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피어오르다는 의미의 ‘에빠뉘’의 권지훈 셰프는 섬세하고 아름다운 프렌치 요리를 그만의 독창적인 스타일로 세련되고 단아하게 선보이고 있습니다. 프랑스를 비롯해 유수의 레스토랑에서 경력을 쌓아 온 권 셰프는 에빠뉘에서 클래식한 요리를 기반으로 심플하지만 디테일이 살아있는 음식, 단아함이 느껴지는 요리를 접시 위에 올리고 있습니다.
권지훈 셰프를 만나 그가 추구하는 요리와 지금까지의 요리 여정, 에빠뉘의 시그니처 요리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에빠뉘가 추구하는 요리는 무엇인가요?
에빠뉘는 “맛있는 프렌치”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요리를 마주했을 때, 복잡한 설명과 이야기를 곁들이는 것보다는 순수하게 접시에 담겨 있는 음식으로 소통하고자 합니다. 잘 만들어진 음식은 손님의 눈과 입안에서 말, 설명 없이도 만든이가 어떤 마음과 자세로 만들었는지 느낄 수 있다고 믿습니다.
에빠뉘 레스토랑의 의미와 이 공간에서 고객에게 어떤 경험을 주고싶은지?
에빠뉘는 프랑스어로 꽃이 완연히 피었다는 의미, 즉 ‘만개’를 뜻합니다. 이 곳을 방문한 분들이 저희 요리를 즐기며 행복이 피어오르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습니다. 코로나로 지친 시기에 짧은 시간이나마 이곳에서 아늑함을 느끼며 힐링이 되셨으면 합니다.
에빠뉘의 시그니처: 랍스터 오픈 라비올리
감칠맛과 쫄깃함이 가득한 랍스터에 은은한 바닐라의 달콤한 향과 샴페인의 산미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부드러운 거품 소스를 담아낸 요리입니다. 쌀로 만든 라비올리 반죽과 방울 양배추를 곁들여 다채로운 식감이 매력적입니다. 랍스터 나비 장식으로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더해 보는 즐거움까지 함께 느낄 수 있습니다.
어떻게 요리에 대한 열정을 가지게 되셨나요?
어린 시절부터 요리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계란이나 감자처럼 집에 늘 있던 식재료를 프라이팬에 굽고, 케쳡을 뿌려 친구들과 나눠먹는 것이 재미있었죠. 잡지에 나온 요리 사진들을 스크랩하기도 했으니, 요리를 아주 어린 시절부터 좋아했네요. 하지만 요리를 직업으로 삼겠다고 계속 준비했던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성인이 되어 다른 분야에서 직장 생활을 하던 중, 여전히 요리에 갈증을 느끼고 취미로 요리 학원을 다니다가 더 욕심이 생기게 된 경우죠.
학원에 다니며 여러가지 요리 자격증을 따며 공부하다가, 우연한 계기로 프랑스 요리학교 투어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 때, 현장에서 셰프가 건네 준 음식 한 점을 입안에 넣은 순간 큰 충격을 받았죠. “와 세상에 이런 맛이 있구나.” 그 순간이 지금의 저를 만든 것 같습니다.
생에 처음 맛본 그 프랑스 음식은 까넬로니 오 에삐나(Cannelloni aux Épinards) 였습니다. 부드러운 베샤멜 소스에 꼬릿한 그뤼에르 치즈, 탄력 있는 반죽 안에 상큼하고 감칠맛 가득한 토마토와 잠봉, 시금치의 조화가 그야말로 환상이었어요. 제가 모르던 무한한 세계가 열린 것 같았습니다. 그 이후 학교를 등록해 공부하고, 본격적으로 한국 뿐 아니라 프랑스의 레스토랑에서도 일을 배웠습니다.
셰프님에게 큰 영향을 준 인물이 있나요?
성데헝스(Alain Senderens) 레스토랑 근무 당시 계셨던 제롬 방뗄(Jérôme Banctel) 셰프가 제 롤 모델입니다. 클래식 프렌치에 단단한 기반을 두고, 세련되고 모던하게 자신의 색으로 요리를 풀어내는 모습이 제게 큰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한 접시 안에 담기는 모든 식재료에, 마땅한 이유가 있다는 것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장식이나 화려함을 위해서 쓸데없이 첨가하지 않고, 최소한의 재료로 각각이 명확한 역할을 해 하나의 맛을 만들어 낸다는 점은 아직도 제게 이정표가 됩니다. 제롬 방뗄 셰프는 저의 요리 인생에 있어 눈과 머리를 트이게 해주셨고, 지금의 저를 있게 해주신 은인과 같은 분이십니다.
가장 좋아하는 식재료는 무엇인지, 어떻게 활용하는지?’
좋아하는 식재료가 너무 많아 하나를 꼽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브릭 페이스트리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밀가루와 소금, 물로 만든 단조로운 맛의 반죽이지만, 다방면에서 주재료를 돋보이게 서브해주는 아주 훌륭한 재료죠. 바삭한 식감을 더하고, 함께 하는 식재료의 맛을 해치지 않으며 균형을 이뤄 내는 능력으로는 단연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브릭 페이스트리는 여러 장을 겹쳐 구워 식전 입맛을 돋우는 아뮤즈 부쉬나 디저트의 타르트와 튀일 등으로 사용할 수도 있고, 잘게 잘라 튀김 반죽에 붙이거나 혹은 말아 튀겨 메인 요리에까지 활용하는 등 다방면으로 다채롭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지금 에빠뉘의 메뉴 중 푸와그라 샌드위치와 허브 크루스티앙 연어 요리에도 브릭 페이스트리를 사용하고 있죠.
셰프의 삶에서 가장 어려운 점, 또 좋은 점?
개인적인 시간, 또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부족하다는 점이 가장 어렵죠. 셰프로 레스토랑을 운영하다 보면 자는 시간 외에는 전부 요리와 레스토랑 생각에 빠져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요. 머릿 속엔 항상 “더 맛있는 음식이 없을까? 더 종은 조리법이 없을까? 새로운 식재료는 없을까?“ 고민하고, 가장 신선한 수산물을 위해 새벽같이 수산시장에 가고, 휴일엔 유통이 어려운 특수 야채를 직접 재배하러 농장에 갑니다. 장점이자, 또 아쉬운 점이기도 하죠.
많은 시간과 열정을 쏟는 이 일이 고되긴 하지만, 찾아 나서지 않으면 발견하기 힘든 것들을 만나게 되는 즐거움이 있고, 다양한 식재료를 조합해 새로운 맛과 멋을 만드는 풍요로운 직업이라는 점이 매력적입니다.
셰프를 꿈꾸는 젊은 학생들, 초보 요리사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열정을 가지고 이 과정을 즐기세요!
셰프라는 직업의 특성상, 투자해야 하는 시간이 매우 길어요. 누구도 단시간에 유능한 셰프가 갑자기 될 수는 없습니다. 맛과 식재료, 요리 기술, 레스토랑 운영의 방법까지 배우고 경험해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아 항상 공부해도 부족합니다. 당장 하루 12시간이 넘는 업무시간도 매우 고되죠.
즐기지 않으면 쉽게 지칩니다. 쉽지 않은 길이지만, 이 모든 과정을 긍정적으로 즐기며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정진한다면 언젠가는 본인의 아이디어를 맘껏 담아낸 음식을 펼쳐 희열과 보람을 느끼는 훌륭한 셰프가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열정적인 끈기가 없다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힘든 시기를 보낸 다이닝 업계에게 전하는 메시지
지난 해 코로나바이러스의 유행으로 저 역시 힘들고 매우 어려운 시기를 보냈습니다. 레스토랑을 오픈하고 1년 남짓 지났을 무렵 코로나가 확산되며 이슈가 되었죠. 이제 조금씩 안정을 찾아간다고 생각했는데, 사회적 거리두기 정책이 시행되며 손님도 줄어들었습니다. 저 하나의 노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라, 마음은 더 힘들었습니다.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 16년 이상 키친에서 고되고 바쁘게 살았으니 조금 쉬어가라는 뜻이라고 생각하며 메뉴를 더 많이 개발하고, 재충전의 시간도 보냈죠. 이 힘든 시간을 겪으면서도 버텨 온 많은 셰프와 레스토랑의 요리를 노쇼(no-show) 없이 방역수칙을 지키며 많이 즐겨주시면 좋겠습니다.
앞으로는 많은 고객들을 수용하는 대규모 레스토랑 보다 작지만 본인들만의 색깔과 프라이빗한 공간을 강조하는 소규모 레스토랑들이 많이 생겨날 것 같아요. 외식 문화의 수준 향상과 고객들의 다양한 선택권 측면에서는 매우 바람직하겠지만, 셰프들은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더더욱 노력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저희 에빠뉘에서도 이 위기를 겪어내며 보다 단단하고, 저희만의 색이 짙은 레스토랑으로 가꾸어 나가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