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음식의 대표주자 쌀국수. 국내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온 ‘포(phở)’가 최근 제2의 전성시대를 이어가고 있다.
90년대 말부터 인기몰이를 해온 국내의 베트남 음식점들이 미국 (특히 캘리포니아주)로 이주한 베트남 이민자들에 의해 탄생한 ‘아메리칸 베트나미즈’를 표방했다면 지금 서울에서 가장 핫한 베트남 요리 전문점들은 최대한 현지의 맛을 내는데 주력한다. 게다가 국내 푸디들이 사랑하는 베트남 음식은 더 이상 쌀국수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껌땀, 반미, 분짜, 분보훼, 반세오 등 종류도 점점 다양해지고 있는 추세다.
베트남 전역에서 즐겨 먹는 쌀국수는 크게 북부 하노이 스타일과 남부 사이공 스타일로 분류된다. 북부에서 먹는 쌀국수는 육수가 더 맑고 순수하며 넓적한 면을 말아 낸다. 골수, 힘줄, 양지, 차돌, 완자 등 다양한 고기를 담아 내는 남부식과는 달리 얇게 썬 생 우둔살이나 닭 살코기 정도를 얹어내는 것이 특징. 향신채와 허브는 따로 제공하지 않으며, 주로 파를 잘게 썰어 국수 위에 올려 낸다. 쌀국수와 함께 제공되는 소스도 식초, 피쉬 소스, 칠리 소스가 전부다. 반면, 예로부터 모든 것이 더 풍족했던 남쪽 지방의 쌀국수는 진하고 달달한 육수와 다양하고 푸짐한 고명이 특징이다. 호이신 소스, 향신채, 라임, 허브, 숙주, 칠리 소스 등이 제공된다. 이때 호이신 소스와 칠리 소스는 육수에 직접 넣지 않고, 소스 종지에 먹을 만큼만 덜어 고기 등의 고명을 찍어먹는다.
쌀국수는 베트남을 대표하는 음식이지만, 현지에서 즐겨 먹는 수 백가지의 국물 요리 중 하나일 뿐이다. 각 국물 요리의 맛과 개성은 조금씩 다르지만, 베트남인들이 음식을 먹을 때 중요시하는 요소들을 모두 갖추고 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쌀국수의 경우, 맑으면서도 감칠맛 나는 육수, 부드러운 면, 아삭아삭 씹히는 숙주, 바삭하게 튀긴 샬롯, 쫄깃한 소고기 힘줄, 폭신한 미트볼, 연하면서도 기분 좋게 씹히는 닭 살코기까지 단 한 입 만으로도 다양한 식감을 즐길 수 있다. 베트남 국물 요리에서 빠질 수 없는 또 한 가지 요소는 ‘향’이다. 신선한 허브와 각종 향신채, 그리고 고추는 국물 요리와 함께 곁들이는 흔한 재료들이다. 베트남 일부 지역에서는 숫컷 딱정벌레에서 채취한 기름진 분비물을 육수에 담가 특유의 향을 입혀 먹기도 한다.
베트남인들이 즐겨 먹는 국물 요리는 크게 두 종류로 구분된다. 쌀국수처럼 육수에 면을 말아 내는 음식은 아침과 점심 식사로 먹고, 좀 더 가벼운 탕류는 저녁 식사 차림에서 빠지지 않는다.
동남아 음식 중에서도 베트남 음식은 유독 한국인의 입맛에 가장 잘 맞는 것으로 평가된다. 베트남의 전형적인 가정식과 한국인의 밥상을 비교해보면 흡사한 요소들이 꽤 많다. 우선 밥과 국이 빠지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베트남인들은 여기에 가볍게 볶거나 조린 (혹은 찐) 생선이나 고기, 그리고 두부, 절인 채소 등의 밑반찬, 생 푸성귀와 젓갈류를 곁들여 먹는다.
외교부에 따르면 2017 년 베트남을 방문한 관광객 수가 150만 명을 돌파하면서, 한국인이 가장 많이 찾은 동남아 관광지 1위에 베트남이 올랐다. 여행을 통해 베트남 문화에 대한 친밀감이 높아지면서, 현지에서 경험했던 맛을 찾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늘어났고, 그런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오리지널’을 표방하는 베트남 음식점이 하나둘씩 생겨난 것이 오늘에 이른 것이다.
한국에 거주하는 베트남인 역시 최근 몇 년 사이 부쩍 늘었다. 그들이 직접 운영하는 소규모 업장들이 문을 열기 시작했고, 이는 입소문을 통해 대중적으로 알려졌다. 노량진에서 장사를 시작해 가맹사업으로 확장하고 있는 ‘전티마이 베트남 쌀국수’와 ‘사이공리’, 그리고 ‘베트남 고향식당’ 등이 그 사례.
베트남에서 쌀국수는 주로 식당이나 노점상에서 사 먹는 음식이다. 맛있는 쌀국수 한 그릇을 만들기 위해서는 꽤 오랜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우선 육수를 끓여야 하고, 국수는 미리 불려두어야 하며, 허브나 고추 등 먹는 이가 취향에 따라 첨가해 먹을 수 있는 각종 가니시도 준비해야 한다.
하지만, 가장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육수만 미리 준비해 두면 현지식 베트남 쌀국수를 집에서도 비교적 손쉽게 즐길 수 있다. 한국인들이 공들여 집에서 곰탕을 끓이듯 베트남인들도 소의 각종 뼈와 고기로 국물을 내어phở bò (포보/소고기 쌀국수) 육수를 만든다.
다음은 기본적인 포보 육수 레시피다. 한식에는 사용되지 않는 다소 생소한 향신료들이 들어가나, 국내에서도 비교적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들이다. 넉넉히 만들어 냉동실에 저장해두자.
포보(소고기 쌀국수) 육수
재료 (육수 5.5 리터 분량)
- 큼직한 양파 1개 (껍질째 씻어 이용)
- 생강 1개 (대략 8cm크기/껍질째 씻어 이용)
- 소꼬리 1kg
- 소 목뼈 1kg
- 사골 2kg
- 갈색설탕 2큰 술
- 백후추 1 작은 술
- 통계피 (8cm)
- 통팔각 1개
- 정향 1개
- 블랙 카다멈(소두구) 1개
- 180 °C로 예열한 오븐에 양파와 생강을 넣고 양파 속이 부드러워질 때까지 굽는다. 약 1시간이 소요된다.
- 익은 양파와 생강을 꺼내 식힌다. 양파 껍질을 벗긴 후 반으로 자른다. 생강은 5mm 두께로 썰어둔다.
- 양파와 생강이 구워지는 동안 커다란 솥에 물을 넉넉히 넣고 끓인다. 물이 팔팔 끓으면 소뼈를 넣고 3분간 데친다.
- 데친 뼈를 걸러낸 뒤 흐르는 (찬) 물에 헹군다. 뼈 끓인 솥을 깨끗하게 씻은 뒤 데친 뼈, 익힌 양파, 생강 슬라이스, 설탕, 물 5리터를 붓고 센 불에서 끓인다. 이때 표면에 뜨는 불순물을 지속적으로 제거한다.
- 불순물이 어느 정도 제거되면 불을 낮춘다. 뭉근한 불에서 4시간 동안 끓인다. 표면에 뜨는 찌꺼기는 지속적으로 걷어낸다.
- 4시간 후 끓는 육수에 후추, 통계피, 통팔각, 그리고 카다멈을 넣고 한 시간 가량 더 끓인다.
- 뼈와 건더기를 건져낸 육수를 촘촘한 체에 거른다.
- 육수를 식힌 다음 표면에 굳은 (대부분의) 기름을 제거한다. 어느 정도의 기름은 육수의 맛과 질감을 위해 남겨두도록 한다.
- 육수는 냉장고 안에서 3일, 냉동실 안에서 3개월 정도 보관 가능하다.
발행일 2018-05-16