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초 파크 하얏트 서울의 총 주방장으로 영입된 페데리코 하인즈먼 (Federico Heinzmann). 경력 20년 차 셰프인 그는 2012년부터 2년간 파크 하얏트 서울의 메인 레스토랑 ‘코너스톤(Cornerstone)’을 총괄했고, 이후 파크 하얏트 도쿄의 시그니처 레스토랑 ‘뉴욕 그릴 앤 바(New York Grill & Bar)’를 3년간 진두지휘했다.
아르헨티나 출신인 하인즈먼은 대학에서 식음료 마케팅을 전공한 후 소믈리에와 셰프 자격을 취득했다. 1998년 아르헨티나의 작은 이탤리언 레스토랑에서 요리를 시작한 그는 스페인의 미쉐린 3 스타 레스토랑 ‘마틴 베라사테기(Martin Berazategui)’를 포함한 유수의 레스토랑에서 이탤리언, 프렌치, 스패니시 요리를 두루 섭렵하며 셰프로서의 역량을 키웠다.
2006년 파크 하얏트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시작으로 하얏트 그룹의 일원이 된 그는 2012년 파크 하얏트 서울의 메인 레스토랑인 코너스톤의 담당 셰프로서 다국적 스타일의 모던 퀴진을 선보여 왔다. 2017년 2월, 파크 하얏트 서울의 총 주방장으로 부임한 그는 코너스톤, 더 라운지(The Lounge), 더 팀버 하우스(The Timber House) 등 호텔 레스토랑과 룸서비스, 연회 등 호텔의 모든 식음료 서비스를 총괄하고 있다.
한국을 제2의 고향이라고 부를 만큼 한국에 대해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는 그는 지금 한식 공부에 푹 빠져 있다. 사찰음식 명장 선재 스님의 지도하에 발효 장류와 절임류 같은 저장 음식부터 제철 식재료의 온전한 맛을 담은 사찰음식까지 두루 섭렵 중인 하인즈먼은 쉬는 날이면 지역별 제철 식재료를 찾아 팔도강산을 누비고 다닌다. 조리법뿐만 아니라 한식의 역사에 대해서도 상당한 관심을 갖고 있는 그는 농부, 어부, 목축업자 등 지역 생산자들과 끊임없이 소통하며 한식에 대한 통찰력을 키워가고 있다.
왕성한 호기심과 신선한 시각으로 고정관념과 관습에 끊임없이 도전장을 내미는 그는 본인이 이끄는 셰프들에게 늘 질문한다. 정석이라 하더라도 개선의 여지는 없는 건지. 그것이 최선인지.
하인즈먼은 한식 문화를 발견되지 않은 다이아몬드 광산에 비유한다. 지금까지 세계 무대에 소개된 한식은 빙산의 일각이었다고. 외국인 셰프로서 K푸드 세계화에 기여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히는 하인즈먼의 표정에서 한식에 대한 무한한 애정이 느껴졌다.
한국인의 밥상에서 빠질 수 없는 게 발효 음식인데요, 최근 몇 년 사이 발효 음식이 세계적인 푸드 트렌드로 떠올랐어요. 외국인 셰프들도 너 나 할 것 없이 김치를 담그는 것 같아요.
발효는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순간에도 늘 일어나고 있어요. 심지어 우리 몸 안에서도요. 발효는 반짝 트렌드가 아니에요. 김치, 막걸리, 치즈, 와인, 맥주, 식초, 빵, 요구르트 등 발효 음식은 수천 년 동안 인간의 역사와 함께 해왔죠.
제 직업은 셰프에요. 셰프인 이상 매일 죽음과 직면해야 해요. 어느 날 주방을 둘러보는데 닭, 소, 돼지, 물고기 – 사방에 죽은 동물이 널려있었어요. 순간 같은 생명체로서 너무 부끄러웠어요. 제가 그때까지 알았던 음식, 삶과 죽음에 대해 되돌아보게 된 순간이었죠. 그러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이 중에서 그나마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재료는 없을까? 있었어요. 신선한 채소! 물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지만 살아있는 재료잖아요. 요구르트나 치즈 같은 발효 식품도 마찬가지고요.
발효 음식에 빠진 계기가 있었나요?
발효란 이차원적인 것을 삼차원적인 것으로 변형시키는 것과 비슷한 것 같아요. 저는 셰프이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제 요리를 더 훌륭하게 만들 수 있을까에 대해 늘 고민해요. 음식의 식감, 색감 그리고 맛에 대해서요. 그날 이후로 저는 또 한 가지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어요. 어떻게 하면 살아있는 식재료의 에너지를 최대한 오래 보존할 수 있을까?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채소 다듬기를 최대한 마지막 순간까지 미뤄요.
제가 발효 공부를 하기 시작했던 이유는 건강하기 위해서에요. 건강함이란 에너지의 밸런스를 유지하는 거라고 생각하고요. 많은 사람들이 이 부분에 대해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거나 귀찮다는 이유로 무시해버려요. 하지만 저는 많은 사람들을 위해 요리하는 직업을 갖고 있기 때문에 무시할 수가 없더라고요.
발효는 한식 문화에만 국한된 게 아니에요. 그래도 한국 발효 음식만의 특징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옹기요. 한국인들은 수천 년 동안 옹기 안에 음식을 저장하거나 발효 해왔어요. 옹기는 발효를 위한 최적의 조건을 갖췄죠. 이 “숨 쉬는 항아리” 안에서 발효된 장이나 술은 특유의 깊고 복합적인 맛을 자랑해요. 오랜 시간에 걸쳐 발효됐기 때문이에요.
한국 발효 음식의 맛을 좌우하는 또 한가지 중요한 요소는 토종 미생물이에요. 발효를 돕는 미생물 번식에 이상적인 기후도 갖추고 있고요. 한국에서 담근 김치와 외국에서 담근 김치의 맛이 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에요.
호텔 옥상과 냉장고 안에 다양한 발효 옹기를 보관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주방 팀원들과 함께 다양한 재료로 실험하고 있어요. 사과 주스, 솔잎차, 된장을 만들어봤는데 변수가 많기 때문에 늘 성공하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이제 시작이에요. 앞으로 더욱더 다양한 발효 식품을 만들 계획이에요.
집에서 요리할 때도 된장이나 고추장을 사용하나요?
고추장으로 만든 글레이즈를 복숭아에 발라가면서 구우면 정말 맛있어요. 새우와 고추장의 궁합도 잘 맞고요. 고추장이 싱싱한 새우 살의 단맛을 끌어내줘요.
한식은 첫맛에 반했나요, 아니면 좋아하기까지 시간이 조금 걸렸나요?
난생처음으로 된장을 맛봤을 때가 생각나요.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어요. 그 정도로 저에게는 강렬한 맛이었고 낯선 맛이었어요. 지금은 된장을 정말 좋아하지만, 서양 요리와 된장의 궁합은 여전히 어렵다고 생각해요. 불가능하다는 얘기가 아니에요. 외국인들이 거부감 없이 즐길 수 있도록 한식 재료를 소화해내는 것은 저 같은 외국인 셰프들이 풀어야 할 숙제에요.
한식 공부는 어떻게 하고 있나요?
제 주방 팀원들과 끊임없이 소통해요. 농장도 방문하고요. 온라인상에서 영문 자료를 찾아보기도 해요. 다른 셰프들과의 대화를 통해서도 많이 느끼고 배워요.
가장 좋아하는 한국 음식은?
어려운 질문이에요! 좋아하는 한국 음식이 정말 많거든요. 만두, 물김치, 구절판을 좋아해요. 여름에는 잡채를 즐겨먹고요. 콩국수 마니아에요!
한국과 아르헨티나의 음식 문화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나요?
음식은 하나의 언어에요. 사람과 사람이 소통하도록 도와주는 사회적 도구죠. 한국인들과 마찬가지로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음식으로 정을 나눠요. 바비큐 그릴을 중심으로 가족이나 친구들끼리 시끌벅적하게 즐기는 모습 – 이게 바로 제가 생각하는 ‘집’ 풍경이에요.
한국 식문화에 대해 가장 인상 깊게 느꼈던 점은 무엇인가요?
언젠가 세 분의 스님에게 물어봤어요. 매일 먹는 식단을 어떻게 결정하는지. 신기하게도 세 분으로부터 똑같은 대답을 들었어요. 건강에 유익한 음식, 수행을 위해 필요한 음식, 그리고 제철 식재료에 따라 그날그날 무엇을 먹을지 결정한다는 거예요.
이처럼 한국인들은 건강과 제철 음식에 대한 남다른 집착을 갖고 있어요. 24 절기와 각 절기 때마다 먹는 식재료와 음식이 존재하는 걸 보고 깜짝 놀랐어요. 정월대보름에 된장을 담그는 것처럼요. 다음 절기 혹은 계절에 미리 대비하는 한국인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한국인들의 공동체 의식은 음식 문화와도 직결되는 것 같아요. 김장철에 온 가족이, 동네 이웃들이, 혹은 마을 주민들이 모여 겨우내 먹을 김치를 함께 담그는 모습을 보고 큰 감명을 받았어요. 전 세계를 다녀봤지만 한국인만큼 먹는 걸 즐기는 사람들은 못 만나본 것 같아요. 참 즐겁게 맛있게 먹어요.
셰프로서 지금이 한국에서 활동하기 좋은 시기인가요?
물론이에요. 한국 요식업계에 다양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어요. 젊은 셰프들이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고요.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전통과 선조들의 지혜에서 영감을 받아 새로운 콘텐츠를 창조하고 있어요. 바람직하다고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젊은 셰프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이 되고 싶으면 겉모양새에만 신경 쓰지 말고 진정성 있는 음식으로 보여주세요. 재료 하나하나부터 신경을 써야 해요. 재료에 신경을 쓴다는 것은 자연을 존중하는 거예요. 셰프는 대단한 사람이 아니에요. 자연과 레스토랑 고객을 연결해주는 중재자일 뿐이죠. 셰프에게 요리의 시작은 농장, 바다, 혹은 자연에서 비롯되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세요. 시장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에만 의존하면 안 돼요.
최고의 재료가 반드시 가장 비싼 재료는 아니에요. 후추처럼 흔한 식재료가 상상을 초월하는 맛을 낼 수 있다는 사실을 인도 케랄라 주에서 깨달았어요. 손님들에게 재료가 갖고 있는 최상의 맛을 선사하기 위해서는 셰프가 부지런해져야 해요.
발행일 2017.08.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