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1 minute 2022년 9월 25일

자연의 리듬과 흐름을 담다, 셰프 알랭 파사르

채소를 바라보는 관점에 혁신을 제공한 위대한 셰프로 손꼽히는 알랭 파사르가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한식의 아름다움부터 그의 요리 철학까지, 알랭 파사르 셰프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한국에 방문한 것은 처음인가요?
몇 년 전, 지인의 일 때문에 잠깐 들른 적이 있기는 했지만 정식으로 한국에 온 것은 처음이나 다름없죠. 저는 이곳에 오자마자 바로 사랑에 빠졌어요. 한국 사람들은 누구보다 음식을 사랑하고, 호기심이 아주 많아요. 요리라는 하나의 주제로 이곳의 사람들과 금세 가까워졌죠. 오래 알고 지낸 친구처럼 풍미와 맛, 미식의 아름다움, 계절에 관해서 오래도록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행복합니다.

한국에서 요리를 하며 무엇이 인상깊으셨나요?
제 요리의 주인공은 채소예요. 토마토, 당근, 가지 같은 것들이죠. 이런 재료를 한국에서 구하고 사용해 보며, 프랑스의 것과는 또 다른 특징과 매력이 있다는 점이 참 흥미로웠어요. 품질도 아주 좋았고요. 이곳의 농부가 기른 채소를 통해 또 다른 요리를 만들 수 있어서 즐거웠습니다.

한국의 채소로 만든 프로방스 풍의 ‘코트다쥐르 라따뚜이’ ⓒLOUIS VUITTON
한국의 채소로 만든 프로방스 풍의 ‘코트다쥐르 라따뚜이’ ⓒLOUIS VUITTON

한국 요리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한식은 채소를 이용한 요리가 다양하고, 프랑스와는 상당히 달라 많은 영감을 줍니다. 한국 퀴진의 창의성은 채식에 있다고 생각해요. 한식은 발효하고 보존하는 방법도 많이 발전시키며 독특한 요리 문화를 만들어 왔습니다. 매일 아침 농장에서 갓 태어난(수확한) 채소들을 식탁에 올리는 제 요리와는 다른 점이죠. 그래서 더 흥미롭고, 즐거움을 줍니다. 다음번에는 사찰에 방문해서 한국의 사찰 음식도 경험해 보고 싶어요.

어떤 요리를 추구하고 있나요?
제 삶은 굉장히 행운입니다. 저는 제 일에 식지 않는 열정이 있죠. 계절과 함께 손을 잡고, 자연을 동반자 삼아 일을 합니다. 아르페쥬에서 쓰는 모든 채소는 저희 농장에서 생산돼요. 농장 세 곳에서 열 명의 농부가 작물을 가꾸는데, 저도 그곳에서 매일 함께 일하죠. 제 요리 또한 부엌이 아닌 농장에서 시작하고요. 농부와 셰프의 관계는 마리아주, 즉 결혼과 같아요. 아주 놀랍고 대단한 결합이죠. 누구보다 친밀하며 대화를 많이 해야 해요.




"계절은 반복되는 일상의 리듬을 환기시키고, 변화를 만들어냅니다.
매 계절, 제 오감은 새로운 여행지로 초대를 받아요."





알랭 파사르 셰프가 말하는 셰프의 삶은…
제가 하는 일은 예술입니다. 창의성을 기반으로, 온 감정과 감각이 움직이는 일이죠. 요리를 하는 그 순간만큼은 붓질을 하는 화가가 됩니다. 조각을 하기도 하고요. 저는 재료를 굽고, 양념하고, 향을 맡고, 보는 것을 좋아해요. 지글거리는 소리를 듣는 것은 음악을 듣는 것보다 아름답죠. 요리는 오감의 이야기예요. 냄새를 맡고, 만져보는 것, 이 모든 감각이 만들어내는 하모니에요.

계절은 가장 아름다운 것입니다. 요리사에게도, 옷을 만드는 사람에게도요. 저는 1년에 4번 직업을 바꾼다고 늘 말해요. 여름 토마토로 만드는 요리와 겨울 대파로 만드는 요리는 완전히 다르고, 그 일을 하는 제 모습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죠. 계절은 반복되는 일상의 리듬을 환기시키고, 변화를 만들어냅니다. 매 계절, 제 오감은 새로운 여행지로 초대를 받아요. 겨울에 저는 조각가이고, 봄에는 음악가이며, 여름에는 화가이고, 가을에는 춤을 추는 무용수입니다. 다른 직업에서도 이처럼 다채로운 매력을 얻을 수 있을까요? 자연과, 계절과 함께 숨쉬는 요리사에게는 매일이 새로운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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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료를 보며 창의적으로 일하는 영감의 근원은 무엇인가요?
근원에 대해서는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아요. 저는 유년시절에서 그 답을 찾았죠. 아버지는 음악가였고, 어머니는 옷을 만드는 재단사였어요. 할아버지는 조각가였고, 할머니는 요리를 하셨죠. 이 모든 것이 제 창의성과 영감의 근원이며 지금까지 저를 이끄는 등대와도 같아요.

한편, 겨울은 재료가 많지 않아 어렵지 않은가요?
모든 계절은 그 자체로 완성되어 있으며, 독특한 인상을 줍니다. 겨울은 당연히 재료의 폭이 좁지만 대신 요리사의 창의성이 두드러지는 시기에요. 아무래도 뿌리채소를 사용할 일이 많은데요, 단단하게 에너지를 머금은 이 재료들을 다룬다는 것은 ‘글자 그대로’ 조각을 하는 듯, 많은 힘이 들어가는 일입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죠. 사계절과 오감을 이용해 각각의 계절을 보내다 보면, 특별히 겨울에 어려움을 느끼지는 않습니다. 4가지 계절, 5가지 감각… 결국엔 모든 것이 아주 단순한 숫자의 문제입니다. 제가 만약 다음 요리책을 낸다면 벌써 제목은 정해 두었죠. <4, 5>라고요. 사계절과 오감에 관한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 L'ARPÈGE
ⓒ L'ARPÈGE

어떤 음식이 좋은 음식일까요?
요리는 계절을 담아냅니다. 요리하는 사람은 계절의 수호자와 같습니다. 근원적으로 따져 올라가면, 사람이 여름에 토마토를 먹게 된 것은 무더운 여름날 수분과 비타민을 충전하기 위한 욕구에서 출발했습니다. 토마토는 여름의 물과 같은 셈이에요. 하지만 겨울에는 모든 동물이 체온을 올리기 위해 노력하는 시기죠. 너무 추우니까요. 요리사는 따뜻하고, 원기를 북돋는 대파 수프를 만들어냅니다. 이 단순해 보이는 행동이 자연을 존중하는 음식을 추구하는 셰프의 행위입니다.

현대 사회에는 1년 내내 계절감이 없는 요리를 먹고 사는 사람들이 아주 많습니다. 요리만을 놓고 볼 때, 과연 이 음식이 여름에 어울리는지, 가을을 떠올리게 하는지, 이런 미묘한 자연의 뉘앙스(nuance)를 전혀 알 수 없습니다. 우리 몸에는 뉘앙스가 필요합니다. 자연, 계절과 농사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 보면 결국 사람의 건강에 대해 말하게 됩니다. 우리 몸 속 장기들에게 계절의 뉘앙스를 제공하는 활동이 있어야 건강할 수 있습니다. 음악처럼 리듬과 흐름이 있고, 계절과 자연이 몸 안에서도 느껴지는 것이죠. 여름에는 30도가 넘으니 열을 식히기 위해 제철에 맞는 것을 먹고, 추울때는 그라탕처럼 따뜻하고 풍만한 음식을 먹으며 열기를 느껴야 해요. 뛰어난 셰프라면 먹는 사람들의 건강을 늘 생각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책임입니다.

ⓒ L'ARPÈGE
ⓒ L'ARPÈGE

한국에서 다음 세대를 이끄는 셰프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신가요?
자연과 계절을 존중하는 마음을 상기한다면, 이미 충분합니다. 토마토를 보세요. 토마토가 사계절 자라지는 않아요. 우리 주변에서 토마토가 사라지는 시기가 있죠. 토마토가 자라는 데에는 햇살과 열기가 필요해요. 이 단순한 사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토마토의 계절은 최대 3개월입니다. 그 다음에는 다른 작물이 올테죠. 순무와 셀러리악 같은 것들이요. 매 계절, 자연의 소리가 들려주는 것, 품어내는 것들에 관심을 가지고 존중을 하면 분명 ‘더 나은 음식’을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Hero Image by JULIA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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