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1 minute 2021년 9월 23일

추억을 만드는 미식의 에피소드: 스와니예 이준 셰프

미쉐린 1 스타 스와니예의 이준 셰프는 한 끼의 식사가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드는 공연과 같다고 이야기합니다.

스와니예는 스토리텔링 기반의 “현대 서울 음식”을 선보이며 미쉐린 가이드 서울 2017부터 5년째 1 스타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준 셰프가 미국에서 요리 유학을 하던 시절, 스와니예(Soigne)는 ‘잘 만들어진’, ‘완성도가 높은’이라는 뜻을 가진 프랑스어로 그의 별명이었습니다. 자신의 요리에 대한 열정이 담긴 이름을 내건 이 레스토랑을 무대로, 이준 셰프는 에피소드를 담은 음식을 멋진 공연처럼 선보입니다. 그를 만나 한 끼의 식사가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 수 있다는 그의 요리 철학과 스와니예의 키워드, ‘에피소드’에 관해 물었습니다.

어떻게 요리에 대한 열정을 가지게 되셨나요?
초등학생 시절부터 미술과 기계 조립을 무척이나 좋아했어요. 엄마를 도와드리는 것도 제게 즐거운 기억이었는데,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요리에도 관심이 가게 되었고요. 제가 중학생 무렵, 진로 고민을 하며 앞으로 쭉 할 수 있는 일 중 가장 좋아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을 하다가 요리사가 되어야겠다고 마음을 먹게 되었습니다.

셰프님의 롤 모델은 누구이신가요? 영향을 받은 특별한 인물이 있나요?
기본적으론 부모님께 요리의 영향을 받았지만 직업적으로의 롤 모델은 토마스 켈러 셰프입니다. 그가 가진 개척자 정신과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철학을 전달하는 모습, 그리고 무엇보다 기존에 다른 셰프들이 가지 않은 길을 만들며 관습을 버리고 요식업계에 새로운 표준을 만들어가는 행보가 늘 감명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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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식재료는 무엇인지, 어떻게 활용하는지?
한 가지를 꼽기는 어렵고, 대파나 마늘 같은 향신채를 좋아합니다. 한국 음식의 바탕을 깔아주는 재료이면서도 자신만의 개성이 독특해 어떻게 조리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결과를 낼 수 있죠. 좋은 조연이 될 수도 있고, 때론 주연이 될 수도 있는 향신채소 특유의 변화무쌍함을 좋아합니다. 대파는 콩피처럼 저온에 조리해 본연의 단맛을 끌어올리는 조리법을 좋아하고, 마늘은 구운 뒤 부드러운 퓨레로 만들어 즐겨 사용합니다. 저희 레스토랑에서 초기에 선보였던 메뉴 중, “마스카포네 치즈를 곁들인 대파와 조개젓”이라는 요리가 있어요. 그 이후로도 같은 구성을 유지하며 다양한 변주를 주어 활용했죠.

어디에서 요리에 대한 영감을 받나요?
저는 요리와 관련이 없더라도, 주변의 모든 요소에서 영감을 받아요. 시각적인 이미지에 착안해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하고, 음식을 먹거나 냄새를 맡는 등 다양한 자극이 들어올 때 새로운 요리에 대한 영감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보통은 특정한 ‘재료’나 ‘느낌’처럼, 한 가지 키워드로 시작해 생각의 가지를 뻗어가는 방식으로 영감을 구체화해요.

스와니예가 추구하는 요리 철학
미국에서 토마스 켈러 셰프에게 요리를 배우며 경험을 쌓을 때, 매일 메뉴를 바꾸는 셰프의 모습이 가장 인상깊었어요. 레스토랑을 여러 번 방문하는 손님도 매번 조금씩 다른 식사를 즐길 수 있으니, 각각의 식사가 고유한 추억과 함께 그리움이 쌓여 더 맛있게 기억될 수 있었죠. 이것을 보며 기억에 남는 식사는 무엇일까 깊게 고민했어요.

저는 음식이 추억을 불러일으키기도, 새로운 추억을 만들기도 한다고 생각해요. 비즈니스 미팅이나 상견례처럼 목적이 있는 식사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미식의 영역에서 음식은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는 매개체에요. 손님이 동반자와 식사하는 순간은 물론, 이 과정을 만드는 레스토랑 직원에 이르기까지 모든 요소가 ‘추억’으로 녹아들죠.

스와니예에서의 식사가 하나의 공연처럼 기억되기를 바랍니다. 스토리와 기승전결이 있는 공연처럼, 저희가 심혈을 기울여 고민해 만든 음식과 여기에 담은 이야기를 느끼며 제작자, 관객이 함께 모이는 공간이 되는 것이죠. 단순한 식사를 넘어, 추억할 수 있는 경험이 되었으면 합니다.

음식에 ‘에피소드’를 어떻게 담아내나요?
저는 ‘이야기가 담긴 음식’에 착안해, 매번 달라지는 독특한 ‘에피소드’라는 컨셉을 잡았어요. 초반에는 전체 음식을 하나의 이야기로 풀어냈다면 요즘에는 음식 각각에 이야기를 담아 에피소드를 풀어내는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각각의 에피소드를 개발할 때, 이야기의 전달성과 함께 음식 고유의 개성을 가장 중요하게 봅니다. 지금까지 가장 애정이 가는 에피소드는 고조리서 에피소드와 서양미술사 에피소드입니다. 두가지 모두 준비 과정에서 수많은 자료를 공부하며, 과거의 문화를 어떻게 현대적으로 해석할지 깊이 고민했어요. 물론 모든 분들을 완벽히 만족시킬 수는 없지만, 이 의도와 이야기가 잘 전달되어 깊은 감동을 받았다는 고객이 가장 많았던 에피소드라 기억에 남습니다.

저희 레스토랑은 에피소드가 바뀔 때마다 정기적으로 방문해주시는 분들이 많으셔요. 지난 8년간의 스와니예의 여정을 공유하며, 저희의 성장과 손님의 성장을 서로 응원해주는 경험을 할 수 있었죠. 10살 때 부모님과 처음 방문했던 꼬마 여자 손님은 이제 어느덧 유학생이 되었는데, 타지에서도 스와니예의 음식 그리워한다고 이야기해 주신 것이 마음에 남습니다.

스와니예의 시그니처 요리: 서래달팽이

트러플 계란 커스터드 위에 대파 오일과 국내산 달팽이, 그리고 볶은 시금치가 올라간 따뜻한 에피타이저입니다. 이 요리는 스와니예 오픈 준비를 하면서 가장 먼저 개발했던 메뉴이자, “현대 서울 음식”의 정수가 담겨 있죠.

이 요리는 한국 계란찜에서 느껴지는 편안함에 트러플과 달팽이라는 새로운 식재료를 조합해 동양적이면서도 서양 요리의 느낌을 융합했어요. 그래서 누구나 자기의 음식 문화권 안에서의 익숙함을 느낄 수 있으면서도 새로움을 발견할 수 있어요. 다양함이 이질적이지 않게 어우러지며 익숙함과 새로움, 동양과 서양 음식의 균형을 고려해 만든 스와니예의 시그니처 요리입니다.

셰프의 삶에서 가장 어려운 점, 또 좋은 점
가장 어려운 점은 아무래도 예측이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이에요. 손님은 손님대로 매번 새롭고, 재료의 수급이나 요리와 관련 없는 주변의 상황들까지 모든 변수가 매일의 서비스에 영향을 미칩니다. 또한 항상 새로운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감과 업계 내의 경쟁까지 어느 것 하나 편한 마음으로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이 어려운 점이에요.

하지만 이러한 이유가 원동력이 되기도 합니다. 항상 새로운 것을 창작해내고, 규율에 얽매이지 않은 채 어린 시절부터 하고싶던 일을 한다는 것은 좋은 점이에요. 전 세계 어디를 가도 요리로 소통할 수 있는 것도 좋죠. 요리는 특정 나라나 문화에 귀속되지 않는 공통적인 언어라고 생각해요.


이준 셰프에게 미쉐린 스타의 의미는…
미쉐린 스타를 받는다는 것은 셰프가 얻을 수 최고의 명예죠. 그간의 노력에 대한 인정이자, 저를 다른 사람에게 소개할 때 하나의 지표가 되는 부분이라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동시에 그로 인해 생기는 성장에 대한 압박도 상당해요. 이 부분은 미래에 대한 채찍질이라고 생각합니다.


셰프를 꿈꾸는 젊은 학생들, 초보 요리사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참 어려운 말이지만… 주변의 시선과 사람들의 편견, 인맥, 경제, 정치 등 모든 것을 따지지 말고 본인이 하고싶은 요리가 무엇인지, 그것에 얼마나 열정을 쏟을 수 있을 것인지를 고민해보면 좋겠습니다. 셰프가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은 나를 믿고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인내심과 자신이 믿는 철학을 우직하게 밀고 나갈 수 있는 끈기라고 생각해요.

이 직업은 처음부터 끝까지 상대방을 만족시키는 것이 목적인 일이지만, 자신에 대한 만족 없이 상대방을 만족시킬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트렌드에 따라 당장 더 판매가 잘 될 만한 음식처럼, 상업적인 관점에서는 따질 부분이 많겠지만 여기에 과도하게 몰입하면 오랜 기간 좋은 셰프로 활동할 수 없어요. 따라서 자신이 진정으로 즐길 수 있고, 굳건하게 중심을 지킬 수 있는 요리를 해야 자신의 이름으로 하나의 상징이 될 수 있는 레스토랑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래야 함께 일하는 동료들도 공감하며 같은 길을 걸을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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