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ures 1 minute 2023년 5월 24일

매일 조금씩 더 깊어지는 정면의 국물

미쉐린 가이드 서울 2023에서 빕 구르망으로 선정된 정면의 한국식 쌀국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미쉐린 가이드 서울 2023에서 합리적인 가격에 훌륭한 음식을 제공하는 레스토랑인 빕 구르망으로 선정된 정면은 한국식 쌀국수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정면의 정동재 셰프에게 정면은 어떤 곳이냐고 묻자 그는 "뜻 '정(情)'과 국수 '면(麵)' 이라는 이름 그대로 요리사의 뜻을 담아낸 국수 한 그릇을 손님들 앞에 내어놓고 있다"라고 소개했습니다.

정면 앞에는 오픈 전부터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있습니다. 자리는 7석뿐인 데다 하루에 100그릇 정도만 판매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긴 기다림 끝에 식사를 마치고 가게를 나서는 손님들의 표정에는 만족감이 가득합니다. 손님들이 나가고 남은 자리에는 빈 그릇만이 놓여있고요. 국물까지 비워졌다는 것은 국물이 그만큼 특별하다는 뜻이 아닐까요?

베트남이나 태국 등의 동남아시아 지역이 먼저 떠오르기 마련인 쌀국수라는 장르에서 '한국식 쌀국수'를 완성해낸 정면이 지향하는 쌀국수의 맛은 무엇인지, 국물에는 어떤 비밀이 숨어있는지 물었습니다.

"정면의 쌀국수는 제주도의 고기국수를 모티프로 만들어졌어요." 시원하면서도 묵직한 맛의 국물과 부드러운 면, 그리고 잘 삶겨진 고기 몇 점이 올라간 고기국수를 재해석해 지금의 백면과 홍면이 완성된 것이죠. 그리고 한 그릇의 국수를 만드는 과정에서 정동재 셰프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부분이 바로 국물입니다. 

그래서 정면의 매일은 육수를 끓이는 일에서부터 시작합니다. 마늘, 생강, 무, 표고버섯, 디포리, 멸치, 바지락, 사과, 생강 등 20여 가지 재료를 넣어 기본 해물 육수를 끓이죠. 익숙한 육수 재료들 사이에 단연 눈에 띄는 것은 사과입니다. 육수와는 어울리지 않는 재료인 것 같지만 정면의 기본 해물 육수에서 잡내를 제거하고 향을 더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멸치와 디포리로 육수를 끓이다 보면 아무래도 잡내가 많이 나요. 사과를 넣으면 잡내가 정리가 되는 동시에 특유의 향이 육수에 더해져 더욱 복합적인 맛이 납니다. 수많은 시도와 실험 끝에 얻어낸 비법이에요. 사과를 넣는다고 하면 가장 먼저 단맛이 나지 않을까 생각하시는데, 의외로 단맛은 나지 않습니다. (웃음)"

보통은 해산물이나 고기 중 한 가지만 사용한 육수를 많이 사용하지만, 정면에서는 세 가지 육수를 블렌딩해서 사용합니다. 채소와 해산물만 넣은 육수는 시원한 맛이 좋지만, 육수 자체의 무게감이 부족하다는 단점이 있고, 닭이나 돼지고기로 만든 육수는 감칠맛이 좋지만 자칫하면 너무 무거워지기 쉬웠습니다. 정동재 셰프는 기본 해물 육수는 한국적인 재료들로 끓이고, 돼지고기 육수와 닭육수는 양식 레시피를 기반으로 해서 끓여낸 후 서로 섞어서, 각 육수의 특징을 살리면서도 부족한 부분을 보완했고, 덕분에 끝까지 굵직한 선을 그리는 듯한 정면만의 국물 맛을 완성했습니다. 

정면의 쌀국수는 작은 종지에 담긴 갓김치 볶음, 그리고 작은 공기에 담긴 쌀밥과 함께 손님 앞에 놓입니다. 국수만으로도 양은 충분하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 먼저 들어 왜 쌀을 같이 제공하냐고 물었습니다. “면은 국물을 많이 흡수하지 않잖아요. 하지만 쌀은 국물을 완전히 머금을 수 있어요. 그 차이 때문에 같이 먹었을 때 국물의 맛도 달라지거든요.” 면과 먹었을 때와 밥과 먹었을 때, 그 사이의 섬세한 맛의 차이를 느끼면 국물의 모든 면을 놓치지 않고 즐길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정면의 쌀국수는 국수가 아니라 ‘국물’에 더 집중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동재 셰프는 국수를 모두 먹은 후 밥을 조금이라도 국물에 적셔서 먹는 것을 추천합니다. 특히 밥과 함께 먹을 때 국물 맛은 조금 더 깊어지기 때문이죠. 쌀알마다 배어든 국물은 쌀의 단맛과 어우러져 더욱 균형 있는 맛이 됩니다.

정동재 셰프는 시그니엘 호텔의 조리팀에서 일하며 양식을 주로 다뤄왔는데, 언젠가 자신의 가게를 연다면 셰프와 손님이 마주 보고 있는 아주 작은 가게를 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정면에서 손님들은 바로 앞의 주방에서 한 그릇의 국수가 완성되는 과정을 모두 지켜봅니다. 정동재 셰프를 비롯한 주방 팀은 또 동시에 손님들이 식사하는 것을 모두 지켜볼 수 있습니다. 말뿐만 아니라 서로의 시선을 통해 손님과 셰프가 소통할 수 있는 공간에서 정면의 이야기는 육수만큼이나 매일 조금씩 더 깊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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