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다이닝 업계에서 각자의 영역을 걸어온 두 형제가 의기투합해 오픈한 ‘있을 재’. 이재훈 셰프와 이재호 매니저가 새롭게 던지는 출사표의 의미로 그들의 이름 돌림자를 넣어 레스토랑 이름을 짓고, 클래식하되 개성 있는 요리로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이재훈 셰프 특유의 재기 발랄함과 로컬 식재료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클래식한 레시피에 재치를 더해 선보이는 있을 재의 요리는 미식가들의 선택지를 더욱 높힙니다.
차가웠던 겨울이 지나고 생동감이 가득 느껴지는 봄을 맞아, 이재훈 셰프가 있을 재에서 선보이는 그의 요리 철학과 셰프로서의 삶, 그리고 봄철 메뉴에 대해 소개합니다.
요리에 대한 열정을 가지게 된 계기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일을 시작했는데, 그 시절엔 제대로 된 이탈리아 요리가 많이 알려지지 않아 정통성 있는 요리를 하는 식당이나, 전문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곳이 거의 전무했습니다. 그래서 항상 본토 음식에 대한 궁금증이 있었고, 이탈리아의 요리학교인 icif를 다녀온 계기가 됐죠. 유학을 다녀온 후 서울의 압구정과 청담동 일대의 레스토랑에서 경력을 쌓았는데, 한국에서 미식 문화가 가장 치열한 지역이었어요. 열정과 실력을 모두 갖추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든 환경이었고, 자연스럽게 제가 하는 일에 더욱 몰두하게 되었습니다.
셰프님의 롤 모델은 누구이신가요? 영향을 받은 특별한 인물이 있나요?
어떤 특정한 셰프를 롤 모델로 삼고 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탈리아 요리학교에서 유학을 하던 시절, 삐에뜨로 발디라는 선생님이 기억에 남습니다. 선생님의 댁에 놀러갔을 때, 바로 뒤에 있는 산으로 가셔서 와일드 아스파라거스를 비롯한 채소를 직접 채취해 오셨고 이것으로 샐러드를 해 주셨던 것이 정말 인상깊습니다. 심플함 속의 조화로움이라는, 이탈리아 요리의 본질에 대해 저에게 큰 가르침을 주신 분이지요.
가장 좋아하는 식재료는 무엇인지, 어떻게 활용하는지?’
대체로 해산물을 요리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 중에서도 굴을 빼놓을 수 없죠. 개인적으로는 생굴을 그대로 먹는 것을 가장 선호하지만, 레스토랑에서 손님에게 요리로 선보일 때는 노로 바이러스 등의 잠재적인 위험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생각해낸 메뉴가 몬탈치노식 페스토에 익힌 굴이에요.
몬탈치노에 방문했을 때 엔쵸비와 함께 다진 마늘, 페페론치노, 이태리 파슬리를 올리브 오일에 담가서 주는데 이것을 “몬탈치노식 페스토”라고 하더군요. 굴을 이 페스토에 넣고 익힌 다음, 한국의 봄 제철 향미를 느낄 수 있도록 다진 달래를 올려 완성하면 됩니다.
파스타의 매력은 무엇인지?
원하는 색을 칠할 수 있는 도화지라고 생각해요. 무궁무진한 변화의 가능성이 있으니, 셰프의 개성과 창의성을 고스란히 담아내기도 하고요. 물론, 잘 삶아진 면의 식감은 그 자체만으로도 만족을 주는 음식이죠.
있을 재의 요리 철학이 궁금합니다.
이탈리안 요리의 핵심은 “재료에 대한 이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있을 재는 이탈리안 요리에 많은 영감을 받았지만, 여기에 국한되지는 않습니다. 여러 나라의 조리법을 두루 사용하되, 이탈리아 요리의 핵심인 “재료를 온전히 이해하고 최상의 맛을 내는 것”을 가장 중심에 두고 있습니다. 제가 요리를 할 때, 주 재료를 먼저 생각한 뒤 우리나라 사람들이 주재료와 먹기 좋아하는 재료를 부재료로 더하는 방식을 주로 사용합니다. 예를 들자면 명란 파스타에는 대파를 곁들이는 것처럼요. 반찬으로 명란젓을 낼 때 다진 대파와 함께 깨를 뿌려 내듯이, 우리가 이미 좋아하는 맛의 조합을 새로운 조리법으로 풀어 보는 것이지요.
있을 재는 제 이름과, 친동생인 이재호 매니저의 이름의 돌림자에요. 두명이 무언가를 새로이 시작한다는 출사표라고 보시면 됩니다. 여전히 외식이 어려워진 코로나 시기이지만, 저희 공간을 찾아 주신 분들에게 흥겨움을 드리고 싶어요. 이 곳에서 열린 마음으로 즐겁게 음식과 와인을 즐기시기를 바랍니다.
있을 재의 멍게 샐러드
멍게는 봄에 제철을 맞는 재료이면서 시원하고 쌉싸름한 맛이 잠들어 있는 입맛을 깨우기에 좋은재료입니다. 오이와 곰피를 피클링해서 올리고, 고추냉이를 넣은 에스푸마를 곁들여 완성합니다.
셰프의 삶에서 가장 어려운 점, 또 좋은 점?
결혼한 요리사의 관점에서 보면, 요리사라는 직업은 가족의 희생을 전제로 한다고 생각해요. 긴 업무 시간에 주말 출근도 일상적이니, 크고 작은 가족 행사에 참여하기 힘들죠. 가족의 도움과 이해, 지지가 없다면 정말 어려운 직업이라고 생각합니다.
한편으로는 저를 포함해 제 주변의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들이 맛있는 음식을 먹게 된다는 점입니다.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은 인생의 가장 행복한 순간이죠. 셰프는 맛있는 요리를 하는 사람이잖아요? 그 요리를, 특별한 사람들을 위해 직접 할 수 있게 된다는 것 자체가 요리를 하는 기쁨입니다.
셰프가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은…
한 기업의 레스토랑 브랜드에 소속된 셰프의 입장에서는 ‘오리지널리티’, 즉 셰프의 개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편 지금, 있을 재의 오너 셰프의 입장으로는 레스토랑을 원활하게 운영하며 유지하는 경영 능력도 너무나 중요한 덕목이지요. 지난해 코로나로 모든 분이 힘든 시기를 보내셨겠지만, 저 역시 쉽지 않은 한 해를 버텼습니다. 스스로 컨트롤 할 수 없는 일로 영업이 롤러코스터를 타다보니 심적으로 매우 힘들었어요. 하지만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함께 일하는 동료들을 다독이고, 꾸준히 버티며 일을 해 나가는 것이 셰프가 해야 할 일입니다. 그만큼 레스토랑 경영 능력이 있어야 여러 사람들과 함께 일을 지속할 수 있습니다.
셰프를 꿈꾸는 젊은 학생들, 초보 요리사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하려고 마음을 먹었다면 제대로 해보라고 하고 싶어요.
무슨 일이든, 본인이 이 일을 하고 싶다고 마음을 먹었다면 그 일에 전념하고 매진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열정을 가지고 해보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계속 배우고 더 많은 것을 흡수하며 성장해야 할 시기에, 자신의 노력과 시간적인 투입에 한계를 두는 것은 현명하지 못한 일입니다. 선을 긋지 말고, 모든 것을 쏟아 보는 시간은 성장으로 보답하리라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