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쉐린 가이드는 2024년 서울|부산 가이드를 통해, 업계에 귀감이 되는 멘토 셰프의 열정과 노력을 알리기 위해 마련된 ‘미쉐린 멘토 셰프 어워드’의 네 번째 수상자를 공개했습니다. 반세기가 넘는 세월을 훌륭한 요리에 헌신하며, 수많은 후배를 양성해 온 중화요리의 대가 후덕죽 셰프가 선정됐습니다.
미쉐린 멘토 셰프 어워드의 공식 후원사 블랑팡 코리아의 최원호 브랜드 매니저는 이번 후덕죽 셰프의 수상에 축사를 전했습니다. “블랑팡과 미쉐린 가이드는 공통된 목표를 공유합니다. 1735년에 설립되어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는 블랑팡 역시 Art of living을 중요한 모토로 삼아, 미쉐린 가이드와 동일하게 장인 정신과 역사에 대한 존중, 완벽함, 창의성, 그리고 열정을 중시합니다. 미쉐린 가이드의 글로벌 파트너인 블랑팡은 앞으로의 행보가 더욱 기대되는 후덕죽 멘토 셰프님께 축하를 전합니다.”
후 셰프의 중국요리를 설명할 때, 1994년 한국을 방문한 장쩌민 당시 주석의 “중국 본토보다 맛있는 요리”라는 찬사를 빼놓기 힘듭니다. 상징적인 인물의 생생한 감탄은 단순히 에피소드에 그치지 않고 후 셰프의 요리를 맛본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으며 여전히 이야기되고 있지요. 한국을 방문한 중국 VIP 국빈들부터 특별한 맛을 찾는 다양한 미식가와 고객에 이르기까지, 수십 년간 요리 세계를 선보여 온 후덕죽 셰프는 2022년부터 장충동 앰배서더 서울 풀만 호텔의 ‘호빈’ 중식당을 이끌고 있습니다. 올해 새로운 미쉐린 1스타 레스토랑으로 선정되기도 한 호빈에서 후덕죽 셰프를 만나, 2024 미쉐린 멘토 셰프 수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미쉐린 멘토 셰프 어워드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세계적인 미식 평가서 미쉐린 가이드에서 멘토 셰프 어워드를 수상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개인적인 성취를 넘어 신념을 가지고 전통 중식 문화 계승하며 더 나은 스스로가 되기 위해서 노력했던 시간들의 값진 결과물이라고 생각합니다.지금까지의 요리 인생을 돌이키면 지역의 요리 전통과 문화를 존중해 그 유산을 이어가면서도 고유한 맛을 창출해 가려는 노력의 시간이었습니다. 사실 전통을 이으면서 독창적인 맛을 만드는 것이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니에요. 최상의 맛을 위한 노력과 함께 고객의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혼자서 이룰 수 있는 일도 아니지요. 선후배 셰프들이 한마음으로 지속적으로 발전해야 이룰 수 있는 일입니다. 쉽지 않지만, 이번 수상이 다른 젊은 셰프들에게도 장벽을 깨고 꿈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용기를 심어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래전 이야기이겠지만, 처음 요리를 시작하던 시절이 궁금합니다.
1960년대 주방에 들어갔네요. 아버지 친구분이 추천한 호텔의 그릴 레스토랑에서 일을 배웠지요. 막연히 중식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소공동 반도호텔의 중식당 ‘용궁’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대만에서 셰프를 영입해 쓰촨요리(사천요리) 위주로 선보이는 당시 최고의 식당이었기에 두 번이나 찾아가서 무급으로라도 일을 배우고 싶다고 했는데 거절당했어요. 세 번째 찾아가니 저의 근성을 보았는지 면접도 보고, 여러 가지 테스트를 거쳐 간신히 허락받았지요. 그때가 스물한 살이었네요. 홍콩 무협영화 보면 무언가 배우고 싶어서 사부를 찾아가 제자로 삼아달라 해도 단번에 되는 경우는 없잖아요? 심부름시키고, 잘 못하면 맞기도 하고…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이제 사람이 되었구나 싶을 때 하나씩 가르쳐 주죠. 당시 호텔 식당도 마찬가지였다고 보면 돼요. 석 달은 정말 월급 하나도 안 받고 바닥 청소부터 온갖 심부름에 셰프 옷 빨래까지 도맡아 했어요. 지금도 그렇지만 누가 자기 기술을 그냥 가르쳐 주나요? 그런 과정을 거쳐야 믿음을 얻고, 하나씩 알려주는 거죠. 석 달을 잘 버텼더니 4개월째 접어들면서 용돈 정도의 급여를 주더군요. 그렇게 점차 중국요리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지금껏 어떤 멘토를 만나셨나요?
초년 시절 막연히 누님이 계신 일본에 가서 언어도 배우고 일도 하며 지냈는데, 중식당 몇 곳을 가보니 한국에서 전혀 못 보던 음식이 나오더군요. 그때 일본은 광동 요리를 하는 중식당이 많았어요. 누님의 도움으로 일본 중식당에 들어가 또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했어요. 한국에서 요리했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고 바닥 쓸고 청소하면서 기술도 하나씩 배웠어요.그 당시 중국 본토 鄺(쾅) 셰프님에게서 요리 기술은 물론 태도와 마음가짐도 배웠습니다. 광동 요리의 베이스부터 재료 손질, 재료 선택, 조리법, 노하우까지 지금 제 요리의 초석을 만들어 주셨고, 주방을 벗어났을 때에도 흐트러지지 않는 요리사의 마음가짐을 얻었어요. 3년을 보내고 서울에 돌아오니 1977년이었어요. 일본어와 요리를 배운 덕에, 당시 오쿠라 호텔과 협업하며 오픈하던 서울 신라호텔에 채용될 수 있었네요.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만나는 분은, 처음 북경 조옥대 국빈관 방문 때 만났던 후 총 조리장님입니다. ‘후’씨 성을 가진 사람을 만나기도 어려운데, 같은 성씨에 직업의 공통점을 바탕으로 더 친근하게 가까워졌어요. 과거 중국 황실의 조리법과 음식의 역사, 전통 등 많은 이야기와 조언을 들으며 현재의 중식 요리의 맛과 기술에 도움을 받았습니다. 아직도 중국에 가면 만나 뵙고 있어요.
후덕죽 셰프의 요리 스타일은…
광동 요리는 신선한 재료의 맛을 그대로 살리는 것이 중요해요. 전국 각지의 식재료를 주로 증기로 쪄서 조리합니다. 그리고 중국요리는 조미료 맛이라는 편견이 싫어, 자연 재료로 특유의 감칠맛을 내기 위해 끊임없이 연구했어요. 여러 버섯과 멸치, 조갯살 등 건어물을 베이스로 비법을 만들어 화학조미료 없이도 음식을 완성할 수 있었죠. 제 요리 철학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의식동원(醫食同源)입니다. 약과 음식은 근원이 같다, 평상시 먹는 음식으로 건강을 유지한다는 의미로 그건 호빈에서도 여전히 지키고 있는 규칙이고요.반세기 이상 한 직업에 헌신할 수 있던 원동력은…
명예를 걸고 맛있는 요리를 대접하겠다는 심정입니다. 그 덕일까, 수십 년 된 단골들이 많아요. 그분들이 주방에서 50년 넘게 일하는 저를 보면서 힘이 된다고 하실 때 참 보람을 느꼈습니다. 여기에 보답하는 음식을 내겠다는 각오를 늘 새롭게 합니다.지금의 호빈은 제 마지막 무대라는 마음으로 더 신중하게 메뉴를 준비합니다. 한식, 양식… 다른 분야도 두루 접하며 항상 머릿속에 새로운 방법과 조화로움을 생각하지요. 아내와 백화점에 외출해도 집사람이 다른 층에 쇼핑하러 가면 전 식품 매장으로 갑니다. 시중에 어떤 재료가 나왔는지, 사람들이 무엇에 관심을 갖는지 현장에서 보며 배웁니다.
지금도 늘 주방에 출근하시기로 유명합니다. 직접 요리하는 것에 어떤 의미를 두고 계신가요?
지난 세월 변함없이 주방을 지켰습니다. 먹는 사람에게는 그저 먹는 일이지만 위험한 도구, 뜨거운 불을 다루는 요리사로의 삶은 생각보다 녹록지 않습니다. 그래도 제게 요리는 숨 쉬듯 자연스러운 일상이고, 여전히 요리하는 순간이 행복하다고 느껴집니다. 셀 수 없이 다양한 재료를 다채롭게 변주할 수 있다는 것은 큰 재미죠.요리의 세계는 무궁무진합니다. 아무리 일해도 처음 접하는 식재료를 만나기도 합니다. 재료의 역사와 유래를 공부하며 새로운 요리를 창작하는 희열, 제 요리를 먹는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한다는 보람… 요리사가 가질 수 있는 특권입니다.
출근하면 예약 상황을 체크하면서 하루를 시작하고, 오픈 시간 10분 전에는 모든 요리사들과 함께 전체 미팅을 진행하면 어제 방문했던 손님의 피드백이나 오늘 방문할 손님의 특이 사항 등을 체크하면서 마음의 준비를 합니다. 그리고 서비스가 시작되면 손님에게 제공되는 음식 하나하나 맛을 직접 체크합니다. 요리를 오래 하다 보니 저를 보고 찾아오는 단골손님이 많은 편인데, 맛을 체크하는 것은 손님과의 약속과 다를 바 없습니다. 정성을 들이는 것…. 그것이 직접 주방에서 일하는 가장 큰 이유지요.
셰프가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인가요?
셰프는 정년이 없습니다. 개인의 노력과 의지만 있으면 오래 일할 수 있지만, 많은 역량을 갖추고 온전히 주방을 책임져야 하는 어려운 자리입니다. 요리에 대한 전문성, 창의성, 혁신, 리더십, 팀워크, 스트레스 관리, 책임감, 지속적인 학습과 성장, 그리고 자신감도 정말 중요합니다. 대단한 일을 해서 대단한 게 아니라 다양한 가치를 지속하며 한자리를 오래 지킬 줄 알아야 합니다.지금까지 후배 요리사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후배가 있다면…
지금 한국 조리박물관의 최수근 원장님이 가장 기억에 남는 후배입니다. 최 원장님은 제 예전 직장의 메인 주방에서 근무했는데, 국빈이 방문하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프로 정신으로 식사를 준비하고 완벽하게 행사를 마무리하는 멋진 셰프였죠. 지금은 경희대 호텔관광대학 조리외식경영학과의 교수로 재직하며 후배 양성에 힘쓰고, 박물관을 통해 요리의 전통과 유산을 다음 세대에 전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이런 모습을 보며 존경스럽고, 같은 조리사로서 멋있다는 생각이 듭니다.후배 요리사들에게 해 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늘, 일을 배우기에 앞서 인간 됨됨이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마음이 깨끗하지 않으면 제대로 된 음식을 손님에게 전할 수 없습니다.그리고 제게도 50년이 지난 지금까지 생생하게 기억하는 뼈아픈 실수도 있어요. 허드렛일만 하던 막내 시절, 선배들이 없는 사이에 몰래 탕수육을 만들었죠. 선배를 도우려던 마음 반, ‘이제 나도 탕수육쯤은 할 수 있다’는 자만심 반으로 요리했는데… 착각해 설탕 대신 소금을 넣어 완전히 요리를 망쳤어요. 주방장에게 찍혀 당장 쫒겨날 뻔했지만 주변에서 겨우 말려 일을 계속할 수 있었는데, 지금까지도 그 일이 교훈으로 남았습니다. 모든 일에는 단계가 있고, 서두르지 말고 차근차근 배우며 순서를 지켜야 한다는 것, 대충대충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