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던 한식 요리를 선보이는 레스토랑마다 각자 독특한 개성이 있지만, 묘미는 한국의 다양한 지역 향토음식을 세련되게 풀어내며 한국인 뿐 아니라 외국인 고객에게 두루 호평받고 있습니다. 묘미는 미쉐린 가이드 서울 2020에서 1스타로 선정된 뒤, 레스토랑에서 수셰프로 활동하던 김정묵 셰프를 전면으로 내세우며 현대 한국인이 일상적으로 먹는 지역 향토음식에 집중합니다. 다른 유수의 한식 레스토랑에서 고문헌 속 궁중요리나 반가요리를 재현하는 것에 비해, 당대의 사람들이 즐기는 살아있는 한식에 집중하는 셈입니다.
“전통이 있되 지금까지 이어지는 생생한 한식의 경험을 재해석해 세련되게 풀어내고 싶습니다. 식사를 하러 오신 분이 묘미의 다이닝 테이블에 앉아 전국 방방곡곡을 여행하는 기분을 느끼도록 한국의 지역 음식을 두루 활용하죠. 한국은 산맥이 많고 바다로 둘러싸여 과거에는 지역 간 교류가 쉽지 않았습니다. 또한 기후 특성도 지역에 따라 큰 차이가 있어서 산 하나만 넘어도 식재료와 식문화가 상당히 달랐고 그 덕에 한국 지역 요리는 더욱 다채롭게 발전했습니다.” 김정묵 셰프는 묘미의 음식에 대해 이와 같이 설명합니다.
김정묵 셰프는 레스토랑 팀과 함께 끊임없이 한국 곳곳을 탐험하며 맛을 사냥합니다. 로컬 재료를 찾아나서는 셰프는 다양하지만, 묘미 팀은 각 지역에서 토착 식재료를 다루어 온 방식, 즉 식재료를 조합하고 맛을 내며 음식으로 만들어 즐기는 조리법과 문화에 폭넓게 주목하고 있습니다.
김정묵 셰프가 소개하는 대표적인 요리는 동치미입니다. “묘미에서 육류 메인 뒤에 시원한 동치미를 서빙합니다. 서양식 요리에서는 육류 메인 뒤에 디저트로 넘어가며 식사가 마무리된다고 생각하는 것과 달리, 한식에서는 고기를 먹고 밥이나 국수 등 탄수화물이 주가 되는 메인 코스가 이어지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이 때 동치미는 육류 메인과 식사 메인 사이에 입을 가볍게 정리하고 이어주며 다시 입맛을 돋워주는 중간 역할을 합니다.”
김정묵 셰프는 각 지역에서 토속 음식을 즐기는 방식을 요리에 녹여냅니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시원한 동치미 국물에 할머니가 쪄 주신 고구마를 함께 먹은 기억이 있을거에요. 이처럼 먹는 방식을 다이닝 코스에 자연스럽게 제안하는 것이지요. 동치미는 배추와 무를 주 재료로 한 뒤 마늘과 생강 등의 강한 향신료를 소금물에 넣어 한 달 이상 함께 발효하며 감칠맛을 올려 준비합니다. 그리고 다이닝 테이블에 요리를 완성해 올리기 전, 삶은 고구마를 더해 한국인이 동치미를 정겹게 즐기는 방법까지 한 그릇에 담았습니다.”
묘미는 최근 다양한 리뉴얼을 단행하며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한식에서 ‘정’을 상징하는 국물 요리를 강화하며 음식의 톤도 조금 더 따스하고 소탈한 방향으로 만들어 나간다는 것이 김정묵 셰프의 포부입니다. “이곳을 찾은 분들이 한국 향토 음식의 따스한 정감을 느끼셨으면 좋겠습니다. 아울러 ‘덜어내기’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지역색과 계절감을 품은 주재료의 매력을 최대한 느낄 수 있도록 불필요한 요소는 최대한 배제하는 것이죠. 더 선명하고 집중력 있는 음식이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묘미의 김정묵 셰프가 생각하는 정답은 늘 음식 문화의 지혜 속에 있습니다. “한식의 무궁무진함은 지금도 사람들이 향토 음식을 즐기는 다채로운 방식에서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저는 셰프로써 여전히 널리 알려지지 않은 지역 음식을 연구하고, 묘미의 방식으로 풀어나가겠다는 뜻을 품고 있습니다.”
젓갈 백반, 국수로 재해석하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한국의 음식 문화에서 해산물은 다채롭게 활용됩니다. 그 중, 해산물을 염장해 발효하고 보관하며 먹는 젓갈 문화도 지역에 따라 다양하게 발전했습니다. 한국의 젓갈은 맑은 액젓(피시소스)의 형태부터 재료를 적당히 삭힌 뒤 마늘과 참기름, 깨 등을 더해 그 자체로 음식으로 즐기는 젓갈까지 넓은 스펙트럼으로 소비됩니다.
김정묵 셰프가 주목한 향토음식은 흰 쌀밥에 다양한 젓갈을 올려 먹는 전라남도 ‘젓갈 백반’입니다. 젓갈은 발효 과정에서 단백질이 분해되며 감칠맛을 내는 아미노산 성분이 풍부해지는데, 여기에 매콤한 고춧가루와 신선한 들기름, 알싸한 마늘을 더해 입맛을 돋우는 반찬으로 완성됩니다. 다른 음식의 부재료가 아닌, 쌀밥에 곁들이는 독립적인 반찬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입니다. 한국에서는 잘 만든 젓갈을 ‘밥도둑’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김정묵 셰프는 이 젓갈 백반에 착안해, 밥 대신 소면을 젓갈과 함께 먹는 비빔국수를 제안합니다. 도화지처럼 담백한 밀가루 소면에 강렬한 감칠맛의 젓갈을 비벼 입맛을 돋우는 요리입니다. 한국에 수백가지가 넘는 지역 젓갈이 있지만 셰프가 주목한 것은 제주도의 갈치속젓과 강원도 강릉의 청어알젓입니다. 특히 갈치속젓은 창난젓과 함께 몇 안 되는 생선의 내장을 이용한 우리나라 대표 젓갈로 갈치 살을 손질하고 난 내장을 오래 두고 먹기 위해 생각해 낸 지혜가 담겨 있습니다. 내장은 살코기에 비해 자가분해 효소가 많아 숙성 속도가 빠르고 감칠맛이 훨씬 강렬합니다. 치즈에 비유하자면 모차렐라보다는 블루치즈에 가깝죠.
갈치속젓의 강렬한 감칠맛과 발효취에 식감과 고소함, 부드러움을 더하기 위해 강릉을 중심으로 발전한 동해안의 향토음식인 청어알젓을 더해 비법 소스를 완성합니다. 김정묵 셰프는 전통 방식으로 만들어진 청어알젓은 소금과 무즙을 넣어 고소하면서도 깔끔한 맛이 특징이라고 설명합니다. “향토 요리는 대체로 지역적으로 국한된 식재료를 조합해 완성되지만, 저희는 향토음식에서 영감을 받되 이에 머무르지 않고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다른 지역의 재료와 음식을 결합해 최상의 조합을 찾아 나갑니다.”
준비하는 데 15분이 채 걸리지 않는 김정묵 셰프의 젓갈 비빔면은, 만드는 방법은 단순하지만 입맛을 사로잡는 한국적 감칠맛의 정수를 담고 있습니다.
묘미의 젓갈 비빔국수 레시피
청어알젓 200 g 갈치속젓 100 g 사과식초 10mL
소면 60 g 간장 40mL 들기름 20mL
각종 봄나물(두릅, 달래 등) 들기름 15mL
1. 강릉 청어알젓과 제주 갈치속젓을 섞는다
2. 소면을 끓는 물에 넣고 2분 30초동안 삶은 후 찬물에 헹궈 식힌 뒤 물기를 빼 준비한다.
3. 두릅, 냉이 등 계절 봄나물 약간 끓는 물에 30초간 데친 뒤 물기를 빼고 간장과 들기름으로 무쳐 준비한다.
4. 1의 젓갈과 2의 면을 섞은 뒤, 3의 나물을 올려 완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