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 2 minutes 2025년 9월 29일

불꽃이 비추는 도시, 건축가 유현준이 바라본 부산

다가오는 11월 불꽃축제를 배경으로, 부산의 화려한 야경과 스카이라인이 품은 역사와 오늘의 모습, 그리고 미래에 대한 건축가의 시선을 전합니다.

부산의 밤하늘을 수놓는 불꽃은 단순한 축제가 아니라, 바다와 도시, 그리고 사람들의 열정이 빚어내는 거대한 무대입니다. 매년 가을 광안대교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부산불꽃축제는 100만 명이 넘는 관람객을 모으는 글로벌 이벤트로, 개방적인 바다 도시 부산의 국제적 매력을 상징합니다.

올해 제20회 축제는 2025년 11월 15일 토요일 저녁 7시 광안리 해수욕장 일대에서 펼쳐지며, 단 한 시간 동안 이어지는 화려한 불꽃쇼는 부산을 찾는 이들에게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특별한 기억을 선사할 것입니다. 밤하늘에 터지는 불꽃은 도시 건축물이 만들어내는 윤곽선을 더욱 선명하게 비추며, 이 해양 도시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세계로 향하는 미래를 은유처럼 드러냅니다.

건축가 유현준
건축가 유현준

유현준앤파트너스건축사무소를 이끄는 건축가이자 홍익대학교 건축학과 교수로 활동하고 있는 유현준은 MIT와 하버드에서 수학한 뒤 귀국해 학계와 현장을 두루 아우르고 있습니다. <어디서 살 것인가>와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같은 베스트셀러와 강연을 통해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그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동시에 여러 차례 부산을 찾아 강연하며, 이 도시의 발전과 미래 비전에 대한 고민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습니다.

부산 출장을 또 한 번 앞둔 유 교수는, 미쉐린 가이드와 함께 이 도시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가능성을 조망했습니다.


해질 무렵 요트 선착장 위로 펼쳐지는 마린시티의 스카이라인
해질 무렵 요트 선착장 위로 펼쳐지는 마린시티의 스카이라인

과거: 한국 최초의 도시

다양한 문화가 한 그릇 속에 담긴 밀면

유 교수는 부산을 한국 최초의 도시라고 합니다. “밀도가 높아서 상업이 발달하는 데가 도시라고 생각합니다. 직업도 분화돼 있고요. 그런 면에서 보면 대한민국에서 그렇게 상업이 발달한 첫 번째 케이스가 부산이 아닌가 생각이 들어요.”

물론 조선 시대에는 한양, 일제 강점기에는 경성으로서 서울이 늘 존재했지만, 유 교수는 “제 기준으로는 밀도가 낮았다”고 말합니다.

“부산은 반면 한국전쟁을 통해 인구가 갑자기 몰렸죠. 또 하나, 대도시의 특징은 멀티컬처럴(multicultural)해야 합니다. 다양한 문화권이 모여 융합되어 새로운 하이브리드 문화가 만들어져야 하는데, 그런 면에서 부산이 대표적이죠.”

“한국전쟁 때 함경도, 평안도, 전라도, 강원도 사람들이 다 좁은 부산이라는 공간에 모였고, 그걸 통해서 새로운 문화가 만들어졌습니다. 그 대표적인 게 밀면인 것 같아요. 밀면 같은 경우 재료를 구할 수 없으니까 밀가루 같은 보급품으로 메밀 대신 만들어 새로운 음식이 생겨난 거잖아요. 그런 면에서 부산은 특별한 도시죠.”

1950년대 냉면을 만들 수 없어 탄생한 것이 부산 대표 음식 중 하나인 밀면이지만, 오늘날 미쉐린 가이드 셀렉션에는 냉면집이 세 군데나 포함되어 있습니다: 담미옥, 백일평냉, 그리고 부다면옥. 더불어 세 음식점은 모두 합리적인 가격에 뛰어난 맛을 즐길 수 있는 레스토랑을 선정하는 미쉐린의 어워드인 빕 구르망(Bib Gourmand)을 수여받았습니다.


유엔(UN)이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공식 지정·관리하는 묘역인 유엔기념공원
유엔(UN)이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공식 지정·관리하는 묘역인 유엔기념공원

자유민주주의와 해외 문화의 기착지

한국 최대 항구 도시인 부산은, 여러 사상과 문화가 스쳐 지나간 기착지였다고 유 교수는 설명합니다.

“상업이 발달하고 자유민주주의 세력이라고 하는 것들이 다 해양을 통해 넘어왔으니 그 첫 번째 기착지가 부산이었고, 한국전쟁 때 유엔(UN)군도 부산에 내렸죠. 유엔 참전용사를 기리는 기념공원도 지금 부산에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부산이 특별한 도시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그게 부산의 건축적·도시적 의미인 것 같아요.”

부산 도심 한가운데, 정갈한 녹음 속에 자리한 유엔기념공원은 6·25전쟁의 기억을 품은 유엔공식 묘역입니다. 유엔이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공식 지정·관리하는 묘역이며, 당시 참전해 전사한 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터키 등 11개국 장병의 유해가 안장되어 있습니다. 이 고요한 산책길을 따라 걸으면 부산이 품고 있는 현대사의 기억을 느낄 수 있는 특별한 장소입니다.

또한 부산항에서 출발해 300km 떨어진 제주도보다도 100km 더 가까운 거리에 있는 여행지가 일본일 만큼, 부산은 문화적으로 일찍 개방된 도시였습니다.

“일본문화가 금기된 시대였던 80년대 중후반에도 위성 TV만 달면 NHK를 볼 수 있었기 때문에 부산이 제일 문화적으로 개방되어 있던 해방구였다고 생각해요. 그런 면에서 부산이 특별하죠.”


해변과 고층 건물이 나란히 어우러진 해운대
해변과 고층 건물이 나란히 어우러진 해운대

현재: 산과 바다 사이 우뚝 선 스카이라인

유 교수는 부산의 가장 두드러진 매력으로 도시와 바다가 맞닿아 있는 지형적 특성을 꼽습니다.

“부산은 산 바로 옆이 바다죠. 경사가 많고 좁고 길게 해안선을 따라 도시가 형성됐다는 점이 특이합니다. 이게 큰 매력이라고 할 수 있는 게요, 정신없는 골목이 바로 해운대·광안리 같은 바다와 맞닿아 있다는 거예요.”

“부산은 약간 홍콩과 와이키키를 섞어놓은 것 같아요. 홍콩은 밀도는 높지만 해변은 없고, 와이키키는 해변은 있지만 고밀도 도시가 아니죠. 그런데 부산은 와이키키의 해변과 홍콩의 뒷골목이라는 두 가지 장점을 한꺼번에 갖고 있는 도시라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부산에서는 해수욕과 번화가를 동시에 즐길 수 있으며, 그 중심에는 해운대와 광안리가 있습니다.

해운대

유 교수는 해운대 끝자락인 미포 방파제를 마주보는 인기 식당 ‘속씨원한대구탕 미포본점’에서 식사를 한 뒤, 달맞이길에 위치한 갤러리들을 구경하는 것을 즐긴다고 합니다. 달맞이길에는 다양한 갤러리와 카페, 그리고 미쉐린 1스타 레스토랑인 팔레트피오또가 있습니다.

해변가를 따라 산책하다 보면 반대편 끝에 웨스틴 조선 부산에 도달하는데, 오션뷰를 자랑하는 1층 로비 라운지를 유 교수가 자주 찾는다고 합니다. 미쉐린 셀렉션 호텔이기도 한 웨스틴 조선 부산은 불꽃축제를 즐길 수 있는 명당 중 하나로 손꼽힙니다.

후식으로는 마린시티에 위치한 ‘브알라(Voila) 카페 부산 해운대 마린시티’의 소금 아이스크림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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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안리

불꽃축제가 마린시티와 광안리 해변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만큼, 유 교수는 미쉐린 가이드에도 소개된 광안리 ‘언양불고기 부산집’파크 하얏트 부산을 추천합니다.

광안리 앞바다를 보며 식사를 즐길 수 있는 부산집의 언양 불고기는, 국물 자작하게 끓여낸 달큰한 서울식 불고기와 달리 숯불에 구워낸 불향 가득한 고기 본연의 맛으로 승부하는 향토 별미입니다.

파크 하얏트 부산 30층에 자리한 스카이라운지는 광안대교와 해운대 바다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곳으로, 부산 최고의 전망 명소 중 하나입니다. 특히 탁 트인 통유리 창을 통해 바다 위로 터지는 불꽃을 칵테일과 함께 감상할 수 있습니다.

밤바다를 배경으로 한 해운대 마린시티, 그 끝자락을 장식하는 파크 하얏트 부산.
밤바다를 배경으로 한 해운대 마린시티, 그 끝자락을 장식하는 파크 하얏트 부산.

미래: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줄 새로운 지평선

부산의 미래를 이야기하며, 유 교수는 먼저 산업 지형의 변화를 짚습니다. 유 교수는 “빛의 속도로 자본이 이동하면서 제조업이 해외로 나가는 게 최근 큰 변화”라고 말합니다.

“부산은 전통적으로 제조업 기반의 공장들이 동남아시아나 중국으로 빠져나가면서 일자리를 많이 잃고 활력도 많이 잃은 상태입니다.”

높은 밀도만으로는 도시는 발전할 수 없다고 그는 강조합니다. “사람 간의 소통이 잘 이루어지게 해야 합니다. 공원, 공공시설, 편의시설이 적당히 갖춰져야 하고요. 부산은 땅이 부족하지만 다행히 부산항만공사가 바닷가와 접한 땅을 많이 소유하고 있습니다. 잘만 개발하면 부산이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다고 봅니다.”

“수변 공간을 어떻게 차별화할 것이냐, 그걸 제대로 풀어낸다면 대체 불가의 도시가 되겠죠.”

또한 공원 조성을 위한 공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한데, 물류를 지하로 내려보내는 방식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물류를 자율 로봇 시스템으로 구축하면 지상 교통량이 줄면서 환경이 좋아질 것 같아요. 또 경사 지대에는 홍콩처럼 에스컬레이터를 적극적으로 설치해 대중교통 이용을 유도해야 합니다. 지하철역에서 언덕과 고지대까지 연결되도록요.”


부산 기장에 유현준 교수가 설계한 로와맨션
부산 기장에 유현준 교수가 설계한 로와맨션

바닷바람을 마주하는 공간

사람과 공간의 흐름을 중요시하는 유 교수답게, 그가 부산 기장에 직접 설계한 로와맨션은 작은 마을처럼 디자인되었습니다.

“바닷가 쪽에 건물을 설계하면 보통은 바다 경치를 한눈에 보게 하는데, 그렇게 되면 모든 위치에서 풍경이 거의 똑같아 재미가 없어요. 또 카페로 쓰이면 돈을 낸 사람만 그 경치를 즐길 수 있죠. 하지만 마을처럼 만들면 사람들이 밖에서도 공간을 관통해 계단으로 내려가 바다까지 갈 수 있고, 한 코너마다 다른 풍경이 만들어집니다.”

또한 현재 웨딩홀 및 이벤트 공간으로 활용되는 건물들을 하나로 이어주는 거대한 파도 형태의 벽체(프로젝트명 ‘Wind Fence’)도 특징입니다. 불가리아 출신 대지 미술가 크리스토 자바체프로(Christo Javacheff)부터 영감을 받았다고 합니다.

“바람의 모습을 느낄 수 있는 모양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해의 위치에 따라 그림자가 다르게 생기고, 벽체를 중심으로 사람이 어디에 서 있느냐에 따라 다양한 공간 관계가 만들어집니다.”

건물들을 하나로 이어주는 거대한 파도 형태의 벽체(프로젝트명 ‘Wind Fence’)
건물들을 하나로 이어주는 거대한 파도 형태의 벽체(프로젝트명 ‘Wind Fence’)

본 프로젝트는 월드 아키텍처 페스티벌 최종 후보(World Architecture Festival, shortlist)에 올랐고, 독일 디자인 어워드(German Design Award, winner)를 수상했으며 아키텍처 마스터프라이즈(Architecture MasterPrize, honorable mention)에서 명예 언급을 받았습니다.

부산이 하드웨어적 업그레이드뿐 아니라 소프트웨어적 부분까지 갖춘다면 국제 도시로서 가능성이 더욱 열릴 것이라고 유 교수는 강조합니다.

“세금 제도 등을 싱가포르처럼 국제적인 스케일에 맞춘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해외 자본과 금융기업들도 많이 들어왔으면 좋겠어요. 거기에 맞춰 부산 국립학교가 영어를 의무교육화하면 사람들이 해외 기업에 취직하기 쉬워지고, 기업들도 부산에 오고 싶어질 겁니다.”

유 교수는 부산에 대해 “무궁무진하게 발전할 수 있는 도시”라 강조합니다. “제가 정말 사랑하는 도시인 부산이 앞으로 더욱 잘됐으면 좋겠습니다.”

광안대교 배경으로 펼처지는 부산불꽃축제를 감상하러 광안리해변에 몰려든 관람객.
광안대교 배경으로 펼처지는 부산불꽃축제를 감상하러 광안리해변에 몰려든 관람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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