼마나 발전했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미쉐린 가이드 평가원으로서 어떤 마음으로 출간 준비를 해왔는지 궁금하다.
평가 시스템을 구축하여 실행해 나가는 부분이 가장 어려웠다. 출간되기 전부터 무성했던 소문들, 가이드에 대한 정확하지 않은 정보를 전달하는 매체 콘텐츠를 접하면서 정정하고 싶었던 부분이 많았지만, 입을 열 수 없었기에 답답했던 적도 많았었다.
직접 접했던 소문이나 오보 중에 기억에 남는 게 있나?
어느 요리 전문가 겸 방송인이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미쉐린 가이드 출간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레스토랑의 서비스, 분위기, 안락함의 척도를 나타내는 포크와 나이프 픽토그램(Couvert)이 음식 맛의 척도를 의미하는 기호라고 이야기하더라. 음식 전문가가 방송 매체를 통해 미쉐린 가이드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전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쉽다는 생각을 했었다.
미쉐린 평가원은 당연히 외국인일 것이라는 잘못된 인식도 만연했었다. 한식의 평가는 과연 누가 하나, 외국인이 과연 한국 음식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내릴 수 있겠나라는 우려는 처음부터 있었는데 지금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외국인이 나름 평가를 잘 했네”라는 이야기를 지금도 듣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인 평가원들이 활동하고 있고 한식에 대한 평가는 기본적으로 그들이 도맡아 하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해두고 싶다.
출간 준비를 하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들도 많았을 것 같다.
외국인 인스펙터와 방문한 레스토랑에서 있었던 일이다. 정보 입수 차원에서 식사 후 계산서를 지불한 뒤 우리의 신원을 밝히고 식당 대표에게 간단한 인터뷰를 요청한 적이 있었다. 매번 있는 일은 아니지만 필요할 때는 그렇게 할 때도 있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려는데 대표가 미쉐린 평가원이 방문해 준 게 영광이니 벽에 걸 기념사진을 함께 찍어도 되겠냐고 요청했다. 안된다고 정중하게 거절했는데 계속 부탁을 해서 애먹은 적이 있었다. 관심 없다며 대놓고 우리를 쫓아낸 레스토랑 오너도 있었다.
미쉐린 가이드에 등재되는 레스토랑의 선정 절차가 궁금하다.
가장 먼저 하는 일이 꼼꼼한 리서치다. 외식 업계 동향 파악을 위해 다양한 매체를 샅샅이 뒤져본다. 그리고 나서 평가 대상 레스토랑 리스트를 작성한다. 그 목록은 또다시 구 별, 동 별, 음식의 유형 별로 세분화된다. 리스트의 일차 추리 작업을 마치고 난 뒤 레스토랑을 직접 방문하여 음식을 먹어보고, 재방문 하여 음식을 다시 먹어본 뒤에 최종 선정 작업을 한다.
한 레스토랑에는 최소 몇 번을 방문하는가?
확실한 평가가 내려졌다고 생각될 때까지 방문한다.
몇 명의 평가원이 동의해야 미쉐린 가이드에 등재되는가?
여러 명의 평가원들이 동의해야 가이드에 등재된다. 한두 명의 의사가 아닌 공동 작업이라고 보면 된다. 특히 별점 고려 대상의 식당인 경우 '스타 미팅'이라고 불리는 회의에서 결정되는데, 여러 명의 평가원들이 모여 장시간에 걸친 의견 교환과 논의 작업을 한다. 모든 평가원들이 만장 일치해야 비로소 미쉐린 스타가 수여된다.
평가원들 사이에서 의견이 엇갈릴 때는 어떻게 하는가?
그럴 경우 더 많은 평가원을 동원하여 다수의 의견에 따라 최종 결정을 내린다. 필요할 경우 추가적인 방문도 이루어진다.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부분이 미쉐린 가이드에 등재되는 레스토랑에 대한 평가 기준이다.
평가 기준은 오로지 음식의 맛이다. 이 음식이 맛이 있는가? 그런데, 맛의 기준은 굉장히 주관적이어서 객관적인 기준으로 평가한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미쉐린 가이드의 세분화된 평가 척도가 존재하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것 중 하나가 서비스, 분위기, 안락함, 기물 등이 별점 평가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중요하긴 하지만 그런 부분들은 포크와 나이프 픽토그램으로 따로 표시되며 별점 부여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미쉐린 스타를 받기 위해서 반드시 서비스가 훌륭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해두고 싶다. 미쉐린 스타 한 개를 받은 싱가포르의Hong Kong Soya Sauce Chicken Rice & Noodle의 경우 접시 하나에 음식만 내주면 끝이고 서비스가 따로 없는 노점상이다. 오로지 맛으로 승부해 미쉐린 스타를 받은 좋은 예다.
미쉐린 스타를 받은 노점상에 대해 언급해서 하는 말인데, 많은 사람들이 미쉐린 가이드의 본고장인 프랑스와 아시아의 미쉐린 스타 레스토랑을 비교했을 때 별점 수여 기준의 차이가 존재하는 것 같다고 이야기한다.
미쉐린 가이드의 평가 시스템은 세계 어느 도시나 똑같이 적용된다. 미쉐린 스타의 다섯 가지 평가 기준은 요리 재료의 수준, 요리법과 풍미의 완벽성, 요리에 대한 셰프의 개성과 창의성, 가격에 합당한 가치, 전체 메뉴의 통일성과 언제 방문해도 변함없는 일관성이다. 이 기준을 바탕으로 모든 평가가 이뤄진다.
미쉐린 평가원의 암행 방문에 대해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100% 암행 평가가 이뤄지는 줄 알고 있었는데 경우에 따라 평가원이 신원을 밝히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레스토랑과 호텔 평가는 무조건 암행으로 진행된다. 평가원들은 식사와 숙박에 대한 모든 비용을 지불하여야 하며 비용이 지불된 후에서야 레스토랑 오너, 셰프 혹은 매니저에게 본인의 소속을 밝히고 필요한 추가적인 정보를 요청할 수 있다.
미쉐린 가이드 평가원으로서 개인적으로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인가?
가끔 먹는 게 힘들어질 때가 있다. 사람들이 듣기엔 배부른 소리라고 하겠지만 먹는 걸 직업으로 하다 보니 그에 대한 부담이 따르더라. 단순히 맛을 음미하면서 즐기는 게 아니라 모든 요소 하나하나를 분석하고 관찰하며 기록해가면서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미쉐린 가이드 평가원이 되기 위한 자격 요건은 무엇인가?
호텔, 식음 혹은 레스토랑 관련 학위가 있어야 하고 업계에서 최소 10년 이상의 경험이 있어야 한다. 미쉐린 스타 레스토랑 출신 셰프나 소믈리에도 자격 요건이 된다. 무엇보다 음식에 대한 탄탄한 지식과 뜨거운 열정을 겸비해야 한다.
평가원들끼리 모이면 어떤 대화를 나누는지 궁금하다.
음식에 대한 대화를 나눈다. 놀랍지 않은가 (웃음)!
미쉐린 평가원이 되기 전부터 먹는 걸 즐겼나?
항상 좋아했다. 요리를 배우는 것도 좋아하고 하는 것도 즐긴다. 와인과 샴페인도 즐긴다. 여행을 통해 다양한 문화를 접해봤고 많은 음식을 먹어봤다.
최근에 가장 맛있게 먹었던 음식은 무엇인가?
최근에 먹었던 음식 중에서는 쌀국수가 제일 맛있었다. 베트남 하노이 현지에서 먹었던 그 맛이었다. 베트남은 남북으로 긴 나라이기 때문에 북부, 중부, 남부의 기후가 다 다르다. 북부 같은 경우 겨울에는 기온이 꽤 낮아진다. 쌀국수도 북부, 중부, 남부에 따라 차이가 존재한다. 한국에 널리 알려진 스타일은 남부 즉 호찌민식 쌀국수로 숙주와 양파, 호이신 소스와 핫 소스가 함께 제공된다. 하노이 스타일은 쌀국수 국물에 허브를 포함한 모든 채소를 잘게 다져 넣는다. 생 허브를 추가로 제공하긴 하지만 양파와 숙주는 함께 제공되지 않고 식초나 피시 소스, 칠리 소스가 제공된다. 또한 하노이식 쌀국수는 육수가 호찌민식보다 훨씬 더 진하고 단 맛이 덜하다.
세계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다양한 음식을 접해본 사람으로서 한식은 어떻게 평가하고 싶나?
예전에 어느 셰프가 말하기를 맛은 보편적인 것이어서 내 입에 맛있으면 다른 사람 입에도 맛있는 거라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한식의 세계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고민하고 있다. 나는 한식의 맛 자체가 세계화가 될 준비가 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이대로 갖고 나가도 좋은 콘텐츠이고 어디에도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미쉐린 가이드의 대상은 누구인가?
미쉐린 가이드는 현지인과 외국인을 위해 만들어진 가이드다. 관광객을 위한 레스토랑 가이드라고 단정 짓는 사람들이 있는데,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가이드였다면 생태탕이나 게장 요리 전문점은 목록에서 제외했을 것이다. 한국인들이 가장 즐겨먹는 음식 위주로 평가 작업을 했다. 현지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곧 가장 한국적인 거고 외국인들도 자연스럽게 호기심을 갖고 따라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미쉐린 가이드 서울의 궁극적인 목적은 전 세계에 한국 음식을 소개하는 것이다.
가장 좋아하는 한국 음식은 무엇인가?
어머니가 해주는 김치찌개가 제일 맛있다. 어머니가 담근 김치에 김만 있으면 행복하다.
발행일 2017.06.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