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1 minute 2025년 12월 13일

성시우 셰프의 레귬, 아시아 최초 미쉐린 스타 비건 레스토랑

어머니의 알레르기를 걱정하며 시작한 고민은, 결국 한국 비건 미식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여정으로 이어졌습니다.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3년 봄, 서울 한복판에서 비건 레스토랑을 열겠다는 성시우 셰프를 모두가 말렸다고 합니다. 레귬(Légume)은 그가 미쉐린 2스타 레스토랑 스와니예(Soigné)에서 10년 넘게 일하며 헤드 셰프 자리까지 오른 뒤, 처음으로 선보인 오너셰프 프로젝트였습니다. 육류 중심의 메뉴가 대세인 한국 미식 시장에서 비건 메뉴를 선보인다는 건, 누구에게나 모험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성 셰프는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3년은 어떻게든 버텨보자. 안 되면 그때 가서 다시 시작하면 되지.” 그렇게 마음을 먹었다고 합니다. 당시 그는 레귬이 마니아층의 사랑을 받을 거라고도, 2025년 미쉐린 스타를 받게 되리라고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믿음을 요리로 증명하기까지

레귬은 전 세계에서 미쉐린 스타를 받은 단 9곳의 비건 레스토랑 중 하나이며, 아시아에서는 최초로 이 영예를 안았습니다. 미국과 서유럽에 집중된 기존 사례들과는 분명히 다른, 특별한 위치에 놓인 셈입니다.

“제가 아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한 번 더 생각해보라고 했어요. 그래도 전 잘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죠,”라고 성시우 셰프는 말합니다. 서울에서 접할 수 있는 비건 외식은 대부분 사찰 음식이거나, 전문 셰프가 아닌 비건 실천자들이 운영하는 캐주얼 식당에 한정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 셰프는 비건은 아니지만, 어릴 적부터 채소 요리에 남다른 애정을 가져왔습니다. 그 계기는 어머니의 육류 알레르기였습니다. “저희 가족은 외식할 때 항상 해산물 식당만 갈 수 있었어요,”라며, 유제품에도 민감했던 어머니는 자신이 10년간 스와니예에서 버터를 중심으로 한 요리를 선보이던 시절, 단 한 번도 식당을 찾을 수 없었다고 덧붙입니다.

그래서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메뉴를 만들고 싶었고, 그 시작이 바로 ‘비건’이었습니다.

“서울의 비건 식문화에 새로운 것을 선보일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설령 망하게 되더라도, 제 기술은 어디 안 가니까요. 언제든 프렌치 요리로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죠.”

레귬이 신사동에 문을 연 첫 해는 정말 힘든 시기였다고 그는 회상합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호텔을 통해 소개받은 외국인 비건 여행자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퍼지기 시작했고, 점차 건강한 식문화를 찾는 국내 미식가들 사이에서도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계절 식재료로 완성한 레귬의 감각적인 비건 요리들. © Légume
계절 식재료로 완성한 레귬의 감각적인 비건 요리들. © Légume

“한 번은 아버지 또래의 남성 손님들이 함께 방문하셨는데, 각자 고기나 밀가루를 피해야 하는 건강상의 이유가 있으셨습니다. 평소 저희 식당을 찾는 분들과는 다른 연령대라 인상 깊었어요,”라고 성 셰프는 말합니다.

“더 다양한 선택지를 통해 한국 미식의 흐름에 조금이나마 기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레귬을 찾는 이유가 꼭 식단 제한 때문만은 아닙니다. 온라인 리뷰를 보면, 어떤 손님은 이곳이 비건 레스토랑이라는 걸 모르고 방문했고, 또 어떤 손님은 새로운 미식 경험을 기대하며 일부러 찾아주셨습니다.

“어느 날 한 커플이 식사하러 오셨는데, 남자 분이 ‘고기는 안 나오나요?’ 하고 물으셨어요. 알고 보니 여자친구분이 일부러 저희가 비건이라는 사실을 미리 말하지 않으셨더라고요. 편견 없이 음식을 경험하길 바라셨던 거죠. 그런데 남자 분이 맛있게 드셨다고 말해주셨을 때, 무척 기뻤습니다,”라고 성 셰프는 전합니다.

“비건 음식에 대한 선입견만 내려놓는다면, 누구든 저희 식당에서 즐거운 경험을 하실 수 있다고 믿습니다.” 실제로 성 셰프는 초반에는 레귬이 비건 레스토랑이라는 점을 크게 내세우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직 한국에서는 ‘비건’이라는 개념 자체가 생소한 분들도 많기 때문입니다.


맛을 설계하다

비건 재료는 육류에 비해 감칠맛을 구현해내기 어렵기 때문에, 셰프에게는 늘 도전 과제가 됩니다. 성 셰프는 이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익숙한 채소에 낯선 터치를 더하거나, 생소한 식재료를 과감히 접목시키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저는 두 가지 방식으로 접근해요. 하나는 양파나 당근처럼 한국에서 사시사철 구할 수 있는 흔한 채소를 계절에 맞게 창의적으로 변주하는 거고요, 다른 하나는 손님들이 생소하게 느낄 수 있는 이국적인 식재료를 사용하는 겁니다.” 성 셰프는 그 예로 멕시코산 뿌리채소인 히카마(jicama)를 들었습니다. 아삭한 식감이 인상적인 채소입니다.

이처럼 식감 자체가 중요한 요소인 만큼, 그는 요리 전반에 걸쳐 식감의 다양성에도 공을 들입니다.. 찐 퀴노아와 튀긴 퀴노아를 섞는가 하면, 과일과 채소를 일정 기간 숙성하거나 발효시켜 각각의 농도를 달리하고, 견과 오일을 활용해 크리미한 질감을 더하는 식입니다.

그 결과 레귬의 요리는 풍미와 식감 모두에서 입체적이고 다채로운 구성을 보여줍니다. 대표 메뉴로는 제철 재료인 고사리를 곁들인 뇨끼, 그리고 겉을 카라멜라이즈해 은은한 스모키 향을 입힌 느타리버섯 스테이크가 있습니다.

요즘 성 셰프는 레귬의 비건 정체성을 보다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제주의 한 농장에서 열린 팜 투 테이블 팝업 이벤트에 참여해 비건 요리를 주제로 한 행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 행사는 제주의 제로 웨이스트 레스토랑 '넘은봄', 서울의 미쉐린 1스타 레스토랑 '이에스트(Y’east)', 그리고 다수의 파인다이닝 레스토랑과 호텔에서 사용되는 프리미엄 스파클링 티 브랜드 '효하우스(Hyo House)'와 함께 공동으로 개최되었습니다.


더 알아보기: 미쉐린 2스타 권숙수, 효하우스와 함께 논알콜 스파클링 티 협업


레귬에서는 와인이나 티와의 페어링을 통해 요리의 풍미와 상상력을 한층 확장합니다. 몇 가지는 자체 제작한 블렌딩 티로, 개성 있는 구성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전담 소믈리에는 없지만, 같은 건물 맞은편에 있는 스와니예의 도움을 받아 페어링을 완성합니다.

레귬은 식감의 조화를 통해 한 접시에 다층적인 경험을 담아냅니다. © Légume
레귬은 식감의 조화를 통해 한 접시에 다층적인 경험을 담아냅니다. © Légume

“셰프에게 미쉐린 스타를 받는다는 건 정말 큰 영광이고, 제 삶도 정말 많이 달라졌습니다.” 레귬이 문을 연 지 채 2년도 되지 않아 받은 영예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고기 없이 미쉐린 스타를 받은 레스토랑’으로 불리게 됐죠. 솔직히 부담도 커요. 예전엔 그냥 ‘채소 요리를 잘하는 집’ 정도였다면, 지금은 파인다이닝다운 독창성을 보여줘야 한다는 기대치가 훨씬 높아졌거든요.

레귬이 아시아 최초로 미쉐린 스타를 받은 비건 레스토랑이라는 사실도 처음엔 잘 몰랐다고 합니다. “홍콩의 한 호텔과 갈라 행사를 함께 준비할 때, 거기서 알려줘서 정말 놀랐어요,”라고 그는 웃으며 말합니다.

2025년은 성 셰프에게 유난히 특별한 해였습니다.

2월 말 미쉐린가이드 발표가 있었던 바로 다음 주, 성 셰프의 비건 요리책 <더 비건 팬트리>가 출간되면서 언론과 업계의 주목을 한 몸에 받게 되었습니다.

“정말 기막힌 타이밍이었어요. 이 책은 원래 비전문가, 그러니까 집에서도 쉽게 만들 수 있는 요리를 위한 레시피북으로 기획했거든요. 그런데 미쉐린 스타 덕분에 예상 외로 요리사나 업계 분들도 많이 사주시더라고요. 덕분에 더 많은 분들께 닿을 수 있었죠.”

성 셰프의 다음 목표는 캐주얼 비건 레스토랑을 여는 것입니다.

“당분간은 레귬에 집중할 생각이지만, 언젠가는 한국의 비건 외식 문화를 더 다채롭게 만들고 싶어요. 어머니처럼 식이 제한이 있는 분들이나, 평범한 직장인들도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즐길 수 있는 식당을 만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한국에서 비건 요리는 아직 갈 길이 멀지만, 그 여정에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참 보람을 느낍니다.”

서울 신사동에 위치한 미쉐린 1스타 레스토랑 레귬의 내부 모습. © Légume
서울 신사동에 위치한 미쉐린 1스타 레스토랑 레귬의 내부 모습. © Légu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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